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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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야 이 책을 읽었다. 차마 영화까지 볼 엄두가 나지 않아 책만 읽었는데, 글만 읽어도 숨이 턱턱 막혀오는 기분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82년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여성 김지영 씨였다. 이름에서부터 평범함을 느꼈다. 그만큼 지영이라는 이름은 살면서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흔하고 익숙한 이름이었다.

김지영 씨의 삶을 따라가며 내 삶과 비교해보았다. 내 삶과 김지영 씨의 삶이 얼마나 닮았나, 또 얼마나 다른가 하고. 일부는 닮았지만, 일부는 닮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겪지 않았다 해서 김지영 씨의 이야기가 보편성을 잃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운 좋게 피해가거나 몰랐을 뿐, 다른 곳에서는 김지영 씨와 비슷한 궤를 그리며 사는 여성이 분명 존재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를 서글프게 한 건 김지영 씨가 겪은 일이 아니라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끝내 하지 못했다는 구절이었다. 불만을 내뱉는 게 습관이 되지 않아 할 수 없었다는 어린 시절의 김지영 씨를 보며 그것도 내뱉어봐야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김지영 씨는 배식을 늦게 받는 것에 대해서도, 자기를 씹던 껌이라며 뒷담을 하던 선배 앞에서도, 회식자리에서 억지로 술을 먹이는 와중에도 자기 딸을 데리러 가야 한다는 거래처 사람 앞에서도 입을 닫았다. 하지만 모든 상황 앞에서 입을 다물어 버린 것이 정말 불만을 말해 버릇하지 않았던 김지영 씨만의 문제였을까. 원인은 여자의 말을 곧잘 예민함과 까탈스러움으로 포장해버리는 사회에 있지 않았나?

네가 예민해서 그래. 까탈스럽긴.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느낀 걸 곧이곧대로 말했을 때, 저 말을 안 들어본 적이 손에 꼽았다. 중학교 때, 같은 반 남자애들이 날 보며 낄낄거리는 게 기분 나쁘다고 하니까 네가 예민한 거라고, 그냥 흘려 들으라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 그 아이들을 날 보며 웃었고, 그 순간 불쾌함을 느꼈는데도 돌아온 건 내가 참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원인은 상대방에게 있는데 해결책을 나에게서 찾으려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나중에는 그런 식의 감정소모에 지쳐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한국 여성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입을 닫게 되었을 것이다. 김지영 씨처럼 말해 버릇 하지 않아서, 혹은 나처럼 감정소모를 피하기 위해 등의 이유로 말이다. 그렇게 서서히 입을 다물면서 우리는 김지영 씨가 되어 갔다.

소설은 82년생 김지영 씨의 이야기지만 사실 김지영 씨의 이름을 빌린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남녀성비 불균형부터 시시때때로 당하는 품평과 여성 취업률, 임금차별, 임신출산육아로 인한 사회와의 단절, 그리고 맘충 소리까지. 출생 년도에 상관없이 한국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었고 그래서 더 숨구멍이 짓눌린 것처럼 답답했던 책이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나도 김지영 씨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외면하고 부정한다고 해서 김지영 씨는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주변에는 김지영 씨가 태어나고, 자라고, 사회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82년생 김지영 씨의 이야기가 보편성을 잃었으면 좋겠다. 보편성을 잃어 그저 이 사람만의 이야기로 남기를. 더 많은 사람이 82년생 김지영 씨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불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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