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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사회과학 - 사회과학자의 시선으로 새롭게 재구성한 5월 광주의 삶과 진실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6
최정운 지음 / 오월의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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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광주 출신입니다. 어릴 적부터 5.18에 대한 이야기를 비교적 많이 듣고 자랐던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5.18에 대한 글을 쓰다가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제가 쓴 말은 ‘광주 사태’였는데, 어머니는 그 말이 가해자들이 주로 쓰는 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뒤로 그때 그 일에 대해서 ‘5.18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꼭 가해자가 쓰는 말이라고 할 수는 없고 보편적으로 쓰이는 말인 것 같기는 합니다만, 5.18을 부르는 말 자체로서는 굉장히 아쉬운 점이 있는 건 맞다고 보입니다.)

이 일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는 교만 탓일까요. 북한과 관련한 음모론이나 폭도론과 같은 터무니없는 말들에 분개할 때 빼고는, 5.18에 대해서 딱히 깊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매년 5.18에 대해 공부하며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지인들과 나누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가족과 함께 도청 앞과 전일빌딩을 지나가다가 아버지에게 5.18 당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이던 아버지는, 군인들의 발포를 목격하였습니다. 멀찍이서 이 장면을 본 아버지는, 공포를 느끼고 집으로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고 합니다. 마침 발포가 있었던 바로 그 장소에서 이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공포가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상상을 해봤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나서,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대학생이었다면. 아니면 조금만 더 발포 현장에 가까이 있었더라면. 그 생각을 하고 나니, 제 존재 자체가 전혀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았고 5.18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저 자신도 5.18의 서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순간이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지금의 저와 연결되어 있는 바로 그 사건에 대해 알고 싶어졌고, 그 뒤로 365일 내내 5.18을 챙기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이 중요한 일에 대해 공부하고 기억하여 생각을 나누기로 다짐하였습니다.

올해 제가 선정한 책은 최정운 교수의 <오월의 사회과학>입니다. 5.18 열흘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세상에 고발한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아픔을 넘어>나 5.18의 원혼과 생존자들의 한을 다룬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는 다르게, 5.18이 우리 사회에 어떤 중요한 함의를 가지는지를 학술적으로 들여다본 책입니다.

“80년 광주에서 그들의 죽음이 없었다면 6월 항쟁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 것이다.” 멋모르던 학창 시절, 저는 이러한 종류의 말이 굉장히 부담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광주에서 비극적인 일이 있었고, 분명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우리(광주) 스스로 사건을 과대평가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서울역 회군 이후 5.18을 접한 학생운동권 출신들의 말을 들어보면, 확실히 광주에 대한 부채감은 상당했고 이후에 이것이 민주화운동을 전개하는 동력이 되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80년 5.18이 87년 민주화의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는 것 자체는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연결고리가 어떻게 진행된 것인지에 대한 두터운 이해는 뒤로 미루어두었습니다.

<오월의 사회과학>이 드디어 제 납작한 이해를 꽤 해소해 주었습니다. 그간 4.19는 헌법 전문에 들어가 있는데, 5.18은 왜 그렇지 못한 것인지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독 5.18에 대한 음모론이나 유언비어가 횡행하여 왔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었습니다. 이는 바로 5.18이 굉장히 복잡한 사건이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론이 상존하고 있다는 데에 기인하는 문제였습니다. (물론 현행 헌법이 5.18과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기에 개정된 것이라는 점도 이유일 것입니다.)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는 게 현재는 가장 정론으로 여겨지지만, ‘민중항쟁’과 같은 말을 쓰는 분들도 있습니다. 책은 5.18을 민중론과 혁명론과 같은 담론을 통해 바라보는 시각도 들여다봅니다. 주로 맑시즘에서 이야기하는 바와 같이, 노동자계급이 주축이 되어 혁명의식을 고취시키고 폭력으로써 혁명을 꾀하였다는 시각이 이러한 담론들과 깊게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해석보다는 ‘민주화운동’의 시각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5.18 때 광주 시민들이 들고일어난 데 있어, 노인과 여성을 몽둥이로 구타하고 희롱하거나 대검으로 찌르는 등 엽기적인 행각을 일삼은 공수부대에 대한 극에 달한 분노가 혁명에의 의지보다 훨씬 더 주요한 요인이었을 겁니다. 혁명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무리 다수였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만으로 공수부대에 맞설 만큼 목숨을 내놓고 그 많은 사람이 덤볐을 거라 보기는 힘들지요. 게다가 반인륜적인 행태에 분노하여 공수부대에 맞선 이들은 노동자계급뿐만이 아니라 전 계층의 시민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시민군을 조직하고 무장을 하였기에, 쿠데타 세력에서는 폭도론을 들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언급한 바와 같이, 노인과 어린아이, 여성들에게 잔혹한 폭력을 휘두른 무리들을 자국의 군대랍시고 내버려 둘 수는 없었습니다. 이때 투쟁의 대열에 선 이들이 주장한 바와 같이, 이는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민주화운동이라고 해놓고, 무장을 하는 등 일정 기간 폭력을 사용코자 했던 것을 어떻게 봐야 할지에 관해 고민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점이 4.19나 6월 항쟁과 같은 것들과는 성격이 다른 지점일 것입니다.

