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향기 - 머무름의 기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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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사람들은 하늘의 별을 보며 이야기를 상상하고 자신도 그 이야기의 한 가닥으로써의 삶을 살았다.

서사가 있는삶. 그 삶은 나와 우리가 함께 공존했으며, 시간 또한 함께 유구한 시간으로 느껴졌다.

이야기가 있는 삶에는 의미가 있고, 나의 존재 가치가 있고, 내가 맡아서 해 나가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삶은 공허하지 않았고, 흐르는 시간이 빠르지도 급하지도 않았다. 나는 내 삶의 향기를 맡으며 시간의 향기, 이르테면 '떡갈나무 향기'같은 향기로운 삶을 살았다.

'최고의 행복은 아름다운 것 곁에 사색에 잠겨 머루르는데서 생겨난다'(p129)

중세 후기에 이르러 일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종교개혁 과정에서 노동에 대한 삶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직업은 인간을 향한 신의 부름으로까지 격상되었다. '오직 일에서의 성공만이 신에게 선택받은 징표로 해석된다.'(p144) '오직 더 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때만 우리는 신들의 마음에 들수 있다.'(p145)

이제 노동, 노동이 만들어낸 가치가 산업혁명과 함께 도래함으로써 화폐가 세상의 주인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제 사람은 일을 하지 않으면 무가치한 사람이 되었다. 자신의 노동으로써 화폐를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수 있다.

'일의 지배는 너무나 완벽해져서 노동 시간 바깥에는 오직 때우고 죽여야 할 시간밖에는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일의 전면적 지배는 다른 삶의 형식, 다른 삶의 기획을 몰아낸다. 이제는 정신조차 일을 하도록 강요당한다.'(149p)

서사가 없고, 나의 이야기가 없는 삶은 이제 '권태'로울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 하는 시간 외의 휴식시간에 광적으로 집착하며 끊임없는 '즐거움'을 추구하지만 이또한 깊은 '권태'를 더욱 깊게 할 뿐이다.

현대사회에서 '권태'롭지 않은 삶이란 무엇일까? 다시 시간의 향기를 되살리는 일이다.

'모든 사색적 요소가 추방되어버린 삶은 치명적인 과잉활동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 자신의 행위 속에서 질식할 것이다. 사색적 삶을 되살려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삶만이 숨쉴수 있는 공간을 열어줄 것이기 때문이다.'(181p)

이제, '노동의 민주화에 이어 한가로움의 민주화가 도래해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의 민주화가 만인의 노예화로 전복되는 것을 막을수 있을 것이다. .... 니체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치닫고 있다. 활동하는 자, 그러니까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은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따라서 관조적인 면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인간 교정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181p)

#시간의향기 #한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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