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독종 - 세계 양궁 1등을 지킨 서거원의 승부 전략
서거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야야, 야구 금메달 땄데!”
“뭐?? 정말이야?? 우와~~~~”

 

“야야야, 양궁 은메달 땄다는데?”
“엥?? 금 못땄어??”

 

효자경기. 매 올림픽 및 여러 대회 때마다 언제나 금을 안겨주기에 당연히 금을 따는 것으로 여겨져 온 양궁. 이번 베이징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유난히 양궁 경기를 많이 보게 되었다. 박경모 선수의 씨익 웃는 모습이 너무 잘생겨보여서. 그리고 박성현 선수의 활 시위를 당기기 직전 눈매가 너무 매력적이라서. 앗.. 그런데 그 둘이 결혼을 한단다. 일단 희망을 버리고...

 

엄마와 같이 앉아서 양궁을 볼 때면 정말 가슴을 졸이곤 했다. 120점 만점에 115, 112 등의 점수를 내는 거의 완벽한 선수들이지만 중간에 7, 8점으로 약간 새거나, 혹은 힘든 상황에서 10점으로 역전을 할 때는 숨이 다 멎는 듯 했다.

 

훈련소에 있을 때 사격 훈련을 했다. 실거리 사격으로 100미터, 200미터, 250미터를 총으로 쏘는 훈련인데, 이게 보통거리가 아니었다. 조준점을 쳐다보고 목표물을 가운데 집어넣으니 목표물이 가려졌다!! 분명 사람과 같은 크기인데, 너무 멀다보니 하나의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 몇발 이상을 쏘아야 합격.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앞섰지만, 하고야 말겠어! 라는 마음다짐을 하고 나서 올라간 결과, 다행히 딱 커트라인에 맞게 합격을 하였다. 그리고 수백명의 전우들 중 단 나 혼자만이 시원한 그늘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다른 전우들은 얼차려 받고 다시 사격을 하여 합격할 때까지 고생을 해야했지만.

 

이때 크게 느낀 것이 있다. 순간 집중력! 책상에 앉으면 무슨 엉덩이가 그렇게 가벼운지 쉴새없이 들락날락 거리곤 한다. 앉아서 조금 오래 있는 꼴을 못 본다. 하지만,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집중은 엄청나게 잘한다. 몇초, 혹은 몇분간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자신 있을 정도로. 그리고 사격을 할 때 역시 숨을 참고 집중해서 한 결과, 생각보다 너무 좋은 성적이 나오게 되었다.

 

양궁. 역시나 주몽의 후예라서 잘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줄곧 그래왔다. 짧은 시간에 숨 잠깐 멈추고 과녁 한번 쳐다보고 쏘면 되겠지. 70미터? 100미터도 채 안 되는데 과녁은 더 잘 보일테고. 직접 쏴 보면 왠지 잘될 것 같은데?

 

하지만 나의 예상은 철저하게 빗나갔다.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는 이미 돌을 사용했다. 시대가 지날수록 돌을 정교하게 갈고, 철도 개발하면서 창도 생기고 동물을 잡는 데 쓰곤 했으며 영토 문제로 전쟁이 나면 화살은 필수품이었다. 적어도 총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굳이 한국만 이러할까. 중국/일본은 물론이거니와 아메리카/유럽에도 .. 심지어 큐피드마저 화살을 들고 있다. 물론 주몽의 화살 솜씨가 엄청났다고는 하지만 다른 대륙에서도 화살은 이미 허공을 가르고 있던 터. 아니 그러면 도대체 왜 한국이 매번 금을 따는 것일까? 순간 집중력이 높아서?? 물론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내가 모르던. 살을 파고 뼈를 깎는 훈련이 있었다.

