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눈의 산토끼 - 잃어버린 가족의 역사를 찾아서
에드먼드 드 발 지음, 이승주 옮김 / 아르테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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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흘려보내며 나무는 나이테를 남기고 우리 인간은 이마에 주름을 남긴다. 그리고 비록 사소한 물건일지라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의 소재가 된 호박琥珀 눈이 달린 놀랍도록 새하얀 산토끼 모양의 네쓰케根付가 바로 그렇다 하겠다.

저자인 에드먼드 드 발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영국의 도예가로서 한때 유럽의 중심에서 로스차일드에 버금가는 부와 명성을 누렸던 유대인 은행가 가문 에프루시의 후손이다. 그는 기록보관소와 도서관 그리고 현장 방문 등 오랜 시간 동안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문헌, 유려한 문장을 통해 그 잃어버린 흥망성쇠의 5대에 걸친 가족의 역사 150년을 호박 눈을 가진 산토끼라는 네쓰케를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펼쳐낸다.

여기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네쓰케根付에 대해 설명하면, 에도 시대의 일본 정통 공예품으로 사람이나 동식물 등을 정교하게 조각한 장신구. 다음백과에서는 일본 남자들이 인로印籠나 담뱃대, 담배쌈지를 허리띠에 매달기 위해 사용했던 비녀장 같은 장식품으로서 대개 상아 따위를 조각해서 만들며 도쿠가와 시대[德川時代:1603~1868]에는 훌륭한 소형 예술품이었을 뿐 아니라 옷을 입을 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당시에 새롭게 등장한 중인 계층은 무사 계급보다 지위가 낮아 보석을 달고 다니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장신구 대신 네쓰케로 몸을 치장했다라고 소개한다. 하여간 전혀 다른 거지만 요즘 어린 학생들이 백팩 책가방에 달고 다니는 장신구처럼 그와 유사한 거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가리라...






이야기의 시작은 우선 도입부에서 5대에 걸친 에프루시 가계도와 저자가 젊은 시절 일본 재단으로부터 2년간 장학금을 지원받아 일본을 배우는 얘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일본 도자기나 민예품에 관한 얘기, 네쓰케와 관련된 이기’(엘리자베트의 남동생) 등 일본인 지인과의 만남과 네쓰케의 처음 안식처가 파리에 살던 고조부격(4대조)의 샤를 에프루시 서재였다는 얘기 등이 소개된다.

그리고 에프루시 가문은 러시아에 사는 유대인 출신의 어마어마한 부자라며 로마노프 시대 러시아 항구도시 오데사에서 저자의 5대조 격인 요아힘 에프루시가 1860년대 당시 밀을 매점매석해 큰 부를 일구어 세계 최대의 곡물상으로 성장하는데 이는 당대 제임스 드 로스차일드가 유대인의 왕이었다면 요아힘은 "밀의 왕"이었다고 소개한다.

이렇게 부자 가문이었기에 고조부 격인 샤를 에프루시는 셋째 아들이라서 사업은 장자에게 맡기고 언론계에 종사한다. 그는 미술지인 가제트 데 보자르의 평론가이자 소유주였으며 당시 르누아르, 드가 등 인상주의 미술가들을 후원하고 그들의 작품을 사들인다. 또 그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스완의 실제 모델이기도 했다고 한다. (아래 사진에서 검은색 정장을 입은 뒷모습의 남자가 샤를임)



그리고 드디어 예술애호가였던 그는 당시 자포니즘(19C 중후반 유럽에서 유행하던 일본풍의 사조)의 유행에 따라 일본 칠기함을 수집하고, 곧이어 호박琥珀 눈이 달린 놀랍도록 새하얀 산토끼모양의 네쓰케 등 264점의 네쓰케를 수집하게 된다는 얘기가 소개된다.


이후 본격적으로 호박 눈의 산토끼라는 네스케와 관련된 에프루시 가문의 흥망성쇠 에피소드가 장장 470여 page에 걸쳐 펼쳐진다. 이어 드레퓌스 사건을 전후로 상황이 급변하게 되는데 반유대주의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에프루시 가문에 대한 공격이 거세진다. 러시아 국적의 유대인이었던 샤를. 작가 에두아르 드뤼몽은 에프루시 형제들이 투기를 하며 프랑스인의 고혈을 빨아먹는다고 비난하고 르누아르와 드가 등 친구였던 화가들 역시 등을 돌린다.


이어 1899년 샤를이 네쓰케와 진열장을 오스트리아 빈에 사는 사촌 동생인 빅토어의 결혼 선물로 보내는 얘기. 자포니즘의 열풍은 철 지난 유행이 되었고, 허영과 과시가 심한 이 도시 빈에 어울리지 못한다. 결국 네쓰케는 빅토어의 아내 에미의 옷방에 들어가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이 된다. 맏딸인 엘리자베트는 바로 저자의 할머니인데 문학도를 꿈꾸며 시인 릴케와 편지 우정을 쌓던 그녀는, 변호사가 되어 훗날 가문의 재산 반환에 적극적으로 기여한다.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는 과정, 유대인 박해와 재산 약탈이 시간 순서대로 전개된다. 역사적 사건과 에프루시 가족의 미시적 역사가 씨실과 날실처럼 촘촘하게 엮이면서 긴박감은 고조에 달한다. 나치는 시시각각 숨통을 조여온다. 모든 일은 체계적이고 합법적으로 처리되고 절차에 따라 신속하게 진행된다. 국가의 적으로 몰린 유대인 빅토어 에프루시는 전 재산을 양도하는 서류에 서명한다. 유대인의 자산은 게슈타포에 의해 압수되고 전문가에 의해 철저히 기록되고 처분된다. 즉 아리안화 된다. 오스트리아를 탈출하는 부부의 손에는 가방 하나가 전부다. 빅토어의 아내 에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리고 앞 부문에서 잠시 언급한 엘리자베트의 남동생 이기가 네쓰케를 데리고 1947년 패전국 일본에 도착하고... 연합국이 점령한 도쿄는 생존을 위해 물건을 하나씩 내다 파는 가난한 일본인들과 미군을 상대로 매춘하는 팡팡걸과 젊은 아프레세대 등 전후 일본 사회의 슬픈 내면을 소개한다. 그렇게 네쓰케는 이기의 도쿄 아파트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고향인 이곳 일본에서 네쓰케는 정체성을 되찾는다. 더 이상 낯선 동양의 물건이 아니다. ‘이기는 사망하면서 264점의 네쓰케를 저자에게 넘겨주고... 그리고 네스케는 저자가 사는 런던으로 다시 자리를 옮겨가게 되고...


이처럼 이 책은 19C 자포니즘의 열풍으로 한때는 프랑스 부호들의 수집품이었던 일본의 네쓰케를 통해 유럽의 최고 명문가로 우뚝 섰다가 한순간에 몰락하는 비상과 몰락을 가져온 한 가문의 화려했고 또 비극적이었던 격동의 세월을 감동적이면서도 절제된 서사로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한 사물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고, 말미 부문으로 갈수록 읽는 재미를 이끌어내는 이 책 「호박 눈의 산토끼」를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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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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