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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의 탄생 - 모리나가 요우의 일러스트로 보는 ㅣ 건들건들 컬렉션
모리나가 요우 지음, 전종훈 옮김 / 레드리버 / 2020년 5월
평점 :
친구 중에 밀덤 겸 건덕인 친구가 있다. 방 안 가득 프라모델을 늘어놓고, 핀셋으로 하나하나 붙인 부품이 떨어질까봐 숨도 크게 못 쉬고 잠도 조심조심 자는 친구다. 그리고 밀덕이 늘 그렇듯, 이 친구는 시판된 프라모델을 그대로 조립하는 법이 절대로 없다. 이곳에는 파이프가 세 가닥 있어야 하는데 생략되었다느니, 저곳의 안테나는 모양이 다르다느니 어디에는 또 뭐가 있어야 되는데 다른 게 붙었다느니 하면서 끊임없이 깎고 붙이고 수정해나간다.
아마, 이 책도 그런 사람이 만들었을 것이다. 책은 정확한 제원이니, 정확한 이론이니 그런 건 그다지 다루지 않는다(필요한 정도는 있다). 마니아들이 으레 그렇듯, 그런 건 상대방을 떠볼 때나 쓰는 상식의 영역인지도 모른다. 다만 책에는 저자가 생각해낸 온갖 해석이 그림과 글 속에 들어 있다. 그리고 마치 겸손이라도 떠는 것처럼, “이 부분은 상상이라 가치가 없음”이라든가, “이곳은 자료가 없으니 아마도 다를 듯”이라는 말을 곳곳에 붙여 놓는다.
정확한 지식, 공인된 진실만을 보고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 책의 내용에 숱한 반박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걸 마니아 배틀이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전차 탄생 이전의 역사는 물론이고, 1차 대전 당시의 전차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건 생각보다 적다. 솔직히 말해 확실하게 인정받는 것도 확실하지 않을 때가 많으니 반박하는 사람조차 결국은 저자가 그렇듯 자신의 주장을 펴게 되리라. 만약 반박을 해야 하는 당신이 이 책의 독자라면 결국은 저자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독자가 되어버린 거겠지. 그리고 (아마도 나만 그렇게 아는지 모르겠지만) 마니아들은 대화는 서로 잘 통해도 생각은 그다지 일치하지 않는다.
하여, 나도 그런 식으로 이 책을 읽어내려갔다. 읽는 내내 저자의 생각에 불평하고, 반박하고, 흠을 찾으려 애쓰기 바빴다(정확히 말하면 나도 그냥 내 생각을 우겨댔을 뿐이지만). 자신 없는 듯하면서도 능청스레 이것저것 단정하는 저자의 말투조차 나중에는 맘에 안 들었다. 그러다 문득, 어쩌면 이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주는 건 지식보다는 재미다(사실, 지식도 제법 충실하다. 왠지 인정하기 싫었을 뿐). 나름의 조사와 나름의 근거를 거쳐 나름의 주관을 가진 해석은 반박하기도 만만치 않거니와, 무엇보다 반박 과정도 제법 즐겁다. 책은 말 그대로 탱크의 탄생과 그 초기 역사를 다루고 있다. 자주 들어보았거나 익숙한 탱크보다는, 어디선가 이름만 얼핏 들어본 듯한 그런 전차들이 책 속에 주로 나온다. 그다지 밀리터리에 해박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이라면, 흐린 사진으로나 보던 전차들을 또렷한 선이 있는 그림으로 본다는 데 대해 감탄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것저것 해박한 밀덕이라면, 책을 보는 내내 근질거리는 손가락과 입을 주체 못 하게 되리라. 그리고 제법 벅찬 가슴을 속으로 콩닥거리게 되리라. 자세히는 모르던 제원만 알고 있던 것이 눈앞에 생생하게 놓여 있다. 그리고 나름의 주석도 열심히 붙어 있다. 여기에 한소리를, 정확히 말해 싫은 소리를 던지지 못한다면 밀덕이란 말을 반납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