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다른 열두 세계 포션 6
이산화 지음 / 읻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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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열두 세계>는 읻다 출판사의 포션 시리즈물 중 여섯 번째 작품이다. 포션은 읻다 출판사의 장르문학 브랜드인데, 요즘 출판사들이 저마다 시리즈물을 출간하고 있는 추세인지라 흥미가 생겨 해당 도서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이산화 작가가 2022년 1월~12월까지 《고교 독서 평설》에 연재했던 작품을 엮은 초단편소설집이다. 단편이 아닌 '초단편'이라는 말 그대로 작품 한 편당 10-20페이지 내외이며, 각기 다른 열두 가지의 세계관으로 이루어져 있어 독립적인 작품으로써의 성격도 지닌다.
따라서 짧고 굵게 독서를 하는 분들이나 SF 작품에 입문하고픈 분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SF의 고유한 재미라고 하면 역시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재미가 아니겠어요? 현실과는 다른 논리와 규칙이 지배하는 세계가 존재한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지, (중략) 바로 그런 상상들이야말로 SF라는 장르가 전달할 수 있는 재미의 정수 일지도 모른다고 봐요.
작가의 말 - 155p

🌠 찰나의 세계
우선 이 작품은 깊이 있는 스토리 전개보단 찰나의 장면, 찰나의 메시지에 더 집중한다.
물론 초단편이라는 형식의 분량 상 깊이 있는 스토리를 면밀히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초단편이 갖고 있는 힘이 있다면 바로 '몰입'이라 생각한다. 작가는 열두 가지의 세계를 만든 후 가장 보여주고 싶은 세계의 장면을 이 짧은 지면 안에 담아냈을 것이다. 때문에 영화의 절정 장면 혹은, 결말 장면 같은 하이라이트 부분을 읽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 SF 적 사회 통찰
나는 이산화 작가가 SF를 통해 세상을 통찰하는 작가라 느꼈다. 작품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시의성에 적합한 부분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제야 비로소 형혹은 아이들이 회의 내내 전혀 겁먹지도 긴장하지도 않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중략) 전신을 덮쳐오는 이 지독한 떨림조차도 그들의 예상 범위 내였으리라. 형혹의 패배는 예정되어 있었다. 터질 듯이 고동치는 심장에 쐐기를 박듯, 최후의 승리 선언이 벌벌 떠는 패배자의 정신을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
그땐 평화가 행성들을 인도하고 - 29p

이 작품은 세대 갈등과 세대교체에 대한 공포, '요즘 애들'에 대한 공포를 다룬 작품이다. 가장 근미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지도 않을까 싶기도 했고, 공감 능력이란 소재를 필두로 두 세대 간의 대화가 박진했던 작품이다.

계절이 바뀔수록, 북반구 다음에는 남반구를 향해, 달콤한 환상은 차례차례 현실을 집어삼켜 갔다. 질병과 맞서 싸우기 위한 시스템은 맞서 싸우고픈 마음조차 들지 않는 행복이란 증상 앞에서 철저히 무력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새끼 고양이였다 - 133p

이 작품 또한 팬데믹 사태를 염두에 둔 소설이다. 사회적 고립과 팬데믹으로 인한 행복의 부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과연 '종식'이란 것이 존재할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 퓨전 SF 소설?
사소한 부분일지도 모르지만, 몇몇 작품에 한국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무기라는 소재를 이용하며 '용이 돼버린 작은 아버지', 갑작스레 용이 될지도 모르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의 이야기라든지, '밤꾀꼬리 위원회'등 이런 한국식 요소를 사용한 부분이 위트 있었다 생각한다.

🌠 이스터 에그 찾기
작품을 좀 더 재밌게 읽는 법은, 소설 한 편을 읽고 <열세 번째>에 실린 각 작품 마다의 작가 코멘트를 곁들여 읽는 것이다. 나는 이 방법을 단편 소설을 읽을 때 종종 써먹곤 하는데, 우선 아무 정보 없이 1회독을 하고 작가 코멘트를 읽고 다시 2회독을 해보는 식이다. 그럼 작품 내용이 빨리 휘발될 가능성도 적고, 다시 읽었을 때 얻는 작품의 재미도 있다.

작가의 말을 보고, 내 생각보다 숨겨진 이스터 에그가 훨씬 많았단 점에서 놀랐다. 특히 인물의 이름이나 지명, 프로젝트명 등등 사소한 것에도 의미가 있어 알고 봤을 때 흥미는 물론 유익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작가가 아는 것이 참 많구나, 싶기도 하고 이 방대한 내용을 이스터 에그화하여 한 편의 작품으로 엮어내었다는 것에도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독자로써 아쉬운 부분을 찾는다면, 공교하게도 꽁꽁 감춰둔 이스터 에그가 아닐까 싶다. 작가만큼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읽는 독자가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의미심장한 이스터에그는 SF의 입덕(?)장벽이라고도 생각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러한 세계관을 이해하려고 머리를 싸맬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열세 번째> 단편에 이스터 에그에 대한 설명이 보충되어 있기에 이러한 부분을 나름 충족해 주었다 생각하는 바이다.

사실 이런 말을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몇몇 단편이 장편화되었을 때가 기대되어서다. 이 단편을 읽고 드는 궁금증과 흥미로움을 해소 시킬 수 있는 장편! 그런 이산화 작가의 장편이 나온다면 읽을 의향이 있다. 만약 이 열두 가지 속 단편을 장편화한다면 읻다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서평을 마친다. 🙂

* 본 도서는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 넘나리 2기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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