광주 시내에서도 일시적으로 공수부대를 물리쳤을 때, 혁명적 분위기가 감돌았고 시민들은 이를 ‘폭력’을 매개로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반인륜적인 행태에 분노하여 공포를 물리치고 싸움에 나선 시민들은, ‘폭도’로 몰리면서도 ‘혁명’을 추구하면, ‘인륜’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는 ‘명예’를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였다고 책은 설명합니다. 그래서 무기 회수론이 나오기도 하였고, 많은 광주 시민들은 혁명을 거부하였으며, 마지막에 목숨을 내놓으면서도 훗날 광주가 ‘폭도들의 땅’으로 남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민주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유언’이었습니다.

“광주 시민들의 투쟁 동기는 결코 민주주의라는 근대의 정치 이념이나 제도에 대한 요구로 귀착되지 않는다. 인륜과 공동체의 존재에 대한 가치는 동서고금의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굳이 글로 써서 알릴 필요도 없는 인간 본성 차원에 있는 것이다. 5.18은 민주화 요구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광주 시민들은 인륜과 공동체를 위한 처절한 투쟁에서 정치적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를 관통하여 독재의 그 깊은 곳에 있는 핵심적 독소와 맞부딪쳐 그것을 만천하에 파헤친 것이다. 5.18을 통해 비로소 독재는 비민주적 정치제도임을 넘어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말살하는 폭력으로 드러났고 서구의 정치 이념이었던 민주주의는 비로소 이 땅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인륜과 동동체의 근본적 가치는 민주주의로 흡수되지 않으며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가 해결할 수 없다. 1980년대 어두웠던 시절 우리의 민주화 투쟁은 민주주의 이념의 힘이라기보다는 5.18의 처절한 경험 그리고 각종 고문사건 등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가 깨어지던 모습에 대한 분노를 통해 이끌려갔다.” (<오월의 사회과학>, 최정운, 오월의 봄)

이걸 읽고 나니 생각도 조금 정리가 됩니다. 인정해야 할 점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5.18과 같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5.18이 벌어졌을 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어마어마한 사건이 일어났는지 모르고도 잔인성에 맞서기 위해 싸움에 나선 시민들이 다수였다고 합니다. 가장 궁극적으로, 옆에 있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존엄성과 생명이 짓밟히는 것을 지켜보며 이를 회복하기 위해 나선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민주주의’가 5.18의 시민들이 요구한 ‘최저선’이었다고 말합니다. ‘5.18 정신’을 말하면서 민주주의 이상의 가치, 즉 ‘인간의 존엄’, ‘생명 보호’를 말하는 분들의 말도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여전히 ‘민중론’의 관점에서 사건을 해석하는 분들은 ‘경제적 평등’까지도 부르짖는 것이겠지요.

