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도시 - 뉴욕의 예술가들에게서 찾은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
올리비아 랭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만나서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작년 여름쯤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알게되었다. 사실, 잡지를 통해서 알게됐다. 그 잡지는 킨포크였다. 얼마나 길게 이 책에 대해서, 외로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던지, 도대체 무슨 책이길래, 하고 찾아봤더니 마침 그 도서관에 있었다. (*좋은 잡지는 인생에 도움이 된다.)

책을 펼쳤더니, 이런 말이 써있었다. 


지금 외롭다면, 
이건 당신을 위한 책이다
 
그리하여 첫 페이지부터 홀려서 읽은 책.

너무나 밑줄을 많이 그어서 기록하는 것만도 한참 걸렸다. 


외로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할지를 코치하거나 외로움을 소재로 가볍게 소비하는 책은 많다. 특히 예술과 연결지어 이야기하는 책도 많다. 그런데 이 책, '외로운 도시'는 외로움이라는 것을 제대로 바라본다. 당신이 외로움에 잠못들어 뒤척이는 그 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아침마다 지겹게 새로 뜨는 태양에 대한 증오를 가만히 들어준다. 울면 우는대로,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화가 나면 화가 나는대로 옆에 앉아 귀를 기울여준다. 이제 그만하라고, 정신차리라고, 혹은 너 너무 예민한 것 같다고.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냐고, 혹은 어차피 혼자 사는 세상 유난떨지 말라고 핀잔하거나 바른말하지 않는다.

시작은 올리비아 랭 개인의 체험으로 부터였다. 
영국사람인 그녀는, 사랑하는 연인을 따라 뉴욕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건만, 살던 곳 다 정리하고 왔더니 그 남자는 없다. 음. 그 시기에, 그녀는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정말 지독한 외로움을 경험했다. 그동안 느꼈던 외로움과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때 그녀는 30대 중반으로, '그것은 혼자 있는 여성이 더는 사회적으로 허가받지 못하는 나이이며, 낯섦, 일탈, 실패의 냄새를 끊임없이 풍기는 연령대다.' (p30) 30대 중반 여성이 다 그런거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지만 그게 사실인걸 인정하게 된다. 그게 사실이라는 말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의식하는 불안이 내게 그렇게 말한다는 걸 인정한다는 의미다. 

이 책은, 이렇게 솔직한 자기 고백으로 시작한다. 나도, 당신도 외롭다. 이제 외로움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게 과연 무엇인지 들여다 보자. 알아보자. 심지어 그것에서 태어난 것들을 바라보자. 바라보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기다려보자.

올리비아 랭은 유려한 문장과 솔직하고 다정한 문체로 엄청나게 고독을, 고독과 예술을 탐구한다. 열정적으로, 성실하게, 믿음직스럽게. 

그녀가 바로, 그 지독한 외로움을 예술을 통해서 위로 받았고,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가 다정하게 펼쳐지니 믿음직스러울 수 밖에.

나는 사실 이 책을 에드워드 호퍼와 앤디 워홀 같은 근사한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외로움이라는 소재와 연결한 에세이들 모음집 정도로 생각했다. 나도 외롭다 외롭다 말만 하고 울기나 했지 이렇게 외로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적이 없다. 읽으면서 내내 감탄했다. 와, 나의 질문들이 여기 있구나. 

그리고, 이 책 덕분에 알게된 보물같은 아티스트들이 있다. 데이비드 워나로위츠, 헨리 다거등등. 그리고 호퍼에 대해서, 워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알게 되었다. 외로운 사람들이었더라. 호퍼는 좀 비뚤어지기까지 한 것 같더라. 아내한테 너무했다. 호퍼와 워홀이 외로움을 자기 방어 기재로 사용한데 반해, 데이비드 워나로위츠와 헨리 다거는 그 외로움을 그대로 노출했다.  특히 데이비드 워나로위츠가 그랬다. 그는 적극적으로 외로움을 연대와 창조라는 대안으로 대면했다. 외로움은 나 자신,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데이비드 워나로위츠도 그렇지만, 헨리 다거는 정말 너무나도 힘든 인생을 살았다. 학대와 가난과 외로움으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그는 정신병 판정을 받아서 그의 작품은 미치광이의 것이라고 외면되기도 했고, 어린이를 소재로 잔인하고 폭력적인 묘사와 성적인 표현이 있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아니 그래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늦게서야 주목받게 되었는데, 여기 '외로운 도시'에서 올리비아 랭이 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외로움에 대해서 털어놓다가 친구와 크게 다툰 적이 있고, 외면 당한 적이 있고,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그의 품에 안겨서 너무 외롭다고 펑펑 울기도 했고, 눈물 콧물로 그의 옷을 망쳐놓아도 외로움은 가시질 않았고, 이해받지 못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내가 부끄러웠고, 한편으로 매우 안타까웠다. 
사실, 이 좋은 책을 읽고도 잘 모르겠다. 내게 외로움의 태풍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할지. 하지만, 아까도 언급했듯이 이 책은 외로움을 이기는 법이라던지, 대처법 등을 코치하지 않는다. 문제는 늘 사라지지 않았다. 외로움도, 어려움도, 지난 날의 상처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보기. 나의 외로움을 부끄러워하지않기. 제대로 바라보기. 그리고, 이 책은 한걸음 더 나아가게 한다. 타인의 외로움을 바라보기. 유령을 알아채기. 유령이 유령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것 말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 책을 쓴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일단 나 말고 한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이다. 외로움에, 약자의 아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결국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공감능력이라고 간단히 말을 해볼까. 
나는 물론 타인의 외로움이나 아픔에, 감정에 무지하다.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고 상상하며 귀를 기울여서 이야기를 듣고 보고 관찰한다. 나의 감정만큼이나 다른이의 감정은 중요하다. 나와 당신은 너무나 다르지만, 나의 아픔에 당신이 귀기울여주고 눈물을 바라봐 준다면, 그 마음이 어떨까 상상해준다면, 불가능할 것 같은 소통도, 그 이상의 것도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랑도 따뜻한 세상도 소망할 수 있지 않을까? 들쑥날쑥 달라서 사랑이 가능하다. 모두 같다면 나는 내가 아니고 당신은 당신이 아닐 테다. 모두 같다면 당신을 어떻게 알아보고 사랑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만나고 싶은 당신을.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조금 힘이 난다. 힘을 내서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고개를 든다. 그리고 느낄 수 있을 때 외로움이든 아픔이든 슬픔이든 느끼자고, 느끼고 비축하자고 생각한다. 


