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깨달았다. 100퍼센트의면티를 찾는 건 100퍼센트의 연인을 찾는 것과비슷한 일이었다. 10대와 20대엔 완벽한 핏이나면의 질 따위는 상관없었다. 화려한 프린트나 독특한 절개에 먼저 눈이 갔다. 사람도 그랬다. 그시절 중요한 건 비슷한 취향이나 안목, 됨됨이가아니었다. 듣기 좋은 목소리와 훌륭한 다리와 아름다운 눈이었다.
30대 중반을 지나치면서 면티와 사람을 고르는방식도 변했다. 화려한 프린트에는 이제 혹하지않는다. 내 몸과 마음에 딱 맞아떨어지는 질 좋은흰색 면티를 고르듯 사람을 고른다. 오래 입을 수있는 100퍼센트의 사람을 찾아 헤맨다. 이건 더 현명해졌다는 소리일까, 더 까탈스러워졌자는 소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