사실 책을 읽고 난 다음, 5.18을 정확하게 어느 하나로 규정하는 데에 더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앞으로도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 나가야할 이야기가 남아있다고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해석과 담론이 존재하기에, 5.18 이후의 민주화운동도 굉장히 복잡했나 봅니다. 5.18을 전후로 민주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였고, 지금도 그로부터 파생된 관점의 차이가 상존한다고 여겨집니다. 저는 민중론이나 혁명론에 동의하지 않지만, 5.18 당시 존재하였던 혁명에의 의지를 계승한 투쟁 의식이 6월 항쟁까지도 중요한 동력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5.18에 대한 저의 이해는 전보다 다소 두터워졌습니다. 알고 나니까 사건이 훨씬 더 복잡하게 보이고, 현대의 대한민국을 규정하는 데 있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사건임이 더 실감 납니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고 서평을 쓰는 등 5.18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분들이 다가오는 5월 18일에도 많으시겠지요. 저도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집 앞처럼 드나들던 도청과 상무대 앞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상하며 울고는 했습니다. 그런 작품들을 읽은 다음에는, 사회과학적으로 우리 사회에 5.18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영향을 주었는지 한 번 공부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5.18에 대한 더욱 풍성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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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22-05-19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없이 표현하려해도 항상 부족한 아픈 역사죠, 우리들은 지속적으로 기억을 소환하고 잊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할 거예요. 진심어린 글 고맙게 읽고 갑니다.
 
양자역학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스켑틱 SKEPTIC 29
스켑틱 협회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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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사람이 양자역학에 관심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설령 관심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이해부터가 쉽지 않다. 그랬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은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작년 말인가,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헨리 키신저를 만나고 기술패권 시대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미중 갈등 속에서 주목받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양자 컴퓨터에 대한 언급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블록체인을 깰 수 있는 양자컴퓨터”에 대한 언급에 많이 놀랐다. 블록체인 기술 덕에, 깨질 수 없다는 신뢰 하에 중앙은행의 통제 없이 거래할 수 있는 것이 비트코인 아니던가? 이게 깨진다면 도대체 가상화폐 거래는 어떻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뭐 이런 질문들이 생겨서 언젠가 양자 컴퓨터에 대한 대강의 설명을 접하고 싶었다.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블록체인을 깰 수 있을 정도로 어마 무시한 기술이라면, 개발하고 있는 회사의 주식을 얼른 매수해놔야 하지 않을까. 요즘 대세도 FAANG에서 MANTA(마소, 애플, 엔비디아, 테슬라, 구글)로 옮겨가고 있다는데, 양자 컴퓨터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거대 기업들에 IBM, 인텔, 마소, 구글이 있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 다 처분하고, 돈 생기는 족족 저런 것들에 돈을 넣어야 하나?


일단 개인적으로 여유가 생길 때마다 MANTA 쪽으로 투자를 늘리고 있는 편이기는 한데, 양자컴퓨터에 대한 판단은 유보다. 잘 모르니까. 그래도, 일단 경제적 자유에 대해 이런저런 좋은 말들을 많이 해주시는 분들이 산업에 대한 공부는 일정 정도 해야 한다고 하시니 양자 컴퓨터에 대한 겉핥기도 살짝은 할 필요를 느꼈다. 덕분에, 양자 역학에 대해서도 살면서 가장 많은 글을 읽었던 것 같다. 반도체 산업 공부도 딱히 이해가 아주 잘 되어 한 건 아니었다. 일단 이런 것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받아들여야지. 스켑틱 양자역학 특집의 양자물리학자들도 비슷한 말을 한다. “이해는 되지 않지만 실험이 팩트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되지 않은 채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해한 걸 정리해 보자면,

양자 물리의 기본은 이 세상 삼라만상이 입자의 성질과 파동의 성질, 둘 다를 갖는다는 것. 각각의 소리가 중첩되면 화음이 되고, 여러 색들이 중첩되면 흰빛이 되듯이, 물질 자체가 나타내는 파동도 중첩된다. 양자 컴퓨터가 빠른 이유는 파동의 중첩성을 이용하기 때문인데, 이걸 오류 없이 이용하게 되면 고전 컴퓨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계산을 해낼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신약 개발, AI, 암호 깨기.

