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을 보는 순간 짐짓 웃음이 났다. 아니, 거짓말이다. 말 그대로 ‘빵
터졌다’고 해야 맞다. 하지만 그 누가 나를 보고 손가락질할
수 있으랴. <충청도 뱀파이어는 생각보다 빠르게 달린다> 이
제목을 보고 웃지 않은 자만이 내게 돌을 던질지어다. 그런데 왜 웃음이 났을까? ‘충청도’며 ‘뱀파이어’며 그렇게 낯설거나 이상한 단어가 아니거늘. “빠르게 달린다”는 너무나도 평이한 문장이 아닌가, 이게 왜 웃길까? 내 나름대로 찾아낸 답은 ‘익숙함과 어색함 사이에서 오는 신선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충청도와 뱀파이어, 비교적 익숙한 두 단어도 별안간 이렇게 섞이니 무척 어색하다. 서울도
아니고 제주도 아닌 하필 충청도라니. 게다가 클리셰를 부수는 “생각보다
빠르게 달린다”. 이 익살스러움에 한바탕 웃었다면 이제는 하릴없이 그의 이야기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수밖에.
이 책에 나오는 모든 건 대체로 익숙하면서 어색한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동창이지만
누군지 언뜻 떠오르지 않는 친구. 유일하게 남은 친척이지만 남보다 거리가 먼 외삼촌. 내게 도움을 주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국계 제약회사 직원. 같은
일을 하는 동료지만 국적이 다른 이주노동자. 유일하게 내게 편안함을 주는 ‘동류’인 부모님은 이미 사고로 세상을 떴다. 남은 세상은 내게 익숙하지만 동시에 어색한, 이상한 공간이다. 그럼에도 어찌됐든 또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각자 어설프고 불완전한 존재로 서로 오해하고 물어뜯지만(작중에서
문자 그대로 ‘물어뜯는다’), 그로 인해 오히려 각자가 개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강력하고 생각보다 빠르게 달리지만 몰개성한 뱀파이어가 아닌, 유약하고 쉽게 상처입지만 서로 다른 개인이기에 오히려 더 강한 ‘인간’. 익살을 가장하여 재밌게 썼지만, 이 이야기는 결국 익숙함과 어색함
사이 어딘가에 있는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가족이나, ‘베스트 프렌드’는 없지만, 적당히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관계 속에서 서로 돕고 난관을 헤쳐 나가는 게 바로 인생이라고 넌지시 속삭이는 기분이다.
권말에 실린 작가의 말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세상의 모든 이가
나를 버린 것 같아도, 아니 실제로 버렸더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가 한 명만 있다면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당신에게 단 한 명이라도 그런 사람이 있기를, 또 당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기를.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우리
사이에서 피어나는 용기가 오늘 하루를 또 살아가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