우리는 고독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줄 수 있고, 그것에 맞서 무기도 들 수 있으며, 명백하게 소통수단으로 쓰일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검열과 침묵에 저항할 수 있다.(...)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고독이란 사람들이 그 속에 머무는 장소임을. 도시에, 맨해튼처럼 엄격하고 논리적으로 구축된 공간에 거주할 때 어떤 사람이든 처음에는 길을 잃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정신적 지도, 각자 좋아하는 방향과 더 잘 가는 노선들이 개발되어 하나의 컬렉션을 구성한다. 다른 사람들은 절대로 정확하게 복제하거나 재현할 수 없는 미궁이다. 그 시절 내가 쌓아올렸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것은 내 경험과 타인들의 경험으로 짜맞춰진 고독의 지도다. 나는 외롭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그것이 사람들의 삶에서 어떤 기능을 발휘하는지 알고 싶었고, 고독과 예술 사이의 복잡한 관계의 지도를 그려보고 싶었다.(...)
-p20

고독은 아주 특별한 장소. 윌슨의 발언에 담긴 질실을 보기가 늘 쉬운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까지 삶의 여정을 거치면서 내내 그의 말이 옳다고 믿게 되었다. 고독은 가치 없는 체험이 결코 아니며,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의 심장에 그대로 가닿는다는 것을. 외로운 도시에서 경이적인 것이 수도 없이 탄생했다. 고독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고독을 다시 구원하는 것들이.
-p20

나는 그전에도 외로운 적이 있었지만, 이때처럼 외로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하지만 그 무렵엔 고독의 계시, 어디에나 있지만 응답이 없는 감정을 느꼈다. 내게 뭔가가 결핍되었다는, 사람들에게는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것이 내게는 없다는 느낌. 그리고 이것이 착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서도 나 개인의 어떤 중대한 결점 탓이라는 생각. 이런 모든 것이 전반적으로 무시당하게 되는 반갑잖은 결과를 재촉했다. 나는 그것이 내가 30대 중반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혼자 있는 여성이 더는 사회적으로 허가받지 못하는 나이이며, 낯섦. 일탈. 실패의 냄새를 끊임없이 풍기는 연령대다.
-p30

(...)고독은 사람들이 무슨 수를 써서든 피하려고 애쓰는 고통스럽고 끔찍한 경험인 것 같다. 이 기피증에는 정신과 의사들 처지에서 그 주제의 명백한 과학적 규정을 꺼리는 이상한 태도도 포함된다. (프롬 라이히만)
(...)고독은 워낙 부끄러운 체험처럼 느껴지고 우리가 누릴 것으로 예상되는 삶과 너무나도 상반되기 때문에, 점점 더 허용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p44

그들이 예전에 외로웠다면 이제 그들은 그 고독을 경험했던 자아를 이해할 길이 없다. 뿐만 아니라 상황이 그런 식으로 유지되는 편을 선호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 탓에 그들은 지금 고독한 사람을 이해해주지 않고 아마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일 확률이 더 높다.(로버트 와이스)
-p47

고독을 체험하게 되면 사람들은 심리학자들이 사회적 위협의 과민경계심이라 일컫는 것을 작동시킨다. (...) 저도 모르게 빠져든 이 상태에서 개인들은 점점 더 부정적인 기준에 따라 세계를 살아가는 경향이 생기며, 무례함, 거부, 마찰의 사례를 예상하고 기억하게 되며, 온화하거나 친밀한 상호작용보다 그런 것들에 더 많이 기울고 신경 쓰게 된다.(...)
이 말은 곧 사람들이 외로워질수록 사회가 흘러가는 물길을 따라가는 숙련도가 점점 낮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절실해도 고독은 주위에 곰팡이가 피고 물때가 낀 것처럼 접촉을 방해하는 방어막을 두른다. 고독은 저절로 자라나며 스스로를 확대하고 영속화한다. 한번 시동이 걸리면 그것을 없애기가 결코 쉽지 않다. 이런 것이 내가 비판에 대해 갑자기 과민해지고 끝없이 노출된 듯한 기분에 휩싸이고 샌들을 터덜거리면서 익명의 존재로 거리를 걸어가는 동안에도 주눅이 드는 이유다.
-p48

프리다 프롬-라이히만은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던가?"제1인물의 고독이 밖으로 표출될 때 주위에 불안을 조성하는 성향 때문에 제2 인물의 공감능력이 저하될 수도 있다."고독한 상태가 그토록 무시무시한 까닭은 이 때문이다. 연결이 가장 필요한 바로 그 순간 연결을 금지하는, 문자 그대로 혐오스러운 본능적 감각이다. 그런데도 호퍼가 포착하는 것은 무서울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것들은, 그의 그림은, 감상적이지는 않지만 지극히 깊이 있는 관찰을 담고 있다. 마치 그가 본 것이 흥미로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계속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수고할 가치, 자신이 본 것을 그림에 담는 힘든 수고를 할 가치가 있는지, 고독이 봐줄 만한 뭔가가 있는 것처럼. 그보다도, 바라보기 그 자체가 해독제인 것처럼, 고독의 기묘하고 소외적인 마법을 물리칠 방법인 것처럼 말이다.
-p70

(...) 점점 커지는 밸러리(밸러리 솔라나스)의 고독과 고립은 정신병 때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거부하던 어떤 것을 그녀가 발언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p124

(...)편집증은 불신과 위축이라는 그 자체의 메커니즘만으로도 고립시키는 성질이 있지만, 감옥생활처럼 스티그마도 남긴다. 사람들은 이런 비정상성의 표식을 알아본다. 그들은 길거리 불평분자를 비켜 지나가고, 전과자를 기피하며, 실제로 폭력을 가하지는 않지만 그들을 따돌린다. 내가 하려는 말은, 고독이 전개되는 악순환은 단독으로가 아니라 개인과 그들이 놓여 있는 사회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회의 불공평함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사람일 경우, 그런 과정은 더 악화된다.
-p130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나는 <뉴욕의 아르튀르 랭보>에 맞먹을 만한 여성 이미지를 생각해내려고 계속 애썼다. 도시에서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여자 이미지, 제멋대로 활동하고 밸러리 솔라나스의 태도를 따라 하는 여자.
(...)대신에 나는 그레타 가르보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 남자 신발을 신고 남자용 트렌치코트를 입고 도시를 성큼성큼 걸어다니는, 아무도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으로 존재하는 강인하고도 꿈꾸는 듯한 사진들. <그랜드 호텔>에서 그레타 가르보는 "혼자라면 to be alone 좋겠다"고, 그 유명한 구절을 말했다. 그러나 실제의 가르보가 원한 것은 혼자 되고 to be left alone 싶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아주 다른 문제다. 신경 쓰이지 않고, 보는 사람 없고, 쫓겨다니지 않는 상태 말이다. 그녀가 갈망한 것은 프라이버시, 관찰되지 않고 혼자 부유하는 경험이었다. (...)
-p174