신약 개발도 오랜 시간 무수히 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하나의 성공이 얻어걸리기만을 기다리는 것인데, 양자 컴퓨터는 이 시간을 대폭 줄여준다. 무선 전화가 기반 시설을 깔지 못해 유선 전화를 쓸 수 없었던 후진국들에게 기회를 제공했던 것처럼 우리나라같이 신약 개발의 경험이 거의 없는 후발주자에게는 양자 컴퓨터가 선진국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AI도 마찬가지다. 연산이 매우 빠른 양자 컴퓨터가 상용화돼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 기술과 만나게 된다면 다시 한번 우리 문명은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 블록체인을 비롯해 기존의 암호들은 아주 쉽게 깨질 것이고, 따라서 양자 컴퓨터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새로운 암호 기술이 요구된다.


하지만, 양자물리학자인 이순칠 교수의 예측에 따르면, 오류가 없는 실용적인 양자 컴퓨터는 우리가 4차 산업이라는 단어에 둔감해질 때쯤 돼서야 개발될 것이라고. 양자 컴퓨터가 빨리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는 인류가 가진 나노 기술의 수준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솔직히 아주 잘 이해했다고 하기는 힘들다. 거의 1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천재적인 물리학자들이 쌓아올린 학문 분과인데, 글 몇 편 읽은 문돌이가 제대로 이해했을 리는 없다. 다만, 이게 정말 된다면, 우리 문명은 또다시 ‘퀀텀’ 점프를 하게 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시스템 반도체와 더불어, 미래 기술 패권을 쥐게 되는 키 중의 하나라는 점. 이 정도 이해에 오늘은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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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삼촌 현기영 중단편전집 1
현기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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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주도에서도 5.18 같은 일이 있었다고요?” 고교 시절, 4.3을 처음 접했을 때 당시 나의 반응이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랐고, 구 도청 앞을 수도 없이 지나다녔기 때문에 5.18에 관한 이야기는 익숙한 편이었다. 타지에서 겪은 수모를 한스럽게 이야기하는 선생님도 계셨고, 시민들을 향한 군인들의 발포를 직접 목격한 가족 구성원의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이렇게 5.18에 대해서만 익숙해져 있다가, 여순사건이라든지 4.3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을 점점 접해갈수록 받은 충격은 결코 작지 않았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다룬다.

“묵묵히 쌀알을 씹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 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소년이 온다, 창비, p85)

겨우 허기를 느낄 뿐인데도 죄책감과 치욕스러움을 느끼는 자, 고문과 학대의 경험으로 후유증을 앓다가 외로이 죽어가는 자, 자식 잃고 여름에도 한기를 느끼는 자들이 소설에 등장한다.

현기영 작가의 「순이 삼촌」도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다룬다. 토벌대의 집단 학살 동안 시쳇더미에 눌려 있다가, 죽지 않고 살아남은 순이 삼촌은 이미 ‘그때’ 죽었다. 사건이 지나고 수십 년이 지났지만, 순이 삼촌은 당시의 영향으로 피해 의식, 결벽증, 환청과 신경 쇠약으로 고생하다 결국 생을 스스로 마감한다. 그가 죽은 곳은 다름 아닌, 그가 시쳇더미에 눌려 있었고 자식들을 잃은 그 밭이었다. 살아남았지만, 그를 삶으로부터 끌어당기는 그 죽음의 밭으로 돌아가기를 기어코 선택한 것이다.

이렇듯, 무고한 자들이 집단으로 학살된 사건들에는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이라는 보편적인 서사가 있다. 이분들은 분명히 사건 이후에도 그 기억을 오롯이 간직하고 살아가는데, 과연 과거사를 묻고 미래로 나아간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4.3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난 뒤에도, 긴 세월 동안 ‘폭도들의 섬’이라며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했던 제주도민들의 한이 「순이 삼촌」에서 드러난다.

“아, 떼죽음당한 마을이 어디 우리 마을뿐이던가. 이 섬 출신이거든 아무라도 붙잡고 물어보라. 필시 그의 가족 중에 누구 한사람이, 아니면 적어도 사촌까지 중에 누구 한사람이 그 북새통에 죽었다고 말하리라. 군경 전사자 몇백과 무장공비 몇백을 빼고도 삼만명에 이르는 그 막대한 주검은 도대체 무엇인가? 대사를 치르려면 사기그릇 좀 깨지게 마련이라는 속담은 이 경우에도 적용되는가? 아니다. 어디 그게 사기그릇 좀 깨진 정도냐. 아 멀리 육지에서 바다 건너와 그 자신 적잖은 희생을 치러가면서 폭동을 진압해준 장본인들에게 오히려 원한을 품어야 한다니, 이 무슨 해괴한 인연인가.

