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개정판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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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독을 하고선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두번을 거듭 읽고 어렴풋이 내 어렸을 적 제사 풍경을 기억해 냈다. 고모, 할머니, 엄마, 숙모들이 전을 부치고 나 또래 어린 사촌과 동생들, 남자 어른들은 티비를 보거나 해 놓은 음식의 맛을 보거나 담소를 나누던 장면. 부엌엔 여자들이 안방과 거실엔 남자들과 어린애들이 그득했던 기억. 마냥 즐겁게 놀았던 그 시절에 작품 속 불편한 기운이 나 모르게 감돌았던 적이 있었을까 하고 떠올려졌다.
명절 때만 되면 모이던 각계 친척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누구네는 어딜 다니네, 누구는 이번에 또 사고를 쳤네 이런 말이 오갔고, 특히 엄마가 집을 나가 동생과 나 아빠만 참석한 중2 무렵 추석부터 엄마의 빈자리 때문에 다들 안됐다 하면서도 수군대고 엄마 때문에 손을 채워야 하는 수고를 누구는 불평했을지 모르겠다.

남편의 시댁 제사에 참석한 주인공 세나는 고모가 쌀쌀맞게 자신 내외를 대하는 것과 치매걸린 할머니 돌보는 일을 고모나 시어머니에게 떠맡기는 시부를 보며 또 그런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해사하게 넘기는 남편을 보며 자신의 외가를 떠올린다. 외삼촌에게 차별을 겪으며 자란 친정 엄마는 고모와 같이 입버릇처럼 사촌들에게 안좋은 소릴 했고 세나 역시 그들 무리와 어울리지 않았던 것.

그런데 수십년째 가져온 이런 모임에서 여자들의 부당함과 차별을 알면서도 남성들에게 쉬쉬하며 모름의 권력을 이어가게 하는 이유가 결국엔 좋아하는 아들의 얼굴이 좋아서, 남편의 그런 안온한 얼굴이 망가지는 걸 원치 않아서라니.
여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유교 문화의 뜨거운 감자 제사 노동은 어쩌면 여자 본인들의 성적 만족과 계급 상승 욕구의 산물이라는 해설을 읽고 나선 왠지 허망하고 자업자득이란 느낌이랄까. 제사에 대한 남녀 대립도 무의미하단 생각이 들었다.

딸에게는 아들 형제에게 양보를 권하면서도 힘들 땐 하소연을 하며 이해를 구하는 소설 속 어머니들. 어디선가 한번쯤은 봤음직한 낯익음이다. 소설은 1인칭으로 쓰여졌고 세나는 남편을 때론 너라고 지칭하며 나와 다른 인자로 분리한다. 그것은 남녀라는 성별로 그어져 어떤 상황에선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고 앎과 모름이라는 철저한 권력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 시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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