나는 그 선언을 사랑했으며, 그 마지막 문장을 특히 사랑했다. 나는 내면의 삶의 고요에서 내가 해방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섹스의 꿈 아닌가? 신체 그 자체에 의해 신체의 감옥에서 해방되리라는 것, 바라마지 않던 그 이상한 언어가 드디어 이해된 것이다.
-p189

(...)극도의 빈곤도 극도의 부도 과도한 소유를 향한 갈망에서 사람들을 자유롭게 풀어주지 못하지만, 정상성의 경계를 넘어서는 이상하고 괴팍한 행동으로 소개되는 모든 경우에서 그런 경계 위반은 결코 건전성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적 경계를 어기는 문제가 아닌지 물어볼만하다.
-p240

(,,,)고독은 받아들여지는 것만이 아니라 융합되고자 하는 갈망이기도 하다. 아무리 깊이 파묻혀 있거나 방어된다 해도 그것은 자아가 부서져 파편이 되었고, 그중의 일부가 누락되었으며, 그것이 세계 속에 내던져졌다는 인식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당신은 그 부서진 조각들을 어떻게 다시 맞출 것인가? 여기서(클라인의 말에 따르면) 예술이 개입한다. 특히 콜라주라는 예술, 반복적인 작업, 하루하루, 한 해 또 한 해, 찢어지거나 갈라진 이미지를 땜질해 붙이는 작업이 그렇지 않은가?
-p247

가끔은, 감정을 느껴도 좋다는 허락만 있다면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을 때가 있다. 가끔은, 가장 큰 고통의 원인이 사실은 감정에 저항하려는 시도나 그 주위에 가시처럼 돋아나는 수치심일 때가 있다.(...)
-p253

스티그마 찍기가 접촉을 거부하기 위해, 격리하고 꺼리기 위해 설계된 절차라는 것을 감안할 때, 그것이 언제나 비인간화하고 비개인화하는, 인간 존재에서 한 개인을 축소하여 원치 않는 속성이나 특질의 보유자로 만들어버리는 목적에 종사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 주된 결과 가운데 하나가 고독이며, 수치심 때문에 고독이 더 가속화한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 아니다. 수치심과 고독은 서로를 증폭하고 몰아붙이는 속성이다.(...)
-p267

고독과 배척당하는 경험 모두 스트레스가 크고 신체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스티그마가 찍히면 강한 신체적 영향이 발생한다는 것이 충격적일 수는 있겠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충격일 것도 없다. 사실 스티그마와 에이즈 사이의 관계를 연구해온 UCLA의 심리학자들은 사회적으로 배척당한 HIV 양성 반응자들에게서 HIV의 진행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 간단히 말해, 스티그마가 찍히면 단순히 외롭고 굴욕적이고 수치를 겪는 데 그치지 않고 죽게 된다.
-P269

공포감은 전염성이 있고, 잠복 상태의 편견을 뭔가 더 위험한 것으로 바꾼다.
-P271

"내가 혈관들을 갖다붙여서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텐데. 당신을 붙잡아놓기 위해 우리의 혈관을 땅에, 이 현재의 시간에 부착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텐데. 내가 당신 몸을 열어서 당신의 피부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당신 눈으로 내다보고 당신의 입술과 내 입술이 영원히 한데 합쳐질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텐데."(데이비드 워나로위츠)
데이비드가 죽음 앞에서 처음 보인 반응은 고독이었지만 그는 사람들과 힘을 합치고, 연대를 맺고, 변호를 위해 싸우는 방법으로 그 감정에 대처하기로 했다. 그가 평생 겪어온 강요된 고립과 침묵에 저항하며, 그 일을 혼자가 아니라 타인들과 힘을 모아 하려는 것이다.(...)
-p283

(...)예술은 아주 비상한 기능을 한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어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을 중재하는 기묘한 능력이다. 그것은 친밀성을 창조하는 능력이 분명 있다. 모든 상처에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모든 흉터가 추한 것은 아니다. 예술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상처를 치유한다.
(...)뉴욕에 처음 왔을 때 나는 부서진 상태였다. 그런데 심술궂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일체감을 회복한 것은 누군가를 만남으로써 또는 사랑에 빠짐으로써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을 만나봄으로써, 이 연결을 통해서, 고독과 갈망은 그 사람이 실패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살아 있음을 의미할뿐이라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p390

고독이 반드시 누구를 만남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 가지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신을 친구로 여기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 또 하나는 개인으로서의 우리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스티그마와 배제라는 더 큰 힘이 낳은 결과임을, 그래서 저항할 수 있고 저항해야 하는 대상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고독은 사적인 것이면서도 정치적인 것이기도 하다. 고독은 집단적이다. 그것은 하나의 도시다. 그 속에 거주하는 방법을 말하자면, 규칙도 없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중요한 것은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 서로 연대하는 것, 깨어 있고 열려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앞에 존재했던 것들에서 배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감정을 위한 시간이 영영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p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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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
데이비드 밴 지음, 조연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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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밴의 '아쿠아리움'을 읽고 한동안 멍했다. 그래서 블로그에 책을 읽은 감상을 쓰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그의 책 '자살의 전설'을 읽고 난 후에도 이런 감정을 느꼈다. 

눈물을 한바가지 쏟아내며, 이제껏 미뤄온 슬픔과 분노를 더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들은 누른다고 소멸하는 것도, 무시한다고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것들을 주저 앉은 다리 위에 올려놓고 부둥켜 안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궁금한 것이다. 이 슬픔과 분노는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이제 겨우 바라보게 됐는데, 이걸 또 어떡해야 하는지. 이런 걸 보고 산 넘어 산이라고 하는 지,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 지.
일단 우는데 까지 울어 보았다. 