그러나 누가 뭐래도 그건 명백한 죄악이었다. 그런데도 그 죄악은 삼십년 동안 여태 단 한번도 고발되어온 적이 없었다. 도대체가 그건 엄두도 안 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군 지휘관이나 경찰 간부가 아직도 권력 주변에 머문 채 떨어져나가지 않았으리라고 섬사람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섣불리 들고나왔다간 빨갱이로 몰릴 것이 두려웠다. 고발할 용기는커녕 합동위령제 한번 떳떳이 지낼 뱃심조차 없었다. 하도 무섭게 당했던 그들인지라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결코 고발이나 보복이 아니었다. 다만 합동위령제를 한번 떳떳하게 올리고 위령비를 세워 억울한 죽음들을 진혼하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가해자가 쉬쉬해서 삼십년 동안 각자의 어두운 가슴속에서만 갇힌 채 한번도 떳떳하게 햇빛을 못 본 원혼들이 해코지할까봐 두려웠다.” (「순이 삼촌」, 창비, p85-86)

공비들을 토벌한다는 명목이었지만, 공비로 오해받을까 봐 도피자가 된 자의 가족들을 전부 멸하는 정도의 일이 비일비재했던 걸 보면, 4.3은 이념의 광기가 초래한 비극이었다. 그 불편함을 이기지 못한 자들은 서북청년단과 군경의 행태를 변호하기도 할 것이다.

“그땐 산에 올라간 사람은 무조건 폭도로 봐시니까. 하이간 굴속에 있는 사람은 영 행색이 말이 아니라서. 굶언 피골이 상접헌디다가 한겨울에 젖은 미녕옷 한벌로 몸을 가리고 떨고 있는디, 동상 걸려 발구락 모지라진 사람도 더러 있었쥬. 소위 비무장공비란 것이 이 모냥으로 동굴 속에서 비참한 꼴로 발견되니까 냉중엔 상부에서도 생각을 달리 쓰게 되어서. 구호물자를 준비한 갱생원 차려놓고 선무공작을 썼쥬. 엘파이브(L-5) 연락기로 한라산 일대에 전단을 뿌련 투항을 권고하난 하루에도 수십명씩 떼 지어 귀순자들이 내려와서라.”

“바로 그것입쥬. 선무공작은 왜 진작에 쓰지 못했느냐는 말이우다. 처음부터 선무공작을 했으면 인명피해가 그렇게 많이 나지 않아실 거라 마씸. 폭도도 무섭고 군경도 무서워서 산으로 피난 간 양민들을 폭도로 간주해시니......” (「순이 삼촌」, 창비, p84-85)

억울하게 희생될 뻔한 도피자들을 ‘귀순’시키기도 한 걸 보면, 학살을 한 자들에게도 후유증이 작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그들이 저지른 학살의 ‘오류’를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소설의 화자도 비슷한 말을 한다.

“때마침 6.25가 터져 해병대 모병이 있자 이 귀순자들은 너도나도 입대를 자원했다. 그야말로 빨갱이 누명을 벗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대로 눌러 있다간 언제 개죽음당할지도 모르는 이 지긋지긋한 고향을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현모 형은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해병대 3기였다. ‘귀신 잡는 해병’이라고 용맹을 떨쳤던 초창기 해병대는 이렇게 이 섬 출신 청년 삼만명을 주축으로 이룩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용맹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건 따지고 보면 결국 반대급부적인 행위가 아니었을까? 빨갱이란 누명을 뒤집어쓰고 몇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그들인지라 한번 여봐란듯이 용맹을 떨쳐 누명을 벗어 보이고 싶었으리라. 아니, 그것만이 아니다. 어쩌면 거기엔 보복적인 감정이 짙게 깔려 있지 않았을까? 이북 사람에게 당한 것을 이북 사람에게 돌려준다는 식으로 말이다. 섬 청년들이 6.25동란 때 보인 전사에 빛나는 그 용맹은 한때 군경 측에서 섬 주민이라면 무조건 좌익시해서 때려잡던 단세포적인 사고방식이 얼마나 큰 오류를 저릴렀나를 반증하는 것이 된다.” (「순이 삼촌」, 창비, p83)

