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인간다울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책장의 마지막을 덮으면 떠올린 생각이다. 많은 창조와 개발로 인해 이루어놓은 물질과 생산품들을 인간의 가장 안좋은 파괴적성향으로 인해 2058년에는 세계의 절반이상이 없어지게 되고 특정한 섬에 일부의 사람들만이 남게 된 채 새로운 공화국을 건설하게 된다. 그곳에서는 인간의 이러한 파괴적 성향을 줄이기 위해서 유전자 조작을 이용하여 인간의 역할을 완벽하게 분리시켜놓고 그 역할에 맞게끔 계급을 결정지어놓았다. 유전자 조작이라고 함은 태어날 당시에 남아있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특이한 반응이 감지되었을 경우 다수를 위해서 소수를 희생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렇지만 새로운 세계에서 아담이라는 청년이 태어나게 되면서 상황은 급반전된다. 이 아담은 유전자적 이상징후가 보였지만 발생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일단은 태어나게 된다. 상위계급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상징후의 예후로 인해 상위계급이 아닌 하위계급으로 분류되어 남아있는 인류의 섬 경계를 맡는 임무를 가지게 된다. 이 임무는 섬으로 들어오는 타 인류의 침입을 조기에 저지하여 혹시라도 있을 섬 인류의 붕괴나 혼란을 대비하는 것을 말한다. 아담은 같은 동료와 함께 경계근무를 서다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작은 소녀를 목격하고 제거하는 대신에 구출하는 동정심을 발휘하여 추후 공화국의 지도층에 의해서 공개재판을 받게 된다. 그러나 공화국의 생각과는 달리 아담은 공화국 국민들에게 반란의 여지를 보여준 사람이 아닌 동정심을 보여준 마음 착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이것은 하위계급의 반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되어 그 계급을 대처할 인공지능을 가진 안드로이드를 개발하는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그러나 다수의 안드로이드를 만들어내는 모체인 안드로이드(아트)는 뛰어난 이해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개발자의 의사소통을 이미 뛰어넘은 상태였다. 그래서 새롭게 찾게 된 것이 바로 아담과의 상호소통이다. 아담을 옹호하는 세력이 생겨날 것같은 두려움에 공화국은 그를 죽이지 못하는 대신에 안드로이드의 발달에 이용하기로 결정시킨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아낙스의 면접내용에 나오는 일부분에 속한다. 아낙스의 면접은 총 네시간으로 이루어지는데 그중 아담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때 바로 앞서 이야기한 내용들이 포함되어있다. 왜 아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며 아낙스는 이것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면접을 보고 있는가? 가령 엄마로 부터 태어난 아이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아이는 엄마의 생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아낙스가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지 감이 조금 올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지막에 반전으로 보여진다. 미래에서 바라보는 과거는 또다른 현재를 의미한다. 기존의 상황과는 달라진 현재는 기존의 상황으로 인해 붕괴된 현재를 다시 겪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마지막을 보았을때 그러한 점이 모두 이해가 들었다. 면접에서 나오는 주된 내용인 아트와 아담의 논쟁은 인간이 어디에서 왔으며 진정으로 스스로를 정의 내릴 수 있는 가 하는데 대한 의문을 많이 이야기한다. 비록 논쟁의 끝은 결론되어지지는 않아보인다. 스스로를 안드로이드라고 생각하지 않고 생명체라고 생각하는 아트와 그것을 거부하는 아담사이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책을 읽다보면 둘 다 맞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아트의 논리성에 아담이 포기하는 투의 말로 논쟁을 끝내곤 한다. 생김새만 사람이 아닐뿐 생각을 하고 판단하고 이해하고 그것을 확장할 수 있다면 아트도 사람이라고 칭할 수 있을지 읽는동안, 읽은 후에도 여러가지 논점에서 의문되는 점이 너무나 많았다. 얇은 책에 담겨진 내용은 예상보다 많은 것들이었다. 로봇을 개발하고 집중하고 있는 시대에 근 미래라고 여겨지는 그 시기가 오면 아마 인간과 소통하면서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어 자기 스스로가 판단하고 이해하는 고지능의 로봇도 나오지 말란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매력이 더욱더 빛이 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