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복숭아 - 꺼내놓는 비밀들
김신회 외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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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세이를 참 좋아한다. 모두가 버젓이 제 몫을 하며 멋지게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자꾸 작아지는 것 같을 때, 그렇게 마음이 불안으로 가득 찰 때 에세이를 읽으면 저마다의 상황 속 걱정과 불안을 털어놓는 작가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럼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하는 마음에 묘한 동질감이 느껴지고 위로가 된다. '나만 이 세상 살이가 고된 건 아니구나. 나만 고민과 걱정이 많은 건 아니구나. 모두 그런 자신을 돌보며 살아가는 거구나' 와 같은.


그와 비슷한 마음에서 이 책에 눈이 갔다. '그들이 숨기고 있는 취약점은 뭘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던 것이 첫 번째였고, 짙은 파랑의 표지에 동동 떠있는 복숭아들을 보며 아마도 그들이 보잘것없지만 깜찍한 부끄럼 에피소드를 들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기도 했다.


크고 작은 비밀을 담은 이 책이 내게 남긴 건, 그럼에도 자신을 사랑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빈틈이 좀처럼 매워지지 않아도 그게 나인 걸 어떻하나 하면서 그런 빈틈마저도 품는 것. 긴장과 불안에 동동거리는 나 조차도 끌어안는 것. 어쩌면 그들이 비밀을 털어놓는 순간부터 시작되었을지 모를 그런 인정과 포용과 사랑이 내게도 젖어든다. 그렇게 책을 덮으며, 나 또한 내 빈틈을 인정하고 불안을 감싸안으며 그런 대로의 나를 사랑하려 한다.


사랑을 모르면 모르는 채로 살자. 사랑이 없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내가 되자. 그러자 새로운 길이 보였다. - P21

내 이야기로 만든 단 한 권의 책에 이 장면은 꼭 넣고 싶다. 내가 원했던 생활에 어느 정도 가까워져서 겉으로는 꽤 여유로워 보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지난 내 약속들에 매일 혼이 나며 책상 앞에서 괴로워하는 장면 말이다. 그러면서도 오전에 한가로이 내린 커피 한 잔이 느긋하게 놓여 있다면 완벽하겠다. - P68

늘 자연 속에서 식물을 관찰하며 그 대상인 식물로부터 마음의 안정과 위안을 얻지만 가끔 내게 내내되어 있는 도시인의 욕망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 땐 이렇게 음악, 드라마, 영화, 책으로 도시의 삶을 만나며 대리 만족한다. - P146

식물세밀화가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직업인 데다 내 주변만 해도 나를 통해 식물세밀화가라는 직업을 접한 사람이 많기에, 직업이 곧 정체성으로 보이기 쉽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식물세밀화가에 대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줘야 할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 그 기대를 와장창 깨버려야 할지 고민이다. - P149

내 안의 양육자가 스스로를 다그치려다 다정한 훈육의 아이콘 오은영 박사님을 상상하며 가까스로 위로를 건제본다. 걱정은 여전하지만 이 정도로 내 마음을 수습할 수 있는 힘은 분명히 필라테스와 요가와 러닝에서 얻은 몸의 기운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 P168

선생님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습관적으로 바라볼 휴대전화 배경화면으로 푸른 점을 설정해두고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위안을 받았는지도 모르겠지만.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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