이 부분을 남침을 한 북한 세력에 대한 비호로 읽는 것은 분명한 오독이다. 당시 군경은 남로당 세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제주도민들까지 좌익 세력으로 몰아 3만 명에 이르는 사망자를 냈다. 이후에도 ‘붉은 딱지’가 붙여진 제주의 젊은이들이 어떻게든 이 딱지를 떼어보기 위해 전쟁에서 ‘용맹하게 활약’한 것일 수 있다는 현기영 소설가의 추론은 합당해 보인다.

제주의 서사, 광주의 서사는 이렇게 ‘국가적 대의’를 명분으로 무고한 자들이 학살된 사실을 담고 있다. 이러한 서사가 쌓여 대한민국의 서사를 이루고 있는 만큼, 바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서사이다. 진상을 규명하고, 억울하게 희생된 자들과 유가족들의 한을 풀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은 바로 우리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안타깝지만, 언제까지 이야기할 것인가?”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묻고 싶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데에 바로 그러한 태도가 장애물이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기억하지 않고 유사한 일이 반복된다면, 그 책임은 도대체 어떻게 지려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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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공부란 무엇인가」(김영민, 어크로스, 2020)를 읽으며 그간의 학부 생활을 반추해 보았다. 학부 생활 내내 제일의 화두는 정치였다. 정당의 일원이 되고, 젊은 정치인의 후원회 모임에 참석하고, 이런저런 술모임에 얼굴을 비추고, 선거 캠프에 이름을 올리고, 집회에 참여하고, 기고를 하고, 설득해 보려 애를 썼다. 다른 건 전부 부수적인 일일 뿐이라 믿고 정치에 과몰입하다 보니, 세상 모든 일을 정치와 결부 지어 생각하였다. 이런 시간들이 4, 5년 정도 지나도 세상 일이 내 기대처럼 착착 해결되지 않자, 피로감이 많이 누적됐던 것 같다. 한때 동지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인지부조화에 빠지는 모습에 회의를 느끼는 동시에, 나도 저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하며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다. 마침 고학년이 되어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여야 한다는 핑계가 있어서 거리 두기가 어렵지 않았다.


사색 없는 행동적 삶은 맹목적이기에, 행동하는 삶에 대한 집착을 잠시 거두고 공부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때마침 「공부란 무엇인가」가 출간되어, 공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계속 읽고 쓰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가능한 인간의 변화에 대해 믿게 될 것이다. 입시와 취업으로 전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어떤 탁월함을 목표로 공부를 하게 될 때, 아마 한국인은 양념 치킨보다 더 멋진 것, 이를테면 잘 양념된 삶을 이루고 향유하게 될 것이다.” (「공부란 무엇인가」, p14) 이 말이 참 멋졌다. 또래 사람들이 철 지난 입시 이야기를 하거나 취업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 달갑지 않게 여겨졌을 때, 저 말은 하나의 복음과 같았다. 그렇게 더 나은 삶을 갈구하며 공부를 더 해보기로 하였고, 1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정치와 거리를 두기 위해 공부를 해보기로 한 시간이었거늘, 그 시간 동안 공화주의에 매료되었다. 시민이라면 마땅히 공적인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왜 그러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의 기반이 너무 부실했던 것 같다. 공화주의 공부를 통해, 공적 영역에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자기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적극적 자유시민적 덕성’, ‘민주주의와의 균형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서사적 존재라고 하는데, 그간 정치라는 영역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시간들이 나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기에 다시금 정치에 대한 고민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마냥 행복한가? 그렇다면 당신은 운이 좋다. 그 좋은 운을 누리다가 때가 되면 평화롭게 죽기 바란다. 그러나 거기에 정치는 없다. 인간이 그저 행복해지는 게 불가능할 때 정치가 시작된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이며, 그 문제를 다루는 데 정치가 있다.” (p17)


산다는 게 징글징글한가? 징글징글한 나머지 산속으로 잠적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거기에 정치는 없다. 답이 없는 세계에서 좋은 세상 보겠다고 싸우다가 지치면, 세상을 뜨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도 뜨지 않고 버티는 데 정치가 있다.” (p18)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생각하는가? 아직 태산에 가보지 못한 모양이다. 티끌 모아 좀 더 큰 티끌을 만들어나가는 데 정치가 있다.