 

따뜻한 독종. 제목이 보여주듯, 그들은 독종이 되어 있었다. 독종이어야만 했다. 감독이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극기 훈련을 한답시고, 배짱을 키운답시고 고소공포증이 있는 선수라도 무조건 일단 번지점프를 하게 하고 어디 가서는 무시무시한 뱀을 손으로 꺼내어 목에 감기도 하며 소위 말하는 최악의 기상 조건(태풍, 집중호우 등)을 골라서 훈련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도로 한복판에서도!

 

도대체 왜 그러했을까.


책에선 이렇게 말하고 있다.

 

“관중들의 함성, 선수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야유, 나라마다 다른 관중들의 분위기 등 그런 것 하나하나에 매번 주의가 흐트러지고 집중력이 떨어져 활을 잘못 쏜다면 그건 프로가 아니다. 환경이 열악하면 환경을 탓할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초월할 힘을 갖추는 수밖에 없다.”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여실히 이를 느낄 수 있었다. 호루라기를 삑삑 불어가며 소리 및 함성을 지르는 중국 응원가들. 한국 선수가 쏠 때는 소리가 더 높아졌다. 아무리 기분이 좋더라도 선수들이 활을 당기고 있을 때는 조용히 해주는 것이 물론 예의이기도 하지만 당연한 처사인데, 그들은 결코 그러질 않았다. 오히려 더 방해하기 위해 숨을 멈추고 극도로 집중하는 그 순간 선수들을 방해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결코 굴하지 않고, 그 악조건 속에서도 당당히 10점을 꽂는다.

 

정말 ‘프로’라는 사람은 그 어떤 환경도 따지지 않는다. 일례로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정말 부럽기도 한 부분) 어디서든 공부를 한다. 내가 몇몇 핑계를 대고 있을 때(비가 와서, 방이 정리가 안돼서, 조금 피곤해서, 밖에 시끄러워서) 그 친구들은 그저 묵묵히 책을 본다. 의자가 없으면 바닥에 앉아서 하고 날씨가 추우면 이불 속에 들어가서라도 책을 본다. 이것이 바로 열정이다. 어떤 조건에서도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하게 되는 것이다. 양궁 선수들도 엄청난 열정이 있었기에 하루 종일 고된 훈련을 하고도 밤이 되면 하나 둘 조용히 나가서 훈련장에 불을 켜고 또다시 시위를 당기고 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훈련을 해 보았으니 약간의 소음과 비바람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고 경기에 임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프로가 아닐까.


의례 ‘리더’라고 하면 권위의식이 있게 마련이다. 물론 자신이 져야 하는 책임도 많으니, 시중에 나와 있는 리더들의 글을 보면 강한 면모가 보인다. 하지만 국가대표팀 감독을 하는 ‘서거원’씨의 책에서는 결코 자신이 잘났다는 글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시중의 많은 책들이 자기자랑을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또 낮추었다. 선수들이 힘들어 하면 선수의 눈높이에 맞추고, 선수들이 뭔가 잘못됐으면 누구처럼 이래라 저래라 소리를 지르거나 잔소리를 하지 않고 묵묵히 바라보다가 본인이 직접 솔선수범하는, 혹은 선수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말을 걸게끔 하는 조용한 카리스마를 가진 감독이다. 끓는 물처럼 가볍게 보글보글 끓지 않고 한없이 깊은 바다처럼 묵묵히, 굉장히 말을 아끼며 가만히 쳐다보다가 필요할 때 짧은 말로 선수들을 격려한다. 그러기에 더욱 힘이 있고 강하게 어필을 할 수가 있는 것.

 

국가를 대표하는 팀의 감독이라는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결코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뒤에 서서 팔짱을 끼고 묵묵히 바라보는 아버지같은 존재, 그가 있었기에, 그가 선수들을 믿고 힘든 상황도 꿋꿋하게 이겨냈기에 대한민국의 양궁은 더욱 날카롭게 하늘을 가르며 10점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야말로 최고의 경영진과 최고의 직원들이 만들어낸 세계 최고의 회사가 바로 대한민국의 ‘양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