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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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버려진 고양이 ‘나’는 학교 선생으로 있는 한 인간의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곳에서 ‘나’가 주인을 비롯한 그의 주변인물 메이테이 선생, 간게츠 군, 도쿠센 선생 등을 관찰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P55. 이 떡도 주인처럼 참 알 수가 없다. 씹어도 씹어도 10을 3으로 나눌 때와 마찬가지로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

P302. 끙끙거렸지만 전혀 나아지질 않자 다시 나쓰 씨를 불러, 이번에는 시즈오카에 의사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아무리 시즈오카라고 해도 의사가 없겠느냐며 덴치 겐코(天地 玄黃)라는, 천자문에서 훔쳐온 듯한 이름의 의사를 데려왔다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진지하게 읽지 마시라. 그랬다가는 메이테이 선생에게 늘 당하고 마는 구샤미 선생 꼴이 나기 십상이니.’
이 책을 읽기 전에 책 맨 뒤의 이 문장부터 읽었어야 했다. 그러면 읽는 데 이렇게 힘이 드는 일은 없었을 텐데. 과장 좀 보태서 이 책의 3분의 1은 메이테이 선생의 헛소리고, 남은 3분의 1은 주인의 헛짓거리이고,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고양이를 비롯한 그 외 등장인물의 헛짓거리(+헛소리)일 것이다. 그래서 번역가도 힘을 빼고 편하게 즐기라고 한 것이겠지.

읽는 데 꽤 힘이 든 작품인데 다 읽고 나니 뭔가 좀 묘하다. 재미있다고 하기엔 그건 좀 싶은데 그렇다고 재미없다고 하기엔 그것도 좀… 이라서. 재밌기는 한데 약간 기가 빨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말에 농락당한 느낌이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래도 첫 문장을 보고 느꼈던 신선함, 그 만큼의 재미는 있었다.

웃긴 점은 고양이는 주인과 그 주변 인물들을 관찰하며 그들을 바보취급 하는데, 독자 입장에서 보면 고양이도 이야기 속 인간들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고양이가 인간보다 엄지손톱만큼 더 낫다는 점일까. 고양이는 인간을 바보취급 하고 독자는 그런 고양이를 또 바보취급 하는 걸 보면 해학적인 소설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시종일관 해학과 풍자를 넘나들며 지식인들의 허세와 허풍을 한심하게 여기던 고양이의 시선이 끝에 가서는 그들의 내면에 자리한 슬픔을 헤아린다. 그 모습이 어딘가 부드러워진 듯한 느낌을 주는데 꼭 미운정이 들어버린 사람에게 보내는 눈빛 같다. 고양이도 그들이 한심하지만 계속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러고보면 고양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름이 없다. 이름이라는 건 나와 타인을 구분해주는 첫 번째 특징인데 그런 것 없이 그저 고양이로 살다가 가버리는 ‘나’의 모습은 어쩐지 허무하다.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한 이 고양이를 누가 기억하고 어떻게 기억을 할까. 나는 그저 관찰자로 살다간 고양이가 인간보다 더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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