매사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거기에 정치는 없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당연해 보이던 것이 더 이상 당연해 보이지 않을 때 정치가 있다. 당연한 듯한 현실의 그늘에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위태롭게 존재하는 이들이 있다. 일견 당연해 보이는 것을 낯설게 보는 데 정치가 있다.” (p22)


정치가 어디 있냐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있고, 태어난 바에야 올바르게 살고 싶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노력해보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하려니 합의가 필요하고, 합의하려니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합의했는데도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합의 이행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고, 규제를 실천하려니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 남용을 막으려니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보장하려니 재산이 필요하고, 재산을 마련하니 빈부격차가 생기고, 빈부격차를 없애자니 자원이 필요하고, 개혁을 감행하자니 설득이 필요하고, 설득하자니 토론이 필요하고, 토론하자니 논리가 필요하고, 납득시키려니 수사학이 필요하고, 논리와 수사학을 익히려니 학교가 필요하고, 학교를 유지하려니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일터의 사람은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하다 죽지 않으려면 인간다운 환경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외국이 침략할 수도 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많고 쉬운 일은 없다. 이 모든 것을 다 말하기가 너무 기니까, 싸잡아 간단히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는 서울에도 지방에도 국내에도 국외에도 거리에도 집 안에도 당신의 가느다란 모세혈관에도 있다. 체지방처럼 어디에나 있다. 정치라는 것은.” (p23)


작년에 이어 깊은 감명을 받아서, 출판사에서 마련한 저자의 북토크를 찾았다. 분명한 해답을 주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으면서, 자그마한 통찰이라도 얻어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정치에 관한 분명한 답은 없었다. 그저 앞으로도 공부를 하며 정치적 존재로서 하나씩 티끌을 쌓아가야 한다는 것밖에는. 다음번 대통령이 누가 될지 궁금해서 역술원을 찾기보다는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아가기를. 책을 열정적으로 읽은 나머지 당이 떨어져 결국 디저트 가게에 들르게 되기를.” (p300) 덕성 있는 공화국 시민으로 사는 방법을 질문하면서도, 분명한 답이 돌아올 것 같지 않아 질문 끄트머리에 하나를 덧붙였다. “디저트?” 답을 주저하다가 마지못해 내뱉은 것 같은 저자의 대답은 예스, 디저트!” 운동을 하라든지, 이 사회를 지배하는 이야기를 넘어서기 위해 아방가르드를 추구하는 현대 미술을 찾아보라든지 하는 대답들이 디저트를 먹으라는 말과 함께 내게 주어졌다. 북토크에서 얻은 것이 너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정말 많은 걸 얻었네라는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그렇다는 생각을 하였다. 정치에 정답이 있다고 믿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에, 차라리 그런 말들이 이제는 정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학부 생활이 끝나가는 동안에도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앞으로도 이렇게 끊임없이 고뇌하면서 인생이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공적인 존재로서의 삶을 놓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오래도록 고민하며 지금보다 더 나은 삶, 더 나은 공화국을 위해 간간이 디저트를 먹어주고, 열심히 운동을 하고, 미술 전시회를 찾아 타성에 젖지 않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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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영국 - 유쾌하고 사소한 영국 인문학 여행
윤영호 지음 / 두리반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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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영국 / 윤영호 / 두리반


특별하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라도 각자 마음속에 조금씩은 영국을 품고 살지 않을까. 영국은 매력적이지만 이해하기 힘든 나라다. 비틀즈와 퀸, 해리 포터, 프리미어리그의 나라. 하나만 있어도 엄청나게 자랑스러울 것 같은데 이런 소프트파워가 장난이 아닌 나라이니,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나라로 느껴질 만하다. 반대로 왕실의 존속과 악명 높은 훌리건의 존재를 보면 좀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그래서 전에는 어디까지나 영국이라는 나라 자체보다는 강력한 소프트파워를 이루는 일부만을 사랑했던 것 같다. 


