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는 이제 영영 돼지를 만나지 못한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260
김중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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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꾼다.

눈을 감는다.

눈을 뜨고 천정의 검게 그을린 더러운 환기구를 바라보기 전까지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꿈,

시커먼 우물로 빨려들어간 듯,

내지르는 비명도 깊고 깊게 삼켜내는 꿈.

 

꿈의 공간에서 보여지는 현실은 황당하게 중첩되고 부당하게 어긋나는 이미지들의 나열이다.

건달같은 새들이 몰려 다니고, 아가씨들의 웃음은 푸석푸석하며, 도시의 행인들은 활기를 잃고

도형수처럼 길을 걸어 다닌다.  구름들은 신경질적으로 구겨지고 있고,

백사장은 더이상 희지 않으며, 숲인 줄 알았던 곳은 작부와 썩은 내가 진동하는 항구였고,

마치 그의 정신이 더이상 성장하지 않고 분열하기 시작하듯이, 잉크와 종이는 공책에서 분열되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존경하는 선생님은 개새끼일 뿐이고, 이 세상이 무너져도 굳건하게 내 옆을 지키고 있을 것 같았던, 그 존재의 진실성에 대해 한치의 의심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던,

엄마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광장과 밀실 모두 그에겐 숨을 수 있는 곳이 아니며,

그는 광활한 난간의 문턱, 탁 트임과 아슬아슬함이 교묘하게 공존하는,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공간에, 꿈에서나 가능할 법한 공간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저 아래 황당하고 부당한 이미지들이 기이하게 살을 섞는 현실을 주로 보아 왔지만,

여기, 꿈과 착시 속인 것만 같은 광활한 난간에 걸터 앉아,

가끔 위험하다고 느껴질만큼 아름다운 별도 슬쩍 바라 봤던 것이 사실이라고 고백하는 시인은,

그래서 사람스럽고 또 사랑스럽다.

 

곧 저 아래로 추락할 듯이 위태위태한 난간에 엉덩이를 걸치고, 기이한 현실에 몸을 던질까 말까,

꿈을 깰까 말까를 곰곰히 생각하면서도,

치사하게 혹은 사치스럽게 별도 좀 바라 봤다던 시인은 자기 자신을 이렇게 얘기해 준다.

 

물질들이 잠시 머물다 떠나는 지갑인양 흉측한 몰골로,

도무지 손에 잡히지않는, 병신들이고 귀신들인, “헛것들 (헛된) 싸움을 하고 있다가,

저 깊고 무거운 심연으로 가라 앉지도 못하고, 가벼운 것들만이 아롱거리는 곳으로 추방당하며,

그가 친화력을 느꼈던 어떤 것들이 남긴 푸른 멍을 몸에 새긴채 절벽에 매달려 버둥거리지만,

(역시, 꿈속 인듯, 착시 인듯)

그는 꺼진 초를 다시 켜듯 바람을 다시 켜고, 절벽을 다시 켜려는 황당한 의지를 보이기도 하며,

어쩌다 누군가가 그에게 빳빳한 희망이라도 찔러주면,

미친듯이 살아 보겠다고 몸부림을 친다.

 

추하게 썩었지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현실과 제정신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끔찍한 (또 다른 현실인) 착시들 사이에서, 이젠 感傷도 심장을 자극하지 않는 무뎌진 신경을 허탈하게 바라보면서,

시인은 그래도…”라고 말한다.

 

어떤 것이 진정한 현실인지 온통 헷갈리고, 이미 경험한 것과 앞으로 살게 될 것들 사이에서 혼돈을 느끼며, 꿈과 착시와 환상들 사이에서 몽롱하게 정신이 왔다 갔다 하면서도

그는 자기 가슴을 후려치며 푸르고 비린 하늘을 보러 떠오르며,

심약하지만 뜨겁게 달아 오르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무서운 환상과 꿈과 착시들이 너무나도 공포스럽다고 절규하고

절규하다가

밤 하늘에서 찬란하게 폭발하는 별들처럼 부서지고 싶은 것이다.

 

보이지 않고 보이는 곳에 서 있는 그대여,

희망할 수 없는 것을 희망하는 그대여,

 

그대여, 언제 꿈을 찢고 환상과 착시에서 깨어나 나올 것인가

그대여, 언제 거기서 나올 것인가?

 

그대가 나온다면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는그 곳은 또 어디란 말인가?

(*위 글은 글쓴이 본인의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irischu 에 게재되어 있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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