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없다 - 기독교 뒤집어 읽기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 개봉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고 나서 다시 4복음서를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을 번갈아 보며 읽었지만 아무리 그냥 믿어보려 해도 의문이 드는 나의 신앙을 보며 풀이 죽어 있던 차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모태신앙은 아니어도 20년을 훌쩍 넘기고 개척교회에서 6년간을 성가대로 교사로 청년부로 시간과 젊음을 불태워가며 신앙생활을 했지만 조금만 정신을 놓아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의문들과 회의감에 나는 의심많은 나의 성격을 탓하기만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아이때문에 닥친 어려움속에서 난 내가 줄곧 배우고 아는 신앙대로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실줄만 알았다 홀연히 임하셔서 신속한 치료를 해주실줄 알았다

그게 아님을 느끼면서 나는 더 많은 회의감에 빠져야 했다

교회는 다녔지만 그냥 다녔을뿐 전과 같은 열심과 열의는 없었고 그렇게 4년이 흐르면서 나는 교회에 다니는 주위 성도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전에는 열심을 내는 성도의 한 사람이였기 때문에 그런 시각으로 볼 수가 없었다

이러한 기회는 나에게 다른 각도의 신의 개념을 희미하게나마 느끼게 했고 역사적 고증이니 하는 지식도 없고 성경이 하늘에서 떨어진것으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이게 다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차에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읽었고 이것은 나에게 속박처럼 여겨졌던 대속의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둥 구약을 읽으며 잔인하고 이기적이기까지 율법의 하나님에 대해서 벗어나 신에 대해 다른 눈을 뜨게 했고 이러한 신이면 나는 정말 믿고 싶다라는 진지한 이끌림이 생겼다

나의 의식에 변화가 조금씩 생겨난 때에 '예수는 없다'라는 책을 접한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예전의 나였다면 이 책은 아마 제목을 읽는 순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약간의 변화가  생간 나에게  이 책은...나를 슬프게도 하고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슬프다는 것은 ... 그래도 내가 믿고 있는 예수님은 초능력을 가진 신이기를 바랬고 내가 억울하고 원통할때 대신 갚아주셔야 하는 분이고  믿기만 하면 천국으로 갈 수있는 아주 쉬운 길을 열어주신 분이였는데 이것이 아니라면 내가 지금까지 고수했던 신앙과 열심이 다 헛되다는 것이고

혼란스럽다는 것은 이 책을 읽고 나서 성경의 말씀이 이전과는 달리  들릴 것이 분명한데 이제 나는 나의 신앙의 대상과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불교처럼 명상하고 혼자 찾아야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믿었던 신앙은 비록 장님같았어도 그냥 따라가기만 다해주신다는것이 편했는데 이제 나는 어디에 마음을 의지하고 기도해야 하는지 막막해진다

책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고 시간을 길게두고 다시 깊게 고민해 봐야할 것 같다 

지금은 집을 잃은 아이처럼 마음이 불안하지만 하나님에 대해 또 예수님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다시금 나에게 샘물같은 깨달음이 생기리라 기대하면서 용기를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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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NA 2010-06-0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참전에 쓰신글 같은데 우연히 보았습니다.
저도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예수가 존재함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종교가 아니죠
기독교가 저지른 가장 큰 죄악이 그것일 것입니다.
기독교를 스스로 종교로 전락 시켜버린것.
기독교의 이름을 걸고 예수의 이름으로 오랜 역사동안
몇몇 권력자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불교 이슬람교 여타 다른 종교와 대결구도를 만들며 스스로 종교로 전락시켜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방해가 되는것은 불교나 이슬람교가 아니라
바로 죽기 싫어해 시퍼렇게 살아있는 자아입니다.
이것은 불교든 무교든 기독교인이든 누구에게든 해당되는 일이겠죠
한 불교신자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어쩌면 그것은 그가 종교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것(돈이나 세상 아니면 자아성취)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독교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타적인 기독교인은 믿지않는 사람들도 그리고
스스로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죄악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타종교인들이 말하는것을 잘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100%다 진실이라고 할수는 없겠지만 그 얘기들중에 어쩌면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오해하고 있었던 부분이 있을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교회는 유대인의 교회와 예수가 승천하신후 2000년 가까운 시간동안
불완전했던 중세 카톨릭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합니다.
기독교에서 구원의 척도로 내세우는 것들
(교리는 그렇지 않지만 강요되고 있는것들)
즉 교회와 목사 헌금 봉사 성경이라는 새로운 면죄부가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있는 지금 이순간이 완전하다는 착각을 하며 살지만
예수가 이 땅에 오신이유가 그것을 잘못 받아들인 자들에 의해
아직 다 온전해지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과정중에 있는 것이겠지요.

종교에관한 문제에서 하나님을 믿는자들이 좀더 초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내 자아가 죽고 십자가를 통과하여 성령에 의지해 살지 못하면서
타인이 무슨 종교를 가졌냐에 크게 상관하며 그들을 불의하다 여기고
공격적으로 대하며 나는 기독교인이니 의롭다는 생각은
미성숙한 발상이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오히려 방해하는 것일 겁니다.
결국 구원은 종교가 아니라 자아와의 일이기때문입니다
내가 교회다니면서 영이 죽어있다면
영이 죽은 상태에서 절에 가는 사람, 이슬람 사원에 가는 사람이든
나와 그들의 영의 상태는 똑같습니다.

교회에 대한 의미를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겠죠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로한 지체들의 모임이 교회인데
십자가의 통과 (단지 예수와 성경을 머리로 믿는다는것이
구원의 방법이 아님에)와
자아의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또는 한 때 경험했으나
다시 다른 것이 자아의 왕이된 사람들이 모인곳에
교회 간판을 걸어 놓고 교회라 칭한다면
그것은 여타 다른 동아리 모임이나 세상 공동체와 다를바가 없을 것입니다.

때로는 비전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빙자한 내 자아성취를 위한 사역이
오히려 하나님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합니다.
이것 역시 우상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신비한 능력을 행하는 분이길 바랬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오늘날에도 이루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예수의 영이셨던 성령이 행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자아가 죽지못한 상태에서 받은 은사로 그 능력을 행하다
공격을 받고, 자신의 욕심으로 행사하다가 넘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안에 있는한 그것은 안전하며
주님은 우리가 성령님과 교제하며 그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결국 모든것의 근원과 열쇠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내가 경험을 했냐이고
또 한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나와 자아의 죽음을
경험해야 하는 것일겁니다.
장로교에서는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하다고 하지만
성결교 에서는 다시 죄의 본성으로 돌아갈수 있다고 하죠.
후자가 맞는듯 싶습니다.
철저한 회개와 믿음의 기름부음이 임하는 그 순간에는
기쁨과 평안이 넘치다가 (주로 기도중이나 집회같은데서 은혜받는다라는 말을하죠)
다시 신앙의 침체기가 반복되거나 형식과 열심만 남고 무덤덤해 지는 것이 바로 그때문일 것입니다.

대뜸 들어와 긴 글로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