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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개정증보판
홍세화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평점 :

책을 받아 보고, 표지가 너무 아름다워 감동받았다.
구판의 표지는 “이게 대체 무슨 내용이지?” 싶게 모호했는데, 개정판은 한눈에 들어온다. 누가 봐도 ‘운전자의 시야에서 찍은 개선문’이다. 제목과 이미지가 매끄럽게 연결되니, 이제야 비로소 책을 읽을 준비가 된 기분이었다.
10대 시절,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늘 ‘청소년 필독서 목록’에서 봐왔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진 않은 채 도서관에서 마주할 때마다 막연히 ‘빠리에서 택시를 몰며 만난 이상한 손님들의 이야기’쯤으로 생각했다. 노란 선으로 그려진 에펠탑이 마법처럼 빛나 보이던 탓에, 어쩐지 심오한 로맨스일 거라고도 짐작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사회에 대해 눈뜨면서 나는 알게 됐다. 이 책은 로맨스도, 소설도 아니다. 저자는 실제로 프랑스 파리에 망명했던 인물이고, 그 망명은 단순히 ‘시위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시점에서 ‘그 정도로 망명이라니, 뭔가 다른 사정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며 의심스러워했다. 그것은 아마 웬디 브라운의 『관용』을 읽은 직후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브라운은 말한다. 관용은 도덕적 미덕이 아니라 권력의 작동이며, 시혜적 태도라고. 나 역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더 이상 관용의 대상이 되고 싶지도, 관용을 아무 생각 없이 베풀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고등 교육을 받은 교양 있는 청년이다. 똘레랑스 같은 건 기본적으로 내장된 세대다’라고 자부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뉴스를 보며 ‘노동자’라는 단어에 무심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노동자’가 될 수조차 없는 이들이 등장하는 시대, 나 역시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매일 시험받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증명하고 싶다가도, 새벽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라며 눈물에 깨어나던 시기. 그때 마침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서문은 로맨틱했다. 홍세화 작가가 추천한 파리의 거리와 장소를 구글 맵에 표시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농담, 웃을 수 없을 만큼 아픈 진담에 마음이 멎기도 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관용 받는 자’의 위치에서 그린 ‘이방인’의 자화상이다. 이 책은 구조적 차별과 프랑스 사회의 ‘시선’을 마주한 풍경화다. 청소년을 향한 메시지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실은 관용이라는 말이 만들어내는 착시와 폭력에 대한 정면 돌파이자 증언이다.
웬디 브라운은 관용을 ‘힘 있는 자가 베푸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홍세화는 관용을 ‘공존을 위한 연대’로 전환한다. “혐오하기보다는 분노하라. 분노하기보다는 연대하고 동참하라.”는 그의 말이 처음엔 낯설고 멀게 느껴졌지만, 결국은 이해하게 되었다. 혐오 속에 살면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게 된다는 것. 그러니 어떻게든 ‘나만의 택시 운전 일지’를 써가며, 다양한 손님들과 마주하면서, 혐오를 넘어서 연대를 향해 가야 한다는 작가의 진심을.
그렇게 나는, 관용을 의심하던 눈으로 다시 관용을 바라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