책을 읽으며 케이틀린과 케이틀린의 엄마 셰리, 그리고 셰리의 엄마, 아빠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슬픔에 마음이 아팠다. 그것은 폭력의 역사이기도 했다. 나의 슬픔을 타인에게 이해시키려는 절박함은 폭력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특히 가까운 사람이라면 그 폭력은 전염되기도, 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셰리도 셰리의 엄마도 이해가 되었다. 아무도 나의 고통을, 상처많았던 인생을 몰라준다면, 정말 슬플 것이다. 특히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이 몰라준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내 잘못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아야 했고, 그 과거로부터 도망치려고 온 인생을 걸고 발버둥을 치는지 화가 날 것이다.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다. 나의 나약함과 아픔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지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사랑의 품 안에서 안전하고 싶은 거다. 바다속 물고기들 처럼. 

이번 소설 '아쿠아리움'에서 데이비드 밴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인내, 용기, 사랑인 것 같다. 불가능할 것 같은 용서는 인내했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하지만 인내의 과정은 마치 누구나의 어느정도 인생처럼,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용서를 구하는 자는, 정산 혹은 청산하듯 용서 받기에 조급할 것이 아니라 인내해야한다. 그래야 시작이 진행되고 그 시작은 현재진행형의 원동력을 얻는다. 그 인내를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노인(할아버지)은 책의 끝에서 더 이상 도망가지 않는 법을 배운다. 그냥 곁에 있기. 곁을 지키며 사랑하는 일은 너무나 힘들 것 같고, 너무나 나약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는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용기를 내기로 결심한 순간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말이다,  
나는 사슬을 끊고 싶다. 
슬픔이 분노를 낳고 분노가 폭력을 낳는 그 사슬을 끊고 싶다. 상처받은 마음이 인생까지 좀 먹게 하고 싶지 않다. 

나도 나약함과 고통을 이해받고 싶다. 하지만 먼저 사슬을 끊고 운명의 틀을 넘은 후에 그러고 싶다. 나를 이해시키고 싶다는 명목하에 폭력적이 되고 싶지않다. 나를 이해시키고 싶어서 하는 행동들이 상대방에 대한 감사함과 존중이 충분히 깃든 노력이었으면 좋겠다. 상대방에대한 감사함과 존중 없이 '그래야만 한다'라는 마음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소유하려는 폭력을 행사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것이 '소통'이었으면 좋겠다. 
 
단숨에 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책장을 다 덮어도 눈물은 나는데, 이 감정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이것들을 이제라도 알아보았다는 것이다. 버릴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나의 것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친구에게 이 책이야기를 하며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가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준 것은(카톡 아닌 육성으로) 무척 감사한 일이다. 데이비드 밴을 알게된 것도 감사한 일이다. 이 작가를 블로그 이웃님을 통해서 알게되었는데 그 인연도 감사한 일이다. 아직 못 읽은 데이비드 밴의 책이 한 권 남아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그의 책은 한 권 한 권이 푸닥거리 같고(여지껏 읽은 책이 두권입니닷 ㅎ), 읽을 수록 왠지 용감해지는 기분이다.  
감사에 감사. 인연의 인연. 좋은 사슬을 만들자. 감사의 사슬을 이어가다 보면 빛이 어둠을 이기듯 뭐라도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노인은 그 앞으로 가서는 마치 신 앞에라도 나아간 듯 입을 벌리고 섰다. 그 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그 모습은 내가 아는 어떤 어른과도 같지 않았다. 그는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그는 언제든 깜짝 놀라 그대로 멈출 준비가 되어 있었고,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일을 지켜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p26

노인은 한 손을 들어 내 어깨를 잡았다. 괜찮아, 넌 안전할 거다. 노인이 말했다.
그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는 내가 안전하다고 했다. 그는 늘 옳은 얘기만 했다. 나는 그를 끌어안았다.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싸안았다. 그렇게 매달릴 누군가가 필요했다. 풀잎처럼 바스락거리는 머리칼, 마치 해마의 갑옷처럼 딱딱한 어깨뼈에, 지독히 못생겼지만, 나는 그가 나만의 산호 가지라도 되는 듯 그렇게 그에게 매달렸다.
-p30

(...)우리는 스스로 진화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은 서로 다른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해나가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지난 시간들을 지우고, 지난 마음들을 지워간다. 우리는 더이상 같은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p83

노인은 내 손을 잡고 해룡이 있는 수조 쪽으로 걸어갔다. 담청색 모래와 잎이 무성한 초록빛 해초들, 그리고 금빛 나뭇가지로 변한 해마의 몸에 마치 날개와도 같은 나뭇잎들이 돋아나 있었다. 그 모습을 충분히 오랫동안 지켜본다면, 마치 나무가 살아 움직이는 듯 느껴질 것이다. 온 숲이 깨어나 속삭이듯 말하며 대지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나무 기둥은 공중에 뿌리를 내린 듯, 나뭇가지를 따라 수직이 아니라 모두 수평으로 저 멀리 뻗어나간다. 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었다.
-p89

(...)그 아이를 떠난 건 정말 지독한 일이었어. 나는 용서받을 자격이 없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되길 바란단다. 그건 오로지 너를 알고 싶고, 또 그 아이를 알고 싶어서야. 나도 가족의 한 사람이 되고 싶단다. 우리 삶은 단 한 번뿐이야. 그래서 용서받길 바라는 희망을 버려서는 안되는 거야.
-p181

할아버지는 눈이 오는데 창문도 없는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차가운 바람을 그대로 맞아 몸이 얼어붙을 것이다. 사방엔 자갈처럼 안전유리 조각들이 널려 있겠지. 스포츠 코트와 칼라가 달린 셔츠를 입고.
그렇게 생각하니 견딜 수 없이 슬퍼졌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신사처럼 보이고 싶은 어느 늙은 기계공의 모습이. 위엄을 갖추려 애썼고 자신의 삶을 회복하고 싶었으나, 그 밤 다 망가져 고물이 된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는. 헤드라이트도 후미등도 없어, 사고가 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생각하기조차 겁이 났다. 충돌을 향해 나아가는 움직이는 검은 형체.
-p190

부모와 관련해서라면 불가능한 것은 없어. 부모는 신이나 마찬가지야. 우리를 만들고 또 우리를 파괴시키지. 세상을 그러모아서는 원하는 모양대로 다시 만들어버리는 거야. 그러고 나면 우린 영원히 그게 바로 세상의 전부인 줄 알게 되는 거야. 그것만이 유일한 세상이라고 말이야. 그 외에 달리 상상한다는 건 불가능해.
-p204

