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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근하는 당신에게 - 쉴 틈 없는 업무의 나날 속에서 영성을 지켜내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이정규 지음 / 좋은씨앗 / 2017년 2월
 평점 :  
     
 
        
            
            
            
            
            
            
            
(2018년 겨울 작성)
하늘과 땅을 동시에 딛고 사는 당신에게
 이정규 목사님의 『야근하는 당신에게』는 어디에서도 위로받지 못하는 이 시대의 크리스천 직장인들에게 주는 따뜻한 메시지다, 제목은 야근에 대해서 다루는 듯하지만 사실 야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에 지쳐 인생의 안식을 얻을 수 없는 이 시대 모두를 위로하는 편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싸구려 힐링을 주지는 않는다. 아픔의 본질과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귀에 좋은 소리를 해주는 것은 오늘은 버티게 해줄지 모르나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저자는 먼저 우리가 처한 세상이 악한 세상이며, 하나님께서 이런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아신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그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성경 말씀에 따라 따뜻하게 교훈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을 제공한다.
 리뷰의 제목을 무어라 할지 정말 고민되었다. 책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내가 느낀 많은 감정들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한참 생각 끝에, 결국 책 이름을 본 따 이렇게 정했다: “하늘과 땅을 동시에 딛고 사는 당신에게”
 야근하는 당신, 곧 나를 포함하여 이 치열하고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은 하늘과 땅을 동시에 딛고 사는 사람이다. 먼저 우리는 하늘의 사람들이다.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고, 믿음으로 천국의 안식을 맛보고 누린다. 크리스천은 주일을 성실히 지키고, 계명대로 가족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땅의 사람들이다. 우리에게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벽들이 있다. 야근하는 문화는 우리를 안식하지 못하게 한다. 이 사회는 크리스천이 주일을 기쁨으로 감당하지 못하게 하며, 가족과 이웃을 사랑할 여유를 앗아간다. 이처럼 우리는 고난과 눈물이 있는 땅을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마주한다. 
 결국 크리스천은 이렇게 한 발로는 하늘을, 한 발로는 세상을 딛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 책은 나에게, 이 두 발 중 절대로 어느 한 발도 포기하지 않고 양쪽을 단단히 디디며 오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6계명을 어기는 시대에 사는 당신에게
 특별히 인상 깊었던 점은 이 책이 십계명 중에서도 “안식일을 지켜라” 는 4계명이 아니라 “살인하지 말라” 는 6계명으로 이 사회를 분석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살인하지 말라” 는 6계명은 적극적으로 생명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에 따르면 세상은 6계명을 위반하는 곳이다. 야근은 우리의 시간을 앗아가고, 건강을 파괴하며, 가족과 함께 보낼 여유를 앗아간다. 특별히 야근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영적 생명을 앗아간다. 평일에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예배의 기쁨을 누리는, 참으로 당연한 삶을 살지 못하도록 만든다. 결국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이처럼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또 죄를 짓기 매우 쉽도록 우리 삶을 어두움으로 감싼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꽤 오래 백화점 창고에서 일을 했다. 이때 처음으로 주일을 지키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전에 주일은 평일 내내 기다려지는 날이었고, 교회 가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설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일을 시작한 이후로 주말은 내게 큰 짐이 되었다. 남들이 즐긴다는 주말의 낮잠은 허락되지 않았다. 토요일도, 주일도, 일찍 교회에 나와서 봉사하고 예배드려야 했다. 사실 이 문제는 영적 전쟁이나 아브라함의 시험과 같은 거창한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한 주의 삶이 너무 피곤해서, 많이 피곤해서, 몸과 마음이 좀 쉬고 싶다고 그렇게 신음할 뿐이었다. 직접 경험해보고 나서야, 직장을 다니면서 신앙의 끈을 붙잡는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게 되었다.
 지금도 사실 솔직하게 힘이 든다. 평일에도 과제와 시험, 동아리로 인해 치열하게 사는데, 주말에도 신학생으로서 교회에서 아침부터 하루 종일 봉사해야 한다. 물론 좋아서 하는 일이고 이전과는 달리 기쁨과 뿌듯함이 가득한 일이다. 그래도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와 뻗다시피 침대에 누우면, “이렇게 또 이번 주일을 버텨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내게 가장 큰 위로는 하나님이 우리가 이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아신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책이 마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네 잘못 만은 아니다. 모든 책임이 너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힘든 세상을 나름대로 버텨내느라 고생이 많다. 내가 그것을 안다”
 “아! 하나님께서 아시는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다. 이 글을 읽으며 정말 많이 울었다. 그렇다. 바쁜 삶에서 영적인 기쁨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는 것, 주일을 온전히 지키기가 사실은 버겁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신다. 거룩하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 속에서도 지금의 삶을 어떻게라도 버텨보려고 발버둥 치는 내 마음을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 물론 그렇다고 내 죄가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를 살아가는 나를 하나님께서 정말로 불쌍하게 여기신다. 나의 삶을 이해하고 또 격려하신다. 이것이 나의 가장 큰 위로이며, 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소망이다.
자녀가 된 당신에게
 만약 이 사회에 문제가 있고, 하나님이 그것을 아신다는 것으로만 끝났다면, 위로는 될지 몰라도 공허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은 줄곧 “그러나 너는” 아버지께 나아가야 한다고 권면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서만 진정한 안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큰 도전이 되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께 억울함을 토로하며 고자질할 수 있고, 위로와 보호를 요청할 수 있다. 세상은 이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서러움과 아픔을 고백할 대상이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이다.
 물론 하나님 안에 살더라도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나는 월요일 출근 후 듣는 욕 한 번에, 주일에 충전했던 영적 투기가 다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 적이 많다. 용광로 같이 활활 타오르던 영적인 심지는, 실전이라는 찬물 한 번에 김도 한 번 나지 않고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죄로 인한 “노동의 저주”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더 이상 노동 “덕분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자기 자녀를 돌보시는 아버지의 자비하심 덕분에 모든 것을 공급받는 자이다. 하나님은 들풀조차 신실하게 입히시는 분이다. 물론 여전히 이 땅을 딛는 동안에는 노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너머에, 우리를 진짜로 돌보시는 아버지의 신실하심을 의지하며 안식할 수 있다.
 이것이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사실 앞으로 살다보면 일하는 곳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보다 오히려 부족함을 보이는 때가 많을 것이다. 또한 업무 처리를 위해 불의를 행할 유혹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우리 삶은 직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키신다. 그러므로 실패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 불의의 유혹에도 주를 위하여 타협하지 않을 수 있다. 정말로 내 삶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세상의 평가에 낙심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해 일할 것이다.
야근하는 나에게
 나는 하늘과 땅에 한 발씩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 치열한 땅에 한 발을 딛고 살아간다는 것은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이다. 하나님께 매일 나아갈 수 있고, 모든 문제와 아픔을 털어놓을 수 있다. 주 안에서 안식하며 이 고난을 넉넉히 버틸 수 있다. 내 삶은 나의 환경이나 노력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아버지께서 지키신다. 책은 나에게 이러한 확신을 주었다. 나는 이 확신으로 오늘 하루를 넉넉히 버텼고, 그렇게 내일을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