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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읽고 함께 살다 - 한국의 독서 공동체를 찾아서
장은수 지음 / 느티나무책방 / 2018년 11월
평점 :
같이 읽고 함께 살다(한국의 독서 공동체를 찾아서) 장은수. 느티나무책방. 2018년 11월.
평소 장은수 선생님의 페이스북글을 잘 봐왔다. 주로 책소개, 독서이야기, 출판과 출판시장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주로 추천해주시는 책에 관심을 가져왔다. 진주에 내려와 강의를 하시는 경우도 있었지만, 가보지는 못했다. 며칠전 책을 내셨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고 진주문고로 달려가니 딱 한 권이 있어서 망설이지 않고 집어왔다.
책의 제목도 내 마음에 쏙 들었지만, 책을 읽게 만든 건 부제였다. ‘한국의 독서 공동체’를 찾아서. 독서는 책을 읽는 행위이고, 대개 독서는 개인적인 활동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묵독이 일반화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책을 접할 수 있는 계층은 역사동안 늘 일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서 공동체’라는 말에 내 심장은 살짝 떨다가 다시 뛰는 것 같았다. 들어봤어야 할 단어를 처음 듣고 놀랐다. 나는 독서모임을 하고 있고, 몇 개의 독서모임을 해봤다. 그걸 통해서 내 마음에 쌓인 것들을 다른 독서 모임 사람들이 느낀 것과 비교해 보고 싶었다. ‘내가 잘 하고 있다’ 라는 확인이 필요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속으로 고개를 자꾸 끄덕인다. 거의 모든 설명과 다양한 독서모임의 운영 형태를 보면서, ‘그렇지, 이렇게도 할 수 있지.’, ‘그렇지, 이런 원칙이 있어야지.’ 하며 내가 했던 고민들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자꾸 나에게도 ‘잘 해왔구나.’ 말하게 되었다.
책을 혼자 읽는 사람도 없는 시대에 무슨 독서 공동체냐?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 읽는 모임이 먼저고, 책읽는 사람이 나중이다 생각이 들었다. 혼자하는 공부는 헛똑똑이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세상과 이웃을 생각하지 못한채, 머리 속에 제 이익 될 것들만 집어넣은 인간들은 뉴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는 세상 전체에 해악을 끼친다. 법관들의 불법행위를 보면서, 그들은 분명 혼자 골방에서 공부하지 않았겠나 싶었다.
이 책에서도 여러 독서 모임 사람들의 입에서 여러번 반복되는 내용이 있다. 함께 읽기 시작하면서, 겸손해지고 경청하게 되었다고. 성품도 순해지고, 쉽게 판단하고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않게 되었다고. 1인칭의 입장을 벗어나, 자신을 객관화 시켜볼 수 있었다고. 나도 그렇다. 그렇게 느꼈다.
독서 모임이 공동체로서의 위상까지 얻게 되는 것은, 함께 앉아 ‘우리 어떻게 살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문제는 함께 해야할 과제가 되고, 거기에 나도 힘을 보태야 할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책은 해결책을 주지는 못 하지만, 더 많은 질문, 더 정확하고 올바른 질문을 할 수 있게 해준다. 함께 고민을 나누는 사람은 어느새 연대를 이루게 된다.
새해에는 독서 모임을 하나 더 열고 싶다. 책읽기가 재미없다는 사람, 혼자 읽기만 좋다는 사람, 독서모임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 독서 모임 중인 사람. 모두에게 권하는 책.
중요한 것은 ‘내가 생각한다’라는 독단에서 벗어나 ‘우리가 생각한다’는 공동사유로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현대 자본주의가 가장 열렬하게 생산하는 것은 고립된 개인이다.
잡담은 인간이 주어진 ‘평균적 이해 가능성’을 넘어서려 하지 않고, ‘이야기된 것 그 자체’로, 즉 피상적으로 대화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상태(수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사실이 그렇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압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나의 법을 무너뜨리고 또 다른 법을 세우려 할 때, 읽기만이 우리를 쉽게 도울 수 있다. 타자의 혀로써 내면을 다시 씀으로써, 읽기는 삶의 기존 규칙을 시험에 들게 하고, 그 규칙의 근거를 흔들어 자유를 확보하도록 해 준다.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인생을 다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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