그새 몸에 열이 다 식어 살갗이 오그라들었다. 내 몸은 마르고 창백한데다 추워서 울긋불긋해지고 있었다. 내 발이 저 아래 있는 듯 느껴졌다. 몸이라는 것은 정말 이상했다. 그 모양도 그렇고, 밖으로 드러나면 그것은 또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
-p224

칠리가 데워지자 나는 엄마에게 볼을 가져다주었다. 엄마는 팔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한 숟가락씩 떠먹여주었다. 엄마는 꼭 필요한 만큼만 입을 벌리고 음식을 씹었다. 엄마는 마치 좀비처럼 부분적으로만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보통때 같으면 엄마는 지금 일터에 있었을 것이었다. 눈보라와 조명들 속에서. 철커덕거리는 금속들과 빠르게 돌아가는 디젤 엔진으로 이루어진 전초기지는 일 년 내내 밤낮으로 쉬지 않고 돌아간다. 그곳에서 엄마는 더이상 그녀 자신이 아니라, 업무를 수행하는 몸뚱이, 사람처럼 보이는 일종의 로봇이다. 하지만 지금 엄마는 정반대이다. 겉모습은 죽어 있지만 오로지 엄마 자신이기만 한 마음속 어딘가에서 엄마는 길을 잃어버렸고, 기억해내고 있는 중이었다.
-p229

스티브 아저씨는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는 엄마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엄마에게 팔을 둘렀다.
아저씨는 말했다. 셰리, 당신을 사랑해. 난 당신을 떠나지 않아. 그리고 케이틀린도 언제나 다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할 거야. 이 아이는 모든 순간 당신을 지켜보고 있어. 당신이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고 생각하든 끝장이라고 생각하든, 그 순간순간 당신이 느끼는 것들을 모조리 보고 있다고. 이 아이는 당신 딸이야.
아저씨는 엄마에게 머리를 맞대며 엄마를 감싸안았다. 시트 아래로 엄마가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흐느끼느라 엄마는 몸을 살짝 웅크렸다. 하지만 소리는 내지 않았다. 나는 얼른 엄마 옆으로 가서 역시 엄마를 감싸안았다.
셰리, 아저씨가 말했다. 이제 다 좋아질 거야. 두 사람도 좀더 편하게 내버려둬.
하지만 그 사람이 너무 미워.
아마 당신이 그분을 사랑하고 있어서일 거야. 아직 뭔가 남아있는 거지.
-p237

너에게 빚이 있다는 걸 내가 잊고 있었구나. 너는 아이였고, 모든 게 필요한 상태였어. 내가 잊고 있었구나. 아내에게 역시 나는 빚이 있지. 그래, 내 거래는 신과의 것만이 아니었어. 내 문제만이 아니었지. 그걸 잊다니 정말 형편없구나. 내가 이기적이었어. 미안하다. 인정해야겠지. 그래도, 이제 이해가 되는구나. 내가 그때 왜 떠났는지. 그리고 이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 난 미처 몰랐던 거야. 지금까지도. 이 일들을 다 말하고 나니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아니 적어도,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아. 내가 왜 그랬는지. 아마 결국 같은 말이겠지만.
그럼, 축하라도 해야 하는 건가요, 엄마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너무나 낯설었다. 그래, 축하하자꾸나. 한 사람의 인생은 다른 누구도 결코 알 수가 없단다.
-p283

숲은 아직 아무것도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것은 도무지 깨어날 수 없는 꿈과 같았다. 나는 동화란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느 순간에라도 늑대와 우리를 유인하는 목소리들이 있는 숲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어둠의 세계를. 우리가 구체화 시킨 모든 두려움들, 모든 양식과 형상들은 단지 숨어 있을 뿐, 늘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p316

그때 일에 대해서 당신은 물어볼 자격이 없어요.
아까는 물어봐달라고 하지 않았었니. 여기까지 오는 내내, 나는 다 끝났다고, 네가 나를 용서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네가 그렇게 말한 거야. 물어봐주기를 원했다고 말이야. 나는 그제야 깨달았어. 너는 내가 더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셰리, 너는 언제까지고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야. 나는 실패했지. 너를 포기햇어. 하지만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은 없어. 매일같이 너를 생각했단다. 그리고 대체 얼마나 상황이 나빴던 건지 나도 이젠 알아야겠다. 내가 얼마나 나쁜 놈이었는지도 알아야겠고. 그 끝을 알아야겠구나. 그러지 않으면 아마 난 훨씬 더 나쁜 쪽으로만 상상하게 될 거야.
-p321

할아버지는 무릎으로 바닥을 기어 엄마에게로 다가가 양팔로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엄마가 할아버지를 감싸안았고,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두 사람의 몸이 살짝 흔들렸다. 두 사람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두 사람은 다시 만난 것이었다. 어쩌면 이런 것이 우리가 용서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과거를 모두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현재에 받아들이고 또 인식하면서 끌어안는 것, 천천히 내려놓는 것 말이다.
-p337

나는 할 수 있는 한 오래 물속에 있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숨을 쉬기 위해서든, 무슨 말을 하기 위해서든. 하지만 물이 뜨거워져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샬리니의 입술이 다가왔다.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가장 완벽한 사랑이었다. 우리가 너무 어렸으므로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그때 우리는 절대적이었고, 어른들이 그렇듯 순간적인 감정에 빠져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샬리니의 전부를 받아들였다. 무엇 하나 남겨놓지 않았다. 그애는 모든 면에서 나보다 훨씬 위였다. 사회계급에서도, 가족관계나 지능, 교양이나 지식과 미모에서도. 그때 우리에게 그런 것들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의미에서 우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게 수치스러웠던 그날조차도. 나 역시 내 모든 것을 그애에게 다 내주었다. 처음으로 모든 것이 허락된 날이었다. (...)
-p338

(...) 때때로 최악의 순간이 최고의 순간을 이끌기도 하는 것이다.
-p339

그날 아침, 할아버지가 우리를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 할아버지는 부모보다 나았다. 네 엄마는 괜찮아질 거야.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던 게 떠오른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할아버지는 도망가지 않는 법을 배웠고,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자신이 훨씬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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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 시인선 16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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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여행지에서 뉴스를 보다가 소리를 지르며 우는 아랍 여인 무리를 보았다. 아마 알자지라 방송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 손을 하늘로 치켜들고 저 깊숙이 끓어오르는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 소리는 정말 컸고, 고막을 할퀴는 것 같은 슬픈 소리였다. 미안하지만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같이 보고 있는 이들때문에 차마 채널을 돌리지는 못하고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뉴스를 보고 있는 무리 중의 한 명이 내게 어디가냐고 물었다. 
이 소리가 듣기 힘드냐고. 이 사람들은 이렇게 소리내지 않으면 심장이 터질지도 모른다고.
다소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그는 그녀들과 비슷한 피부색과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에 당황했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지금은 그 말이 종종 떠오른다.