그런데 무엇인가 알고 나면 애정이 생기기는 하나 보다. 2학년 때 들은 전공 과목 중에 <영국의 이해>가 있었다. 지루한 전공 공부로 꽉 찬 학기에 이 수업은 영국 역사의 타임라인을 타고 그 나라의 구석구석을 다루었다. 바로 다음 학기에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어, 영국 여행을 즐길 생각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던 기억이 난다. 케임브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교수님에게도 반해서 필요 이상으로 열심히 들었는데, 시험 직전에는 친구가 일일 과외를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런 좋은 기억을 가지고 영국을 가려니 정말 많이 설렜던 것 같다. 


여행 다녀온 지 2년이나 지났지만, 코로나19로 꼼짝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행의 추억은 큰 힘이 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아주 짧게 있었지만, 처칠 동상이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주변에서 브렉시트 반대 시위를 구경하며 거대한 세계사적 흐름의 한복판에 있다는 생각에 취해있었던 기억이 강렬하다. 그러던 차에 페이스북을 통해 런던에 거주하며 영국 관련 글을 많이 쓰시는 분을 알게 되었고, 영국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마침 책을 내시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탐독을 했다. 


찰스 다윈, 케인스, 조앤 롤링이 모두 영국인이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는데 더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그러니까, 영국>을 읽으면서 영국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았던 한 가지가 해소된 것이었다. 전술하였듯, 영국 왕실이 아직도 존속되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더군다나 근대적 민주주의를 거의 발명하다시피 한 영국이 아닌가. 왕실에 대한 영국인들의 사랑도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공부하고 있는 메킨타이어의 공동체주의를 윤영호님의 설명과 연결하여 생각하니 실마리가 보였다. 인간은 서사적 존재로, 다른 공동체 구성원과 문화와 역사를 공유한다. 나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공동체를 존속시킨다. 영국은 미국과 같이 지성을 발휘하여 인위적으로 민주공화정을 설계한 국가가 아니다. 명예혁명 때부터 시작하여 왕실과 의회가 타협을 거듭하여 온 나라다. 아무리 영국이 근대적 민주주의의 발원지라고 해도, 현대의 영국인들은 오랜 타협의 이야기를 이어가며 영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존속시키고 있는 사람들이다. 


영화 <킹스 스피치>는 세계 2차대전이라는 초유의 위기 상황에 영국 국왕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였는지를 다룬다. 독일의 공습이 한창일 때, 조지 6세는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면서 국민들에게 나날이 발전하는 연설을 보여준다. 아직 넷플릭스 <더 크라운>을 보지 못했지만, 긴 세월 동안 엘리자베스 여왕은 많은 위로를 주었고 그로 인해 영국인들이 일체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여왕이 참전한 경력도 있으니, 영국인들은 왕실과 더욱 끈끈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을 것이고. 


이렇게 생각해 보니 영국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왕실의 존속을 두고 영국인들이 현대에 와서는 민주주의가 뒤처진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큰 오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왕권신수설을 깨부순 홉스와 로크의 나라이고 프랑스 혁명보다 앞선 명예혁명의 나라다. 프랑스대혁명이 발발하기 전, 프랑스 법학자인 몽테스키외는 영국을 최고의 민주국가로 여겼다. 오랜 민주주의 전통을 무시할 수 없고 인간이 서사적 존재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면, 겨우 왕실 존속으로 영국을 무시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아무리 영국을 좋아해도 어디까지나 타자이기 때문에 여왕을 칭송하는 짓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오해가 하나 풀린 점에서 책을 읽은 보람이 있었다.


타자를 통해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는 것처럼, 외국 사회를 통해 우리 사회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 사회가 이룩한 성과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나라에서 다시 새로 시작한 지 고작 70년이다. 더 성숙한 민주공화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오랜 전통을 가진 나라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분명 외국과의 비교로 자극을 받아 발전한 측면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발전적인 비교를 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니까, 영국>을 읽으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영국에 너무 가고 싶다. 이다음에는 꼭 <그러니까, 영국>에서 소개해 주신 곳들을 빠짐없이 찾아다니며 또다시 세계사적 복판에 있다는 느낌을 만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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