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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ㅣ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평점 :
자신이 신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신기하게도 그는 신기한 능력을 보인다. 그가 신이라 생각될 법한 일들이 그의 주위에 벌어진다. 그리고 그는 신이 맞다. 하지만 신인 그가 하는 일은 정돈되지 않아 난삽하며, 세상의 여러가지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표면만을 건드릴 뿐이다. 그의 일은 사람으로선 불가능하지만 신의 일이라 하기엔 많이 모자라 보인다.
그런 신이 얘기나 하자고 한다. 주인공에게 세상에 대한 불평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한계를 고백한다. 의심많은 주인공은 신을 의심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 그가 신이란 사실을 믿게 된다. 하지만 그가 신이라는 것을 안다 해도 둘 사이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이 나누는 우정은 이전과 동일하다.
이 소설은 신앙이 사적 경험으로 이뤄진다고 말하는 듯하다. 사적 경험이기에 신과 우정을 나눈 주인공은 신을 광장에 데려 갈 수 없으며, 단지 그와 우정을 나눌 뿐이다. 다른 이와 함께 나누기엔 그 경험은 너무나 기적적이라 개인의 경험에 국한된다.
그런데, 어째서 소설속의 신은 자신이 선택한 이에게만 우정을 나눌 기회를 선사하고, 자신이 선택한 사건 만을 해결하는가? 주인공도 이 질문을 던진다.
"나와 이럴 만한 시간이 있나요? 당신은 더 중요한 일들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신에게 사적 경험을 넘어서는 다른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세계의 불평등과 불의를 왜 해소하지 못하냐고 묻는다. 신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있어야만 하는데, 왜냐면 신이라는 단어 속에 담긴 뜻, '전지 전능함' 때문이다. 신이 이 질문에 바른 대답을 하지 못하는 순간 신은 '선함'과 '전지 전능함' 모두를 취할 수 없다.
소설 속의 신은 '전지 전능함'을 포기 했다. 자신에게 그러한 능력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고 고백한 것이다. 이것으로 신은 고유의 무거움을 벗어 던지고 가벼워 질 수 있다. 그럼으로서 우린 소설 속 신을 귀엽고, 사랑스럽게 바라 볼 수 있다. 신이 더이상 기존의 신이 아닌것이다. 우리보다 약간 능력이 있는 친구가 되는 것이다.
이때 더이상 신이 아닌 그가 '나'를 선택했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소설 속 주인공의 사적 경험에 머물러야 한다. 주인공이 현명한 것은, 이 이야기가 비극으로 흐르지 않은 까닭은, 주인공이 신을 광장으로 끌고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유일신을 믿는 이에게는 이 소설이 감동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주인공에 자신을 대입해 신이 자신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디, 소설 속 주인공 처럼 그 사적 경험을 오직 사적 경험으로만 동작하게 했으면 한다. 그렇게 이 세계 속의 신이 등장하는 실제 이야기도 이 소설과 같이 재미있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