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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걸 읽다니! - 한자 한 글자로 삶이 바뀌는 기적
나인수 지음 / 유노북스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한자는 누가 뭐라해도 우리말의 어원이다. 일상적으로 쓰이는 언어들의 대부분이 알고보면 한자어라는 사실에서 볼 때, 우리 말의 깊이있는 이해와 활용을 위해 한자 공부를 한다는 것은 꽤나 설득력있는 말이다. 다만 영어가 우선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적 요구와 분위기 탓에, 한자는 중학교쯤 부터 그저 적당히 공부해도 되는 비주류 과목 중 하나로 전락하게 된다.
그리고 한자는 마냥 외우기 쉬운 것도 아니다. 상형문자에서 출발한 탓에, 글자의 형태와 뜻이 이어져있다. 이 말은, 비슷하게 생긴 것들이 비슷한 뜻을 공유하지만 서로 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에 구분해서 외워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결정적으로 일상에서 한자를 볼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 예전이라면 한자가 병기된 신문이라도 읽었겠지만 - 공부를 한다고 별 성과나 효과를 느끼기도 어렵다.
그래서 보통은 자격증을 목표로 많이 공부한다. 2급 정도면 적당히 일상에서 쓰이는 한자들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범위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결국엔 포기하거나, 자격증을 위한 공부로 전락해, 자격증을 딴 뒤에는 모두 잊어버리고 말게 된다. 좀 더 의미있는 공부를 하기 위해선 다른 방식으로 한자 암기에 접근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나왔다. 한자를 외워 인생이 바뀐다는 거창한 부제는 제쳐놓더라도, '일상에서 쓰기 위한' 한자를 지향한다. 일단 시작은 좋다.
책은 한자의 음과 뜻을 분리해서 이야기 형식으로 이어 외워지게 만들었는데, 이게 꽤나 묘하다. 우선 무작정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 아니라, 원래의 음과 뜻에 맞추어, 그리고 각 한자의 부수가 나타내는 뜻과도 맞게 만들어져있다. 단순하게 외우면 금방 잊혀지지만, 복잡하게 외우면 금방 잊혀지지 않는다. 수 많은 학습심리학 연구에 등장하는 단순하면서도 강한 원리가 적용되었다.
그런데 그 방식이나 설명이 상형문자라는 한자의 형성 원리의 정통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 말하자면, 좀 어거지 같기도 하다. 요즘 나오는 영어 단어장이 이런 식으로 단순암기를 지양하는데, 시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경선식 영단어장>이다. 영어 단어를 읽는 '한국어 발음'과 영단어의 원래 뜻을 연동시키는 짧은 이야기를 통해 단어 암기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경선식 영단어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이, 원래 영어 단어의 어원적 형성 원리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무작정 외우는 것 보다는 낫지만,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영어 단어를 어원적으로 풀이하며 나온 단어장들도 등장하고 있다.
이 책은 말하자면 경선식 영단어장 스타일이다. 그래서 얼핏 보면 좀 의심스러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자는 조금 다른게, 분명한 끝이 있다. 영어 단어는 5천개를 외운다 하더라도 수능 영어 수준이어서 더 외워야 하지만, 한자는 2천개 정도만 외우면 위에서 언급한 한자 2급, 일상 생활에서 마주하는 거의 모든 한자를 읽을 수 있다. 따라서 저자가 지향하는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라는 말이 그리 나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물론 이 책이 2급 시험의 모든 한자를 커버하진 못한다. 저자는 천자문을 목표로 해서 책을 집필했고 완성했다. 한자를 외우겠다고 너무 거창한 목표를 잡지 말고 이 책 부터 완독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해냈다'라는 자신감이 저자처럼 당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