최승자 시인의 시집 '이 시대의 사랑'을 읽으며, 그 때의 크고 슬픈 울음소리가 떠올랐다. 검은 옷을 입은 여인들. 메마른 사막. 무덤. 빈집.
시인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깊었지만, 잠시 다가가서 듣고 싶은 이야기였다. 이 사람, 지금 이 목소리로 소리내어 이야기 하지 않으면 심장이 터질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나까짓게 들으나 마나 상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들을 수록 내가 내는 소리같다.
나는 외롭고 싶지 않다. 할 수 있다면 당당히 고독하고 싶을 뿐.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 

외롭지 않기 위하여라는 시의 마지막 행에
'무심한 부재를 슬퍼하며 / 내 신발들이 쓰러져 웁니다'
부재를 무심하다고 표현한 것과, 신발들이 쓰러져 운다고 표현한 것이 마음에 사무쳤다. 퇴근 후, 제일 먼저 마주하는, 현관에 쓰러진 내 신발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 중의 한 두짝은 꼭 밟으며 안으로 들어선다. 나의 현관에는 비어있는 신발들이 많다. 

그리고 무심한 부재는 소화가 잘 안 되었다. 무심할수록 이해하고자 부재할수록 찾아가고자 했다. 노력한다고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몰라야하는 것도 있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았다. 나는 무언가를 깨닫는데 오래 걸리는데 그런 걸 보면 고집도 참 세다. 무르팍이 깨지고 이마에 피가 나야 깨닫는 것 같다. 나이는 꿀떡꿀떡 잘도 삼키면서 소화는 도통 못시키는 것 같다. 
음력으로 따지는 새해가 오고있다. 새해는 복을 많이많이 받자고 서로서로 인사한다. 새해라는 새공책이 주어진거라고 치고 새해 결심 혹은 소원을 빌어보자면, 올해는 조금 더 잘 상처받고싶다. 잘 버리고 잘 받아들이고 싶다. 그리고 좀 더 지혜로워져서, 잘 울고 싶다. 그렇게 강해졌으면. 
음, 쓰고보니 '잘'이라는 말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잘'은 기도같은 것. 반드시 잘하려는 것이 아니라. 소원입니다. 
강해져서 결국에는 따뜻하고 넓은 사람이 되고싶다.


일찌기 나는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이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개 같은 가을이‘中

어떻게해야고질적인꿈이자유로운꿈이될수있을까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中


바람 불면 별들이 우루루 지상으로 쏠리고
왜 어떤 사람들은 집을 나와 밤길을 헤매고
왜 어떤 사람들은 아내의 가슴에 손을 얹고 잠들었는가
왜 어느 별은 하얗게 웃으며 피어나고
왜 어느 별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추락하는가
조용히 나는 묻고 싶었다
인생이 똥이냐 말뚝 뿌리 아버지 인생이 똥이냐 네가
그렇게 가르쳐줬느냐 낯도 모르는 낯도 모르고 싶은 어
느 개뼉다귀가 내 아버지인가 아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살아계신 아버지도 하나님 아버지도 아니다 아니다
내 인생의 꽁무니를 붙잡고 뒤에서 신나게 흔들어대는
모든 아버지들아 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
인 줄 아느냐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中

달려라 시간아
꿈과 죄밖에 걸칠 것 없는
내 가벼운 중량을 싣고
쏜살같이 달려라
풍비박산되는 내 뼈를 보고 싶다.
뼛가루 먼지처럼 흩날리는 가운데
흐흐흐 웃고 싶다
-‘버려진 거리 끝에서‘ 中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


나는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었다.
아니 떨어지고 있었다.
한없이
한없이
한없이
............
......
...
아 썅! (왜 안 떨어지지?)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르게 사랑하는 법
감추는 법 건너뛰는 법 부정하는 법.
그러면서 모든 사물의 배후를
손가락으로 후벼 팔 것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아이처럼 배고파 울 것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처럼 웃을 것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한 아이처럼 웃을 것
-‘올여름의 인생 공부‘中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
-‘삼십 세‘中

우우, 널 버리고 싶어


식은 사랑 한 짐 부려놓고
그는 세상 꿈을 폭파하기 위해
나를 잠가놓고 떠났다.
나는 도로 닫혀졌다.

비인 집에서 나는
정신이 아프고
인생이 아프다.
배고픈 저녁마다
아픈 정신은
문간에 나가 앉아,
세상 꿈이 남아 있는 한
결코 돌아오지 않을 그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린다.

우우, 널 버리고 싶어
이 기다림을 벗고 싶어
돈 많은 애인을 얻고 싶어
따듯한 무덤을 마련하고 싶어

천천히 취해가는 술을 마시다
천천히 깨어가는 커피를 마시면서,
아주 잘 닦여진 거울로 보면 내 얼굴이
죽음 이상으로
투명해 보인다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겨울 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속을 떠돌 동안엔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 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오래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스한 불빛 안으로 숨어 들어가
다시 한 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 없는 헤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멜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

내 청춘의 영원한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외롭지 않기 위하여


외롭지 않기 위하여
밥을 많이 먹습니다
괴롭지 않기 위하여
술을 조금 마십니다
꿈꾸지 않기 위하여
수면제를 삼킵니다.
마지막으로 내 두뇌의
스위치를 끕니다

그러던 온밤 내 시계 소리만이
빈방을 걸어다니죠
그러나 잘 들어보세요
무심한 부재를 슬퍼하며
내 신발들이 쓰러져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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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 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7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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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은 없음만 낳느니라.
이 말이 마음에 콕 남았다. 이 단어, '없음'은 자주 등장한다. 마치 이 희곡의 등장인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리어왕은 '없음'이 되는 것이 두려워 계속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쫓다가 정작 정말로 '없음'이 되고 만 것은 아닐까?
돈도 사랑도 권력도 모두 사라지고 만다. 더군다나 죽음앞에 아무것도 아니다. 어리석고 거만한 리어왕을 보며 딱하면서도, 그에게서 나의 모습도 보았다. 내가 무엇을 가졌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바보처럼 기뻐했다. 기쁘고 기뻐서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았다. 조금의 두려움이 겸손하게 내 맘에 빼꼼히 얼굴을 디밀었을 때, 나는 외면했다. 나는 무엇을 가질 수가 없는데, 인생은 줬다가 뺏는 것인데, 나는 내가 잘나서 가진 줄 알았다.

