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한국사 역사인물 10인의 만남 (보급판, 반양장)
윤은성 지음 / 미디어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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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만남은 몇번이나 있었을까?

어린시절 시골 중학생이던 나와 농활왔던 대학생들과의 만남, 남편과의 만남 정도일까?


어린시절 나는 위대한 인물들, 유명한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좋은사람들끼리 만나서 좋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사회의 정점으로만 달리는지 부럽기만 하였다. 하지만, 외롭지 않은 사람 누가 있을까? 아마 세상을 바꾼 한국사 역사인물 10인도 그렇게 유명하고 위대한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고 성장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커졌을 지라도 그 만남으로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으리라... 

만남은 책에 나오는 유명인, 업적인이 아니라도 모든 필부필부들에게도 소중한 가치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는 어떤 만남들이 있었는지, 또 내 옆의 사람들은 어떤 만남을 가졌었는지, 혹여 누군가와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지는 않았는지 내내 생각해 보았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것은 수없는 만남이었으리라. 작가는 이러한 '만남'의 소중함의 절실함을 깨닫고 그렇게 성실하게도 공부하고 연구하여 이 책을 써서 사람들에게 인생에서의 만남들을 소중하게 여기게 하고 싶었던 모양 같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내내 솔직히 말해 많이 불편했다. 책의 작가와 나의 역사관이 많이 다른까닭이다. 이 책의 저자에 대한 정보가 없는 나로써는 책날개에 나와있는 작가에 대한 소개가 전부인데, 무지개대안학교라는 학교를 만들어 인생의 멘토를 자처하며 많은곳에서 좋은 교육을 하는 분인것 같은데.. 책을 읽으면서 기독교인인것 같고, ymca와 같은 단체와 연관이 있는 사람은 아닐까, 우리사회에서 말하는 우측쪽의 정치성향을 가진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 맨 뒤에 보면 이 분이 이 책을 쓰면서 참고했던 수많은 책들이 나온다. 이 분이 이 책을 쓰면서 그러한 책들이 배경지식이 되고, 참고를 많이 하여서 썼겠지만, 역사는 결국 사관의 문제이다. 똑같은 일도 어떤 쪽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것이 역사이다. 그래서 역사는 시대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진다. 5.16 군사쿠테타가 나라를 살리기 위한 구국의 결단이라고 칭송받은때가 있었던가 하면, 군사독재의 막을 연 군인들의 반민주적 행태였다는 평가로 바뀐것 처럼.


우리 역사 기록은 일제시대때 대부분 정립되었다. 역사상 최초 역사서라고 하는 삼국사기에서 부터 조선역사를 정리한 조선전사까지 그 의미와 평가가 일제시대때 쓰여졌고, 그 사관이 지금까지 도도히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이 사관은 우리 민족은 게으르고, 더럽고, 가난하고, 부패한 관리가 수탈한 역사로 점철한다 해도 별다름이 없다. 

우리 민족이 과연 그런 민족일까? 그러한 민족이 어떻게 기원전 2333년 고조선에서 부터 현재까지 유구한 50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올수 있었으며 민족적 전통을 가지고, 동북아에서의 중국 다음으로의 패권국으로 당당히 유지해 올수가 있었단 말인가? 

앞서 역사는 시대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지고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나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일제시대때 정립되었던 그 관점으로 보고 싶지 않다. 지금의 나의 눈으로 역사에 대한 다른 시선을 갖고 싶다.


