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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지적자본론 + 라이프스타일을 팔다 - 전2권
마스다 무네아키 지음, 이정환.백인수 옮김 / 민음사 / 2015년 11월
평점 :
교보문고에는 뉴질랜드 북섬 늪에 5만년이나 묻혀 있었다는 카우리 나무로 만든 100인용 책상이 들여졌다. 책 읽을 공간을 따로 허락하지 않았던 서점이, 도서관처럼 변한 것은 신선한 일이었다. 그리고 서점이라는 공간은 도대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잠깐이나마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은 서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고 다른 서점을 꿈꾸는 작업, 그러니까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어떤 상상을 지금 여기로 가져오는 작업의 매뉴얼북이기도 하다. 교보문고에서 5만에서 8만부에 이르는 책들을 빼고, 그 자리에 400석의 좌석과 그 좌석을 비춰줄 수백알의 조명이 박히게 되는 변화가 ‘시대적’이라면, 그 시대란 어떤 시대인지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서점, 음반, DVD 등을 한 공간에서 구매할 수 있는 컨셉의 서점을 시작한 마스다 무네아키가 책 한 권 내내 강조하는 것은 ‘제안’이다. 새로운 생활 양식에 대한 제안. 단순히 책을 파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서점이라는 공간을 찾은 사람들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특별한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
“서점 내부의 정경을 머릿속에 떠올려보자. 매장으로 들어가면 가장 눈에 띄는 장소에 설치된 ‘매대’에 갓 출간된 잡지들이 쌓여있다. 그 앞에는 신간 단행본 등이 진열되어 있고 더 안쪽에 출판사별로 분류된 문고본 책장과 신서 책장이 위치해 있다. 여행 가이드북과 참고서, 사전 만화 등은 또 다른 공간에 놓여 있다.
이것이 기성 서점이 일반적으로 매장을 구성하는 방식인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예를 들어, 긴 휴가를 앞두고 유럽으로 여행을 갈 계획을 세웠다고 하자. 그럼 어느 코너로 가야할까. 서점 안족의 여행 가이드북이 진열되어 있는 코너일까. 그런데 신간 잡지에도 프랑스나 이탈리아 지역이 특집으로 다뤄졌을지 모른다. 아니, 유럽을 무대로 삼은 소설도 참고가 될 수 있다. (중략)
즉, 서점이 매장은 고객을 우선적으로 생각해 구성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잡지, 단행본, 문고본 등의 분류는 어디까지나 유통을 하는 쪽이 입장에서 이뤄진 분류다. (중략)
그래서 CCC는 책의 형태 등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그 제안 냉ㅇ에 따른 분류로 서점 공간을 재구축했다. 이것이 서점의 이노베이션이다. 지금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을 방문해보면 그곳은 여행, 음식과 요리, 인문과 문학, 디자인과 건축, 아트, 자동차...라는 식으로 장르에 따라 구분이 되어 있고 그 안에서도 내용이 가까운 것들까지 단행본이든 문고본이든 틀을 넘어 횡단적으로 진열되어 있다.”(68-69)
일반적인 서점의 분류를 따르지 않고, 그 대신 고객의 마음 속을 따라 걸어가겠다는 기획은 고도의 편집 능력을 요구한다. 서점 직원이 제안한 방식대로는 도저히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없다면 그 기획은 실패한 것이므로, 책을 선정하고 배열하는 작업은 ‘견식과 교양도 요구되는 공정의 연속’(74)일 수밖에 없다.
일단 틀을 깨면, 거기서부터는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진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이를 ‘부산물’로 표현하고 있다. 부산물에서 새로운 사업의 동력이, 혹은 새로운 제안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키요에를 예로 이를 설명한다. 서양 미술사 특히 인상주의 시대를 서술하는 대목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일본 에도 시대의 값싼 목판화 우키요에가 유럽에 전파된 일화.
“우키요에가 유럽에 유입될 당시만 해도 무역업자들 사이엔 그 그림을 수출하려는 의식 따윈 전혀 없었던 듯하다. 그들이 수출에 주력했던 물품은 도자기였다. 그러나 도자기는 깨지기 쉬운 물건이기 때문에 배편으로 운송하려면 포장을 해야 한다. 그 포장지로 사용된 것이 우키요에였다는 것이다.
우키요에는 에도 시대에 대량으로 인쇄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른바 대중문화의 산물이다. 특별히 액자로 장식해 감상하는, 고상한 예술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역업자의 입장에서 보면 적당한 포장지였을 것이다. 판화이니까 인쇄할 때마다 당연히 실수도 발생한다. 그런 불량품은 아마 공짜로 입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런 이유에서 아리타나 이마리의 도자기를 감싼 우키요에는 바다를 건넜고, 일본인이 알지도 못하는 장소에서 자포니슴을 일으켜 전 세계 예술의 역사를 바꿔 놓았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이야기다. 어느 누구도 의도한 일이 아니다. 우키요에 붐은 본래 도자기 수출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156)
다이칸야마에 세운 츠타야서점이 뜻밖의 성공을 거둔 후, 마스다 무네아키는 그 성공의 원인을 분석해본다. 그 결과 사람들이 그 서점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에 자주 찾는다는 결론을 얻고, ‘편안함’이라는 키워드로 상업시설을 설계한다. 처음 서점을 기획할 때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편안함’이라는 ‘부산물’이, 그 다음 사업의 핵심 테마로 성장한다. 부산물이 세계를 바꾸기도 한다.
국내 출간 1년 만에 10쇄를 찍을 정도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책을 찾았다. 그 이유가 뭘까. 독립 서점 붐의 기원처럼 여겨지는 츠타야서점이라는 실험적인 공간에 대한 관심이나 일본 여행 시 방문해야 할 핫플레이스라는 유명세 등도 작용했겠지만, 읽고 나면 ‘일단 뭐든 해보자’는 마음을 먹게 해준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요소인 것 같다. 휘황찬란한(그러나 허황돼보이기도 하는) 자신의 첫 창업 출사표를 공개하면서 ‘사실 꿈만이 이루어진다’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저자의 목소리에 끌려 하루만에 앉은 자리에서 이 책을 다 읽어버렸다. 그리고 다음 휴가 때는 ‘츠타야서점’이 있는 일본행 티켓을 끊어야겠단 생각까지 든다. 책을 읽었는데 이상하게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딴 생각이 든다면, 이는 이 책 후기 뒤에 붙은 장의 제목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제목은 이렇다. ‘부산물이 행복감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