글로스터가 눈이 멀고 죽겠다고 절벽을 찾아 올라가는 대목은 눈물이 났다. 거지로 변장한 아들 에드거가 그를 평평한 곳으로 이끌며 여기가 절벽이라고 데려가는데, 그 장면이 그려지는 것이었다. 날 좀 죽게 내버려두라는 눈멀고 모든걸 잃은 글로스터와, 일어서라고 손내미는 아들. 그는 평평한 땅을 낭떠러지인줄 알고 뛰어내렸고, 살았다. (당연히!) 그리고 지금부터는 견디겠다고 고난이 됐다고 항복할때까지 견디겠다 말한다. 연극으로 올려진다면 이 대사는 어떤 어조와 억양으로했을지 궁금하다.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린 대목이다.

최악을 말 할 수 있는 한 최악은 아니다.
라고, 에드거는 말한다.
비극을 읽는 것, 비극을 말하는 것. 이것은 없음이 되지 않으려는 인간의 몸부림은 아닐런지. 인생이 아무리 고난과 죽음앞에 허무할지언정, 우리가 고민하고 절망하며 울고 그것을 극복하려 아등바등 노력하는 동안 이야기는 탄생하니 말이다. 가만히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한, 나는 나로서의 인생을 창조할수 있을 것이다. 실패와 결핍이 나쁜 것 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것또한 분명한 인생의 한 모습이니.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인생에 길들여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행복이라는 저주에 시달리고 있는가.
때론 비극이 이토록 위로다. 



리어 없음은 없음만 낳느니라. 다시 해봐.
코딜리아 소녀 비록 불운하나 제 마음을 입에 담진 못하겠습니다. 전 전하를 도리에 따라서 사랑하고 있을 뿐, 더도 덜도 아닙니다.
p18

코딜리아 그래도 전하께 간청컨대
의도 없이 말로만 기름 치는 기술이
제게 없기 때문에-좋은 뜻이 있으면 전 말에 앞서 실천하니까요.-이건 밝혀주십시오.
전하의 은총을 제게서 앗아간 건
사악한 오점이나 살인 혹은 추잡함,
부정한 행위나 천한 짓이 아니라
그것이 없기에 제가 더욱 부자인
늘 조르는 눈빛과, 못 가져서 전하의
사랑을 잃었지만 안 가져서 저는 기쁜
혀라는 사실을.
p24

바보 (...)(리어에게) 아저씨, 없음을 이용할 줄 알아?
리어 글쎄 몰라. 없음에선 없음만 나오니까.
p45

바보 그녀의 찌푸린 눈살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을 때 당신은 괜찮은 친구였는데, 이젠 값없는 숫자 영이 됐어. 난 지금 당신보다 낫 다고,
난 바보지만 당신은 없음이니까.(...)
p48

리어 오, 너무 질긴 내 가슴아! 아직도 버티느냐?
p83

에드거 이렇게 멸시받고 그 사실을 아는 것이
겉 아첨에 속 멸시보다는 낫구나.
운명의 여신이 포기한 맨 밑바닥 인생은
언제나 희망 품고 공포 속에 살진 않아.
통탄할 변화는 최상에서 멀어지는 것이고
최악의 웃음으로 되돌아가는 법. 그런, 불어라, 내 가슴에 안기는 실체 없는 바람이여.
최악으로 떠밀려 간 비참한 이 몸은 너에게 빚진 게 없단다.
p119

글로스터 갈 길이 없으니 눈은 필요 없다네. 보았을 땐 넘어졌어. 자주 눈에 띄지만 우리는 있으면 자만하고,
순전한 결핍도 쓸모가 있는 법.
p120

에드거 최악을 말할 수 있는 한 최악은 아니다.
p121

에드거 팔을 이리 주세요. 일어나요. 어때요? 설 수 있소? 섰군요.
글로스터 너무너무 쉽게요.
에드거 불가사의합니다. 절벽 꼭대기에서 당신과 헤어진 게 뭐였지요?
글로스터 가엾고 불행한 거지였소.
에드거 제가 이 아래에서 보았을 때 그의 눈은 두 보름달 같았어요. 코는 일천 개였고 뒤틀린 뿔들은 격노한 바다처럼 굽이쳤죠.
놈은 악마였으니 운 좋은 아버님은 인간에겐 불가능한 일들로 존경받는 광명한 신들이 지켜줬다 생각하십시오.
글로스터 이제 기억나는군요. 지금부턴 견딜 거요, 고난이 ‘됐다 됐어.‘ 외치고 스스로 사라질 때까지. 난 당신이 얘기한 그 놈을
사람이라 생각했소. 여러 번 ‘악마, 악마‘ 그렇게 말하며 날 거기로 인도했소.
에드거 무구한 인내심을 가지세요.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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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패티 스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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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티 스미스는 예민하다. 난 사실, 그녀의 음악보다 글을 더 좋아한다. '저스트 키즈'라는 책을 읽고 패티 스미스에게 반했다. 그녀의 글에는 특유의 열정과 감수성이 가득하다. 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의 일상이 만들어낸 인생은 예민하고 그만의 깊이와 색깔이 있다. 그녀의 글처럼. 감성이 넘치는 어떤 문장은 시 같기도 하다. 
 이 책 '몰입'이 나온다기에 출간되기만을 기다리다, 마침 '알라딘'에서 이 책으로 북펀딩을 하길래 참가했다. 그래서 책이 출간 되자 마자 받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막 나온 따끈따끈한 책을, 그것도 좋아하는 작가의 기다리던 책을 손에 쥐는 일은 행복이었다. 

 이 책은 크게 세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첫번째는 패티 스미스가 짧은 소설을 쓰기까지의 짧막한 여정이다. 그녀는 출판 행사로 초대받아 프랑스로 가게되는데, 여행에서 읽으려고 급히 선택해서 가져간 책으로부터 소설쓰기의 영감은 시작된다. 여행기인 줄로 알았던 글이끝나자, 그녀가 단숨에 써내려간 단편소설이 나온다. 여기가 두번째 부분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한 그녀의 생각과 고민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글이다. 나는 이 세번째 부분에서 가슴 한 켠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오늘 우연히 같은 구절을 도서관과 서점에서 두번 만났다. 
 그것은,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쓴 편지' 중에서 나온 구절이었는데,

 예술 작품은 한없이 고독한 것이며 비평 같은 것으로는 그것에 도저히 다가갈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으로만 예술 작품을 이해하고 간직할 수 있으며, 공평하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오직 사랑.
 내가 반하는 대목은 언제나 오직 사랑이었다.
 
