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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의 미학 - 인문학과 사회학, 심리학과 경영학을 넘나드는 종횡무진 축구이야기
프리츠 B. 지몬 지음, 박현용 옮김 / 초록물고기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13명의 저자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는 축구가 속해있는 요소들을 마치 광고에서 본 것처럼 가로로 잘라서 세로로 펼쳐놓고 있다. 그 요소들이 가지고 있는 축구 속에서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글들은 흔히 우리가 즐기고 환호하는 축구라는 바다를 표면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깊은 바다 속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세상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솔직히 처음부분은 너무 난해하다. 흔히 접해보지 못한 학문적 용어들 때문에 과연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이해가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다. 그렇지만 집중해서 읽어 내려가다 보면 학문적 용어들조차 축구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축구를 여러 학문적 시선에서 바라봄으로써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들을 세분화시켜주고 본질을 알게끔 해준다.
축구라는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 축구란 것이 어떤 것인가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 글귀들을 접해보자.
1. 축구는 아주 사소한 차이만 갖고도 승패를 가름으로써 팬들이 자기애적 감정을 느끼는 데 더없이 적합한 스포츠이다 -32p
2. 현대사회에서는 능력과 인지도 사이의 관계를 인식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축구에서는 개나 소나 세계적인 선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35p
3. 관중들은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는 체험을 통해 자신의 육체를 완벽하게 지배했다고 느낀다. -37p
4. 축구는 엄격한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조건 하에서만 금기시된 자유로운 행동들이 가능하다. -42p
위 네가지의 글들은 축구가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사실을 사회적인 관점과 비교하여 표현한 글들이다. 1번의 사소한 차이- 즉, 한골의 차이로 인해 그것이 큰 경기를 좌우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며 2번의 엄청난 연봉을 받는 축구선수들에 대한 질투가 사회적으로는 별로 없으며 확실한 능력을 보여준다는 것은 축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함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3번의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을 응원함으로 인해서 관객들이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경향을 표현한 것이며, 4번의 시간과 공간의 제한이 존재하기에 축구라는 경기가 대단해보인다는 말이다.
이런 기본적인 바탕들 속에 축구의 세계로 들어가면 더욱더 많은 것들과 조우하게 되고 그 것들이 유기적으로 축구를 구성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경기장과 경기시간/ 공의 소유/ 공이 없는 경기/ 경기시스템/ 축구스타일/ 축구영웅/ 파도타기 응원 등 축구를 만들어가고 그 축구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들에 대한 글들이 뭉쳐 좀더 축구의 모습을 다각화시켜준다. 또한 그것이 단순히 축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여러 타 스포츠에도 적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포츠외의 다른 분야에까지 영향을 가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여러 가지 축구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 가장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 공간과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경기장과 경기시간에 대한 이야기와 공을 가지고 있을 때와 없을 때 생길 수 있는 불확실성과 선택 그리고 가능성의 창출부분이었다.
우선 경기장부분에서는 중앙에 그어져 있는 하프라인을 흥미있게 봤는데 일단 반으로 나누어져 있는 듯 보이는 하프라인은 경기를 시작하기 바로 직전까지만 의미를 가진다고 나와있다. 그것은 서로의 진영이 나누어져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영토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선이라는 것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양립성은 축구 내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단순한 기준점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라는 것이 이전에는 미처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이라서 특이하면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필연적 공감이 이 책 속에는 많이 숨겨져있다.
경기시간의 경우에는 특정한 시간이 공격을 하는 입장에서나 수비를 하는 입장에서 볼 때 상대적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많은 득점차가 아닌 경우에는 기준 시간인 전.후반을 제외한 추가시간에 대한 시간적 흐름이 상반적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경기를 하고 있는 선수뿐만 아니라 팀을 응원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또한 타경기와는 다르게 꾸준히 흐르고 있는 축구내의 시간은 선수의 역할에 따라서 가변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정지하지 않은 채 흘러가는 시간들을 적절히 이용함으로 인해서 경기를 자신의 흐름대로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전.후반은 시간적 개념에서만 볼 것이 아닌 공간적 개념에서 평등성을 추구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특정한 날씨 조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축구경기에서는 그러한 것이 한쪽에만 치우지지 않도록 나누어져있다는 것이 앞서 말한 필연적 공감의 일부가 아닌가 생각된다.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승패를 가르는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공의 향방이다. 누가 공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상대방의 골대에 넣을 수 있는가? 이런 상황 속에 숨겨진 내용들은 학문적으로 표현했을 때 더 깊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공은 단 하나다. 그것은 축구경기를 보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왜 하나일까? 그것을 의문점으로 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책에서는 그 이유를 혼란스러움 속에 숨겨진 질서라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하면 많은 선수들이 단 하나의 공을 차지하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는 것은 어쩌면 혼란스러운 상황에 속한다. 그 혼란 속에 공을 통해 뚜렷한 질서가 자리잡게 된다. 여러 개의 공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질서가 없는 혼란스러움만 가득할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의 공으로 그 공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소유의 질서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공이라는 것의 특성을 이용한 축구는 여러 가지 상황을 연출 할 수 있다. 어디로든 굴러갈 수 있는 공의 특성상, 선수들은 그 공이 어디로 갈지 미리 예측하고 움직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상황을 자신이나 팀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것이다. 공을 차지하기 위한 전략들은 미리 계획되어있는 것이 아닌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 경기 내에서 벌어지는 우연적인 상황들에 대한 각각의 선택에 따라 불확실성이라는 부분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서 좀더 가능성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 공을 다루는 선수들에게 있어서 중요할 것이다.
타 스포츠에 비해 전략적 상황을 가지고 시작했음에도 예상치 못한 결과로 게임을 패하게 되는 축구는 의도와 우연적인 상황이 빚어낸 게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이라는 우연성을 가지고 있는 공격팀에게 있어서 수비팀은 공을 빼앗으려는 의도가 성공할 가능성이 많이 열려있다는 것이다. 그로인해 좀더 빠른 공격과 수비의 전환이 가능하게 되고 전략적 상황이 빗나갈 확률 또한 커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불확실성(우연성)을 가진 공과 손보다 컨트롤이 힘든 발을 이용한다는 것, 그리고 공을 빼앗기 위한 각가지 선택에 의해 축구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스포츠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외 축구의 시스템적 이야기와 축구영웅, 관객들이 만들어내는 파도타기 등 축구를 표현하는 많은 부분들에서 흔히 접해보기 힘든 것들을 잘 섞어가며 축구의 맛을 더해주고 있다. 세부적인 부분들(경기장과 선수수와의 관계, 타 스포츠 보다 단순한 규칙들)은 왜 축구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지 말해준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흔히 알고 있는 축구라는 것을 어려우면서도 쉽게 그리고 항상 머릿속에 떠오르게 만들어주는 데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다음에 축구를 본다면 이 책에 소개된 것(문자화)들을 머릿속에서 상상하면서(상징화)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축구의 참맛을 느껴보고자 한다면 딱딱할 것 같은 이 책의 부드러움에 빠져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