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essiah_0 > 별루다.
달빛천사 1
타네무라 아리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타네무라 아리나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신풍괴도 쟌느'를 보고 실망한 이래로 이 사람의 작품은 더 이상 찾지 않았다. 어쩌다 '만월을 찾아서'를 보게 되기는 했지만, 조금 나아졌다 뿐이지 내가 전에 느꼈던 구조상의 문제는 여전했다.

한마디로 지적하자면, '왜 이토록 좋은 설정을 가지고 이거밖에 못 만드냐' 라는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쟌느도 그렇고 만월도 그렇고, 리본이 겨냥하는 대상층을 생각하면 타네무라의 설정은 괜찮은 편이다. 애들 이해하기 좋으면서도 적당히 흥미있고 약간 어두우면서도 참신함이 첨가된, 우연찮게도 둘 다 변신소녀물. 요새 유행하는 대로 중간에 반전이 있다는 점도 좋다.

그런데, 그것 외에는 건질 게 없다. 구성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에피소드의 배치라든가 캐릭터간의 갈등요소를 구성하는 능력이 별로다. 이야기의 전개력에 힘을 더해주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캐릭터간의 '갈등'이다. 이게 없는 이야기는 소금 안 친 곰국이나 매한가지다.

그런데 타네무라의 이야기는 갈등이 너무 약하다. 만월만 보더라도, 라이벌로서 마도카가 등장하지만 5화가 채 지나기도 전에 지레 발저리더니 퇴장한다. 그 뒤를 잇듯이 이즈미가 나타나 갈등을 형성하지만 마도카보다도 더 빨리 이쪽 편으로 흡수된다. 그럴 거면 이 캐릭터를 도대체 왜 집어넣었는지 알 수가 없다. 어찌 결말이 날 지는 모르지만 만일을 위해 메로코의 상대역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한마디로 완전한 짝짓기의 해피엔딩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등장시킨 보험이라고밖에는 추측이 안된다.

미츠키가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모습의 묘사도 은근슬쩍 넘어가고 있다. 미츠키가 얼마나 스스로의 힘으로 노력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지 않으면 이 이야기는 그저 남자에 목숨 건 흔해빠진 스토리로 보임에도 불구하고(그래서 마도카의 역할이 중요한 건데 말이다). 이래가지고는 이야기의 전개가 탄력을 잃는다. 사랑에서의 삼각관계도 없고, 일에서의 갈등관계도 없고 착한 마음 하나로 만사가 탄탄대로여서는 얘기가 오래 가지도 못하고 재미도 없다는 얘기다. '유리가면'을 봐라. 주인공이 사랑에서도 일에서도 하늘까지 올라갔다가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아주 시소를 타고 있다.

쟌느도 마찬가지다. 핀이 타락천사임을 밝힌지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약한 모습 보이고 넘어올 듯 넘어올 듯 해가지고는 독자의 주의를 끌 수가 없다. 그렇잖아도 저연령층 만화라 구십구쩜구퍼센트로 해피엔딩일게 뻔하다는 핸디캡을 안고 있는데.

그런데 여기서 더 악수를 둔다는게 문제다. 얘기를 끌고 나갈 요소가 약해지니까 엉뚱하게도 조연 캐릭터들의 과거를 다 까발린다. 빈약한 갈등을 보충해야 될 시기에 갑자기 화제를 바꿔서 주변인물들의 신세타령으로 매 에피소드 분량을 채운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건 이야기를 흥미있게 만든다기보다는 구성을 망칠 가능성이 더 높다. 대개의 경우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얘기이기 때문이다.

전에 어떤 분이 '그 남자 그 여자' 12권을 보고서 이런 단평을 쓰신 것을 보았다.
"'그 남자 그 여자'는 맞는데, '그 남자'와 '그 여자'가 바뀌었다."
이 만화의 가장 큰 문제점을 꿰뚫고 있는 한마디이다.
작가는 카즈마와 츠바사의 얘기를 열을 내며 늘어놓지만, 그걸 다 읽고 나면 '흐응... 그래서 어쨌는데?'라는 반응이 나온다. 재미있는 것과 별개로 이러한 에피소드들은 명백하게 전체 구성을 말아먹고 있다. 왜냐면 이들의 이야기는 주인공인 아리마와 유키노의 이야기 흐름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외전이라는 형식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작가는 이 이야기가 주인공의 이야기임을 명심해야 한다. 조연이 중심을 가져가면 가져가는 만큼 이야기는 구심축을 잃고 뜬다. 미안한 말이지만 하나의 작품 속에서 조연은 주제파악을 하고 자중할 필요가 있다. 그런 식으로 캐릭터 제각각의 이야기를 전부 벌려놓으면 막판에 어디서 끝맺어야 할지 알 수가 없게 된다. 마법의 가을은 사람마다 각각 틀린 시기에 찾아오고 끝나기 때문이다. 구심축이 있어야 쳇바퀴가 제대로 돌아가는데, 이런 식이 되면 구심축이 덜거덕거려 깔끔하게 돌아갈 수가 없다. 구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제일 잘 보여주는 예를 들라면 시미즈 레이꼬의 '월광천녀'가 있다. 구성이 이렇게까지 엉망이고 전개가 막 나가는 작품을 또 찾기도 힘들거라 생각한다. 그야말로 타산지석이자 반면교사다. 이쪽은 아예 구심축의 나사가 빠져서 신나게 내리막길로 구르기 시작한 상태라 이미 수습이 불가능하지 않나 싶다. 독특한 설정과 분위기가 너무 아깝다. 정녕 '달의 아이'를 그리면서 배운 점이 없단 말인가.

쟌느도 그렇고 만월도 그렇다. 핀의 과거를 그토록 페이지를 잡아먹으며 구구절절이 설명해줄 필요가 있나. 전에 메로코가 미츠키 할머니랑 친구 사이였고 미츠키 할머니가 아오이의 아버지와 삐리리한 사이였다고 해서 그게 현재의 미츠키와 뭔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그냥 묻어둬도 될 잡다한 설정을 끌어내서 에피소드 분량을 채우니까 그만큼 전개는 늘어지고 '미츠키의 이야기'에 잡음이 많아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연들의 최종적 해결은 단순해지니까(이리저리 캐릭터간에 얽힌거 하나하나 풀려면 끝이 없으니 단순하게 낼 수밖에) 결국 깔끔하지 못하고 부자연스런 엔딩이 된단 말이다.

 

그리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아서 덧붙이는데 제목이 바뀐 것은 전적으로 일본 출판사가 원해서이다. 애초에 밍크에서는 1. 보름달을 찾아서 2.풀문 3.달빛천사 이렇게 세개를 제안했는데 일본측에서 현지화를 중요시하며 어감도 예쁘고 작품과도 그럭저럭 어울리는 달빛천사를 선택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달빛천사라는 제목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다. 유치하게 느껴진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데, 솔직히 유치한 건 맞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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