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세미나 - 체제 이행기의 사유와 성찰
김규항 지음 / 김영사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삶에서 내리는 선택 앞에 ‘사상’, ‘양심’ 같은 것이 타인에 비해 중요도가 높은 편임을 알고 있다.

마흔을 바라보며 가랑비에 옷젖듯 켜켜히 쌓여온 ‘가치관’, ‘세계관’같은 것이 타인과 내 삶을 진단하는 잣대로 작동하고 있고
세상과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람직한 상태와 실제 사이의 괴리 때문에 괴로움을 자주 느끼는 편이다.
‘B급좌파’로 알려진 김규항 선생은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과 더불어 나에게 인지적 측면에서 적잖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때때로 그가 써내는 문장 특유의 묵직함과 샤프함에 무비판적으로 경도되곤 했지만, 그의 글은 확실히. 남들따라 대세따라 사고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습속에서 벗어나게끔 도움을 준다.
김규항 선생의 글은 대부분 현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물신숭배와 인간소외에 대한 개념적 현상적 비판과 통찰이었고, 광고회사를 다니던 사회초년생 때 그의 글을 만나고부터 줄곧 ‘돈벌고 소비하는 인간’, ‘타인과 관계하는 존재’로서 나 자신에 대한 불편함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리고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주의는 악한 것이다’, ‘대기업은 독점자본주의의 선봉자다’, ‘의식있는 시민으로서 선거 땐 진보정당에 투표해야 한다’는 식의 납작하게 굳어진 내 세계관으론 대기업 제품을 구매하거나, 팀원들에게 일에 대한 주인의식을 강조하며 야근하는 팀장으로서의 나의 모습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지나친 자기검열과 내 삶의 방식을 의심하고 우울해 하거나, 정치를 개탄하는 수준에 머물 뿐이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며 앞뒤로 제동이 걸린 나와 같은 사람들을 의식했던 걸까.
그가 이번에는 마르크스 ‘자본론’을 해설한 ‘자본주의 세미나’를 펴냈다. 이 책은 그 어려운 ‘자본론’을 정제하고 다듬어 경제학과 친하지 않은 이들도 자본주의 작동 원리의 정수를 맛보게 한다.
‘가치’, ‘노동과 노동력’, ‘착취’, ‘상품, 화폐, 자본’, ‘평등’ 등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용어에 깃든 오류를 짚어내고 ‘인플레이션’, ‘호황, 공황, 불황’ 등 거시적 경제흐름의 매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내 생각과 행동, 욕망과 번민을 돌아보며 어디까지가 정말 내 것인지 혼란스러웠던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있을 겁니다. 자본주의는 우리 마음과 삶에 거스르기 어려운 경향성을 만들어 냅니다. 자본주의를 아는 일은 나를 아는 일과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마르크스가 19세기 사회를 비판한 관점으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마주한 위기를 진단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하며, 논리적이고 담백한 화법으로 오늘날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설명한다.
책의 말미에 그는 노쇠한 자본주의를 살아가며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는 시기의 주역은 선구자나 군중이 아니라 ‘사유하는 최초의 개인’들이라 말한다.
이 책을 읽은 이들이 익숙하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에 질문하고, 모호한 불안이 객관적 원리로 설명되고, 매일 마주하게 될 딜레마를 뚫고 나갈 자신만의 원칙과 해답을 찾길 바란다.
그리고 그 해답이 내 곁의 동료와 가족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일상을 설명할 수 있을 때, 느끼지 못했던 해방감이 들거라 확신한다.
나도 이미 작지만 선명한 해방감을 맛보고 있으니까.



이 책을 읽고 적은 메모를 몇 문장 옮겨둔다
- 경제구조는 사회성원의 의식과 행동에 일정힌 경향성을 만들어낸다. 인생의 다양한 가치들은 상품가치로 표현되고 재구성된다.
- 평등은 윤리적 당위 차원을 넘어 현실에 있다. 바로 우리기 살아가는 사회는 사회적 분업을 통해 재생산을 유지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노동은 서로 의존하고 돕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다.
- 평등이 사회적 분업에 근거한 인간의 정의라면 공정은 상품교환원칙에 근거한 물신의 정의다.
- 노동생산물이 가치로서 서로를 비교하며 상품세계의 일원으로서 관계를 맺으려면 즉 상품이 되려면 화폐라는 일반적 등가물로 표현되어야 한다.
- 비인간화, 배금주의, 물질만능주의 등 자본주의적 병리현상이라 일컫는 상품물신성에 빠지는 일은 어떤 병증이 아니라 상품생산사회에서 살아가는 자체이다. 예의 병리현상에 대응하는 정신적노력(공유와 협동. 우애와 환대)은 의미있지만 물신성의 원인은 보지 못하고 중신층 인텔리들의 지적 유희에 머문다. 이런 구호는 사람들이 구호와 함께하지 않는 원인이 그들의 의지라는 전제에 머문다. 구호와 반대로 살수 밖에 없도록 강제하는 외부적 원인이 있다면 그런 구호는 소용없고 부당하다.
- 상품가치의 실체는 추상적 노동(시간)이다. 화폐는 다른 사람 노동의 청구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타인에 대한 지배욕구 오래 살고 싶어하는 욕구다.
-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는 상품물신성의 전지구적 확산과 심화를 가져왔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사악상 상태라고 표현되지만 실은 자본주의 본연의 상태, 순정 자본주의라고 볼 수 있다.

- 착취는 자본주의 하에서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일이다 ‘착취없는 사회’는 자본주의 아닌 다른 사회체제를 의미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