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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동네책방
이춘수 외 지음, 강맑실 엮음 / 사계절 / 2022년 4월
평점 :
어린 시절 내가 살았던 소도시에서는 역전 버스정류장 앞 서점이 약속장소로 인기였다. 각종 시험의 문제집과 잡지로 입구가 꾸며져 있고, 2층엔 내가 좋아했던 소녀들의 차밍 비법 같은 알록달록한 책들이 꽂혀있었다. 지금 내 딸이 산다고 하면 혀를 찼을 법한 그런 책들을 찾아 헤맸다. 아마도 이제는 사라지고 기억 속에만 자리한 그 서점이 떠오른 이유는, 오늘 골똘히 읽었던 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동네책방> 때문이다.
요즘 들어 나는 책방을 하나 만들어 운영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무척이나 낭만적인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지극히 현실적이지 못한 나와 딱 어울리는 생각이다. 주변에서는 책을 팔아서 임대료를 낼 수 있겠냐는 걱정부터 내놓는다. 나는 나만의 서재를 겸하며, 틈틈이 다른 작업도 하면서 책방을 지키는 상상을 했던 터라, 금전적인 문제에까지는 따져보지 못했기에 적당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오늘 읽었던 책에서도 각양각색의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책방지기들의 공통된 말이 바로 유지하기 어려울 만큼의 저조한 수입이었다. 아마도 다들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참지 못하고, 그만두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일종의 사명감일까, 혹은 오기일까. 지금의 현실은 동네책방에게 척박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23명의 책방지기들은 때때로 모진 말을 들으면서도, 다시 반짝이는 눈빛을 하고 책방을 찾는 ‘사람’들을 만나 다시 버티게 되었다고 한다.
알고 있던 일이긴 했지만, 지난 번 제주의 노란우산 책방이 화재로 사라진 사건이 여러 책방지기들의 글에서 등장했다. 그 망연자실함이 다시금 전해졌다. 놀랍게도 전국의 독자들과 출판사, 서점인들이 모금운동을 벌였고, 노란우산은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 대목이 나올 때마다 마음이 자꾸만 울컥거렸다. 책으로 시작된 보이지 않는 연결이 존재하는 것 같다. 달책빵 책방지기님이 말하신대로 책방을 연다는 것은 이상하고도 따뜻한 세계로 발을 들이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책방이 없는 곳은 문화사막’이라는 풀무질 책방지기님의 말도 너무도 와 닿는다. 그렇다면, 동네책방이 자꾸 생겨나는 것은, 그중 하나를 내가 맡아보는 것 또한 희망 혹은 의미가 있는 일일 수 있겠다.
사실 나는 다독가도 아니고, 유년기 책만 팠더라 하는 추억도 없고, 그저 TV를 즐겨 보는 미디어중독자인지도 모른다. 돈벌이가 안 되는 동네책방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책방을 하기에 얼마나 책을 알고 있고, 얼마나 책을 좋아하는가 하는 자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기에 책방 만드는 일을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동네책방에 기대하는 그 무엇. 책을 잘 아는 책방지기의 추천을 받아 읽는 인생 책이 가득하고, 편안하게 책을 읽으며 고를 수 있는 곳. 맛 좋은 커피도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그런 것을 내가 소화할 수 있을지가 고민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궁금했다. 책방을 열고 또 함께 살아가는 책방지기들이 직접 적은 글들을 묶은 책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책방을 탐방하고, 인터뷰한 책도 좋지만 저마다의 체취가 담긴 이 책은 그래서 생생하고 더 귀하다. 몇 년씩 한 자리를 지켰던 책방지기들은 어려워도 계속 이 길을 가보겠다고 말한다. 꿈을 현실로 일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훗날 내가 어떤 책방을 열게 될지, 혹은 그저 책방을 찾는 독자로 남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책방지기들이 나누어준 이야기들을 보며, 누군가에게 잠시나마 쉼을 선물하며 마음을 나누는 일들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희망하게 되었다. 조금은 뻔한 제목이라고 생각했지만, 책을 덮고 나니 동네책방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임에 틀림이 없구나 하는 생각으로 뭉클해진다. 애정이 듬뿍 담긴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의 따뜻한 그림도, 책 만듦새도 참 좋았던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또 책 속의 책방들을 직접 찾아가 서점의 냄새를 맡아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