일단, 이 책에서 고종은 한없이 우유부단하고, 비개혁적이며, 외세에 왔다갔다하는 망국의 주범으로 나온다. 정조의 서거이후 세도정치가 판치면서 조선 말 매관매직과 수탈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국가적 재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 스스로 국가를 개혁하고 세워보고자 민중이 일어선 동학이라는 종교도 있었고, 홍경래의 난과 같은 민중봉기도 있었다. 어쩌면 박근혜대통령을 탄핵했던 그 시기와 같이 민중이 일어서서 역사를 바꾸려고 했던 대변혁의 시대였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민족은 스스로 부패한것을 엎고 새롭게 바꿀수 있는 민족적 힘과 정화할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외세가 그 틈바구니를 이용해 끼어들어온 것이다.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살긴 하지만, 서로 이해하고 때로는 싸우고 화해하고 서로 얼크러져 사는 마을이 있었다고 치자. 문제없는 곳은 없다. 하지만 그 공동체는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고 잘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웃마을에서 강도가 되어 우리마을을 쳐들어왔다. 앞선 무기를 들고 우리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그래서 그 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사람들이 많이 죽고 도망가고 싸우다 부상당하고 좌절한 마을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 책임이 마을이 쑥대밭이 되게 한 촌장의 책임인가, 강도와 같이 쳐들어와 유린한 범죄자의 책임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범죄자의 책임은 묻지 않고, 마을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촌장의 문제, 평소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싸울수 있는 체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주민이 문제인것으로 생각했다. 생각해보라! 강도가 문제이지 피해자가 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인가? 

여기에 일본이 우리나라에 남겨놓은 악랄함이 있다. 피해당할만 해서 우리는 피해를 당했다. 우리의 고종이 문제였고, 민족성이 문제였고, 우리의 게으름, 우리의 문화, 우리의 사람들이 문제였다고 우리 스스로 여기게 한 것이 일본의 기막힌 역사적 전략이었다. 

일본은 우리를 식민지화 하며 가장 애쓴 부분이 바로 우리 역사와 민족성에 대한 자기무시와 자기자멸감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안타깝게도 제대로 된 해방없이, 일제시대때 일본학자들에게 배운 학자들이 그대로 우리 역사를 기록하고 가르쳤으니, 그 식민 역사관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폐부에 깊게 각인되어있다. 그래서 이런 좋은 책을 쓰고자 고생한 성실한 작가에게서도 그러한 면면을 볼수 밖에 없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고종은 과연 그렇게 우유부단하고 자기생존적인 기회주의 사대주의 자였을까? 일본이라는 강도를 상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약소국의 황제였을까? 

김옥균과 갑신정변은 우리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한 개화파였을까? 아니 일본을 등에 업는 친일정권을 세우는 것이 진정한 개화와 발전이라고 오판한 시대의 사생아였을까?

독립협회는 진정한 자주독립국가를 만들기 위한 우국충정의 단체였을까? 청나라와 러시아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이 뒷돈을 댄 친일단체였을까? 참고로 독립협회의 활동한 시기는 아관파천 시기 아직 을사조약이 체결되기도 전에 활동했던 단체이다. 


이렇듯 역사는 내가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렇게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심히 마음이 불편했다. 나와 사관이 많이 다른 까닭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알지못했던 소중한 분들과 만남들에 대해 알게 되어서 기뻤다. 특히 안창호와 만난 남강 이승훈, 신의 이태준의 만남과 그들의 고매한 인생이 감동적이었으며, 보재 이상설의 댓쪽같으면서도 열정적인 독립운동은 우리네 선비의 풍모를 엿볼수 있는 통쾌함과 그의 실패에 대한 깊은 절망을 함께 느낄수 있었다.

이 책에서 아쉬운 것은 역사를 이끈 10인의 만남을 중심으로 이어나가다 보니, 항일무장투쟁을 이끌었던 인물이나 역사적 장면을 만날수 없다는데 있다.


나와 사관이 다르고, 어느쪽으로 치우친 역사적 측면이 있기는 하나, 이토록 성실하게 조사하고 직접 찾아가서 역사서를 쓴 작가에 경의를 표한다. 


오늘의 나를 만든것은 수많은 만남에 있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 독서모임 '봄'이 두번째 모임을 갖는다. 이 모임과의 만남이, 이 모임의 사람들과의 만남이 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또한 설렌다. 이 만남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어줄수 있을지, 나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이 되는 만남이 되길, 또한번 오늘 만난 모든이들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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