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의 커피 - 나누고 베풀고 거부(巨富)되는 신기한 이야기 레이첼의 커피 1
밥 버그.존 데이비드 만 지음, 안진환 옮김 / 코리아닷컴(Korea.com)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교 중간고사가 끝나고 교수님께서 시험지를 나누어 주셨다. 다른 친구들과 이것저것 보면서 틀린 문제를 비교하는데, 어처구니 없게 부분점수가 깎인 곳이 있었다. 분명 기억에 이런 부분을 제시하라는 문장이 없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답을 도출하는 과정을 안 쓴 탓에 점수가 깎였던 것이다. 교수님께서는 혹시 이상이 있는 학생들은 저녁 어떤 시간에 교수실을 방문하라고 하셨고, 나는 시험 문제지를 한번 볼 수 있을까 하여 찾아갈 마음으로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께 호실을 물어보았다.

"나중에 몇 호실로 가면 되나요?"
"(퉁명스레).....아 뭘 또 찾아와~ ....... XXX호 !"

라고 하셨다.
다행히 학기말 고사가 끝나고 그 과목 성적이 잘 나왔기에 지금은 웃고 지나갈 에피소드이지만. 다시 한번 느꼈다. 다대일 일때의 모습과 일대일 일때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결코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위트 있고 유머 넘치는 교수님이시다. 워낙 농담을 잘하셔서 학생들에게 인기도 많고 유능하셔서 짭짤한 부업도 하고 계신다. 나도 그런 교수님 수업 듣는 게 즐거웠고, 조금이라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저 대화 이후. 일종의 환상이 쨍그랑 부서지게 되었다.

내 머릿 속에 인식되어 있는, 소위 높은 사람들에 대한 개념은. 무섭다. 이다.
그들이 호랑이 같아서 무서운 게 아니라, 평소에 대하던 모습과 달리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확 다르다는 점이 그러하다. 아니 도대체, 그렇게 밝게, 인자하게 표정을 짓고 생활하던 때는 언제고,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입에서 웃음이 사라질 수가 있을까. 정녕 그저 보여주기 위한 따뜻한 미소였단 말인가. 약간의 배신감과 함께 말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에는 무뚝뚝하다가도 제대로 알고 나니 더 정겹고 따뜻한 사람도 수없이 보았다. 내가 인사하기도 전에 먼저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 내가 불편해할까봐 먼저 편하게 다가와 주는 사람, 내 입장을 나보다 먼저 이해해주는 사람. 그 사람들을 보며 정말 감사함도 느끼고 많은 묵언의 가르침도 얻을 수 있었다.

 

레이첼의 커피.
대한민국의 아주 전형적인.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 이야기에 의하면 아주 전형적인 회사원 조. 그리고 그의 좋은 스승인 핀다. 그리고 레이첼. 크게 이 3명이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계산과 조건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 내가 밥을 사면 너도 밥을 사야 하고, 내가 술을 사면 너는 노래방을 사야 하는. 1 + 1 = 2 가 되어야만 하는 회사원 조는 중요한 실적을 앞두고 난관에 부딪힌다. 여기저기 도움을 청해보고, 저번에 자기가 도와준 것을 기억 못하느냐며 때아닌 응석도 부려보지만, 번번히 거절당한다. 그럴때 갑자기 머리에 스쳐간 '핀다'라는 사람의 강의. 한번 만나볼까 하여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과연 개인적으로 만나줄까 라는 기대가 무안하리만큼, 당장 만나준다. 그것도 아주 받들어모신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선뜻 가르침을 주겠다고 하며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들에게도 데려가서 좋은 이야기를 듣게 해준다. 그가 지금까지 알아오던, 돈만 알고 상냥이라곤 찾을 수 없는 아주 빠듯한 스케쥴의 잘나가는 사람들일 줄 알았는데, 웬걸. 친구보다 더 다정하고 따뜻하고 모든 걸 나누어줄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매일 점심시간. 차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들의 성공 스토리를 듣는다.

단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Give !

무조건 주어라. 주고 또 주고, 또 주고. 그래도 주어라.

심지어 자신이 바보라고 느껴지더라도. 주어라.

무조건 주라고 한다. 아니. 도대체 모든 것을 주고 자신에게 무엇이 돌아온단 말이냐 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한번 웃고는 또 주라고 한다. 그리고 매일 가르침을 받을때마다 꼭 하루 내에 실천을 하라는 조건에 주인공 조는 어쩔 수 없이 내키지 않으면서도 하나씩 실천을 하게 된다. 평소에는 거의 '경'읽는, 아내 옆에 있는 '소의 귀' 역할을 하던 그가 스펀지처럼 그녀의 말을 들어준다. 그리고, 죽어도 자신의 경쟁상대였던 친구를 누군가에게 소개시켜주기도 한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을!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이전 같으면 땅을 치고 분개할 일이었건만.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가 않다.

핀다와 며칠간을 함께 하면서. 처음에는 의문 투성이었던 문제들이 이상하게 하나하나 풀려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도 그들과 함께 삶의 여유를 되찾고 느긋하게, 그리고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준비가 된다. 그리고 그 또한, 핀다와 같은 입장이 되어 누군가에게 스승을 소개시켜준다...


예전에 한창 책을 읽을 때. 화술에 관한 책을 많이 보았다. 처세술, 화술, 대화법, 대화술 등등 수많은 제목으로 독자를 기다리고 있는 책들을 한권 한권 읽어가면서. 정말 상상치도 못한 방법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정말 많은 친구들을 순식간에 사귀는가 하면 이전까지의 이미지와는 확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더불어, 말을 조금만 교묘하게 하면 이 세상 어떤 사람이든 내 편으로 만들 수 있겠다라는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조금만 그들의 대화에 응해주고 살살 구슬려 나의 부탁을 한다면.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에게 일단 마음을 놓으면 벽을 치지 않고 대체로 받아들인다는 게 사람 심리라고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어느 순간 시간이 지나며 많이 까먹었지만. 분명 내가 배워왔던 화술에 뭔가 빠진 것이 있다. 바로 '마음'. 그리고 '진실'. 그저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척 하고 나에게 이로운 것만 가져온다면 나 또한 결코 과거의 조와 다를 게 없었다. 진심으로 그들을 들어주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그들과 함께 숨을 쉬어야 할 망정, 그저 책에서 배운 방법을 건성으로 써먹으려 했으니...

겉으로만이 아닌, 마음부터 내가 만나는 사람을 진솔하게 대하고 그들에게 결코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주다보면(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심지어 따뜻한 미소라 할지라도) ... 아니지, 주다보면이 아니라 그저 주고 또 주어야겠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러면 내 마음부터 따뜻해질 테고. 그것만 해도 충분히 나에겐 플러스이니까 ♡

누구 저랑 커피 한잔 하실래요? 마침 동전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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