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하는 여자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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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은 작가입니다."김숨"(이름이 참 예쁘네요)
누비 바느질하는 수덕과 그녀의 두딸 금택과 화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작은 동심원을 그리며 느리게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읍내와 떨어진 우물집, 그 집에서 평생 누비 바느질로 옷을 짓는 엄마와 두딸의 바느질이야기가 곱게 펼쳐집니다.
좁은 장소, 한정된 인물들의 긴시간이 0.3cm 홈질로 가지런히
문자화 되었고 그 바느질을 따라 읽는 재미가 마치 곱고 참한
누비 한복 한벌 같습니다.

한정된 공간에서의 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물들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는 특별히 제가 좋아하는 형식이기도 합니다.
형식적인 면에선 엘리스 먼로 "디어 라이프"가 겹치기도 하고,
도리스 레싱의 소설들이 겹치기도 합니다.

서쪽방에서 한땀한땀 누비옷을 지으며 평생을 산 수덕.
그녀의 옆을 지키며 그녀를 잡고 있던 금택.
숨막히는 엄마의 바느질과 언니의 질투에서 도망가고자 했던
화순. 세 모녀의 40년의 짧지 않은 시간들이 지루하지 않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책은 여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주축이 되는 세모녀와
어느 시장통 한복골목에서 한복을 짓는 여자들
복래한복, 서울한복, 전주한복, 아씨한복 여자들과 옥사모님,
월성댁, 일월오봉도 자매, 부령할매, 엘리자베쓰양장점 처녀,
부엉상회, 재숙까지 모두 여자들 이야기입니다.

평생 고운 옷감속에서 살면서도 자기옷 한벌 지어 입지 못하고
일월오봉도 자수 평풍엔 먼지만 쌓여가고, 결국은 삵바느질을
면치 못하지만 자기 몫의 삶을 차근차근 살아내는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여자들 이야기.

바느질 한땀이 쌀한톨, 밀가루 한줌이 되고,
죽은 누군가를 위해 매듭없이 되돌아 가지 않는 바느질을
멈추지 못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입니다.

6살 꼬마가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가을 바람처럼, 누비 바느질 처럼, 봄비처럼 지나가고 쌓여서
한권의 소설이 된것 같습니다.

폭발하거나, 웅장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굉장히 좋은 소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암튼 좋네요.

"한 흰색이어도 멥쌀 같은 흰색이 있고,
갓 지은 백미 같은 흰색이 있다는 것을 금택은 알았다.
배꽃 같은 흰색이, 달걀 껍데기 같은 흰색이,
두부 같은 흰색이 있다는 것을.
멥쌀 같은 흰색에는 옅은 밤빛이,
갓 지은 백미 같은 흰색에는 초겨울 새벽녘의 푸른빛이,
배꽃 같은 흰색에는 노란빛이 미미하게 감도는 연둣빛이,
달걀 껍데기 같은 흰색에는 탁하고 흐린 분홍빛이,
두부 같은 흰색에는 살굿빛에 가까운 노란빛이 감돌았다."

"콩죽같은땀색을 토끼똥색과 보름달품은구름색과
청개구리색과 동쪽하늘색과 거머리색이 사방에서 둘러싸
조각보라는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것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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