 나는 종종 예민하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곤 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예민하다는 말에는 부정적인 뜻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네이버 사전에 의하면 이것은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는 뜻이다. 
 
 패티 스미스의 예민한 글을 다 읽고 책을 덮으며,이런 예민함은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하지 않은가 생각해보았다. 책에 대한, 글 쓰기에 대한, 삶에 대한 사랑.
 글을 잘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캐릭터도 잘 살리고, 스토리의 유기성도 훌륭한, 묘사가 아름답고 문장이 정확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고독과 사랑이 아닌가 생각한다. 거기서 예민함이 나오지 않을까. 결국 내가 내 안으로 들어가야 그 모든게 들리고 보일 것이다. 고독과 사랑은 가장 두려운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패티 스미스의 예민한 글을 읽으며, 그녀의 용기에 감탄한다. 나도 용기를 내야지. 록커가 쓴 아름다운 글은, 나만을 위해 공연했다. 이렇게 치밀한 구성의 공연이 또 있을까, 글을 쓰기까지의 영감을 받는 여정, 그리고 완성된 소설,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에세이까지.
 글을 쓰자, 써야한다. 쓰자. 계속 쓰자.

 ♬


<리스뚤레스>의 여성 화자 에르마의 섬세한 목소리를 새롭게 들으며 옷을 입고 공책과 파트릭 모디아노의 ‘한밤의 사고‘를 한 권 집어 들고 길을 건너 동네 카페에 간다. 노동자들이 잭해머로 길을 파고 있고 귀가 멍멍해지는 진동이 카페의 사방 벽을 흔든다. 글을 쓸 수가 없어서 책을 읽는다. 그물망 같은 ‘한밤의 사고‘의 세계를 터벅터벅 걷는다. 불안한 거리들, 불완전한 주소들, 쓸모를 다한 우회로들, 결국 허무의 원으로 귀결되는 사건들. 글을 못 쓰는 건 한탄스럽지만 모디아노의 우주라는 활력 넘치는 마비 상태에 자아를 잊고 몰입하는 일은 글쓰기와 맞먹는다. 편집증과 미세한 디테일에 대한 강박을 어슴푸레 하게 감지한 상태로 화자의 피부 속으로 들어가면 주위의 공간이 바뀐다. 한 문장이 미처 끝나지도 않았는데 도리 없이 손을 뻗어 펜을 찾게 된다.
-p18

전화벨이 울려 마법의 주술은 깨어진다. 내 비행기 편은 취소되었다. 더 이른 비행기를 타야 한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택시를 부르고 컴퓨터를 보관용 주머니에 넣고 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나머지를 여행 가방에 쑤셔 넣는다. 아직 무슨 책들을 가지고 갈까 마음을 정하지 못했는데 택시가 너무 빨리 도착해버린다. 책 없이 비행기를 탄다는 생각만 해도 파도처럼 공황이 덮쳐온다. 딱 맞는 책은 해설사 역할을 해주고 여행의 톤을 결정하며 심지어 궤적까지도 바꿔 버린다. (...)
-P19

운명에는 손이 있으나 그 손이 미리 정해진 건 아니다. 나는 무언가를 찾다가 무언가 다른 것을, 어떤 영화의 예고편을 찾았다. 울림이 깊지만 생경한 목소리에 마음이 동해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인용과 참조의 교향악을 소호나하는 빛의 주크박스에 이끌려 여행을 떠났다.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추상적 거리들을 배회하며 심지어 내 것조차 아닌 세계를 실로 엮었다.
-P46

내가 그 글을 어떻게 썼는지, 왜 그렇게 도착적으로 처음의 길에서 일탈했는지, 그 과정은 고찰할 수 있겠으나 왜 그랬는지 이유는 말할 수 없다. 범죄자를 추적해 구속하는 데 성공한들 범죄자의 정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와 ‘왜‘는 분리할 수 있는 걸까?
-P47

-모든 생각이 감정으로 변형되는 거예요. 내게 스케이팅은 순전한 감정이라고요. 완벽을 향한 관문이 아니라고요.
-P92

어째서 글을 쓰지 않고 못 배기는 걸까? 스스로를 격리하고, 고치 속에 파고들어, 타인이 없는데도 고독 속에서 황홀한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버지니아 울프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있었다. 프루스트에게는 셔터를 내린 창문이 있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에게는 음이 소거된 집이 있었다. 딜런 토머스에게는 소박한 헛간이 있었다. 모두가 말들로 채울 허공을 찾는다. 그 말들이 아무도 밟은 적 없는 땅을 꿰뚫고 풀리지 않은 비밀번호를 풀고 무한을 형용할 것이다.
-P121

(...)우리는 글을 써야만 한다. 고집 센 송아지를 길들이듯 헤아릴 수 없는 투쟁에 참여하기 위하여, 우리는 글을 써야만 한다. 부단한 노력과 정량의 희생 없이는 안된다. 펄떡이는 심장으로 살아 있는 독자라는 종족을 위하여 미래를 끌어오고 유년기를 다시 찾아가고 날뛰는 상상력의 어리석음과 공포에 고삐를 늦춰선 안 된다.
-P121

그것이 특별한 작품의 결정적인 힘이다. 행동하라는 부름. 그리고 나는, 번번이, 내가 그 부름에 화답할 수 있다는 오만에 무릎을 꿇고야 만다.
-P127

사물은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내 호주머니에는 몽당연필이 들어 있다.
해야 할 작업은 무엇인가? 영민함의 얼룩이 하나도 없이, 우화처럼, 여러 차원에서 소통하는 작품을 쓰는것.
꿈은 무엇인가? 내 시행착오와 경솔한 행동 들을 정당화해줄 만큼 나보다 훨씬 나은 것, 뭔가 좋은 걸 써내는 것. 얼기설기 엮인 단어들을 통해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내 손가락이 촉침처럼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질문을 추적한다. 젊었을 때부터 내 앞에 놓인 익숙한 수수께끼. 언어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놀이와 친구들과 사랑의 계곡에서 한 박자 바깥으로 물러서기.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합창이 터져 나온다.
그저 살기만 할 수가 없어서.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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