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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삼킨 소년
트렌트 돌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긴 소설을 읽어내려간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열두 살 소년인 엘리 벨을 주인공으로 하여
마약, 범죄, 감옥, 탈옥, 자유, 트라우마, 친구, 가족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엮어낸다.
엘리는 '악명 높은 전설의 탈옥수'인 70대 아서 슬림 할리데이와 절친한 사이다.
그를 통해 운전을 배우고 삶을 배우고 지혜를 익힌다.
'어른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 있긴 하지만
종종 엘리의 시선은 열두 살 어린아이의 관점이 아니라
어른이 된 엘리가 바라보는 과거의 자신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 중첩된 시점이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고 결을 살려주는 부분도 있지만
순수한 어린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다 담았다고 하기엔
좀 모자라게 느껴지기도 한다.
엘리를 둘러싼 환경은 최악의 최악으로 치달아
더 나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데
그 속에서 엘리는 의연하기도 하고 정신을 놓기도 한다.
중구난방으로 너무 많은 인물이 나오는 것 같았던 부분들도
후반부의 다른 이야기와 연결되며
구성의 완성도를 높인다.
슬림 할아버지에게 매사 디테일하게 사고하는 방법을 배우고
탈옥할 당시의 과정을 전해 듣는 부분은
그 단편적인 장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장면의 디딤돌로 작용한다.
나중에 엘리가 병원에서 어른들의 시선을 따돌리고
탈출하는 장면이나
악당으로 나오는 '타이터스 브로즈', '이완 크롤'과 대면할 때
그 방의 공기와 사물들을 하나하나 읽어 통찰력을 내보이는 장면과 이어지면서
훨씬 복잡하고 풍성한 구조를 완성하는 것이다.
또한, 중간중간 행방이 묘연했던 인물이나
풀리지 않았던 의문들도 마지막까지 읽었을 땐 남김 없이 해결된 것이
이 작품이 의도한 바를 전달하기 위해 플롯과 인물을 짜는 데 큰 공을 들였구나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앞서 제시한 단서들을 성실하게 거둬들이며 흡인력을 가세하는 뒷부분에 비해
중반까지의 서사가 좀 늘어지는 경향이 있는 게 아쉬웠다.
그래도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세상과 환경에
꺾이지 않고 맞서 움직이는 소년의 이야기에서
힘찬 기운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