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지음, 경찬수 옮김 / 어문학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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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가 1906년에 쓴 소설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대문호라는 수식어에 어울리게 많은 작품을 썼는데, 그중에 내가 읽어본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태풍>, <마음>, 그리고 지금 리뷰하고 있는 <도련님>까지 모두 4개다.


4가지 작품 중에서 가장 처음에 읽은 건 <마음>이다. 상당히 감명 깊게 읽었기에 다른 작품도 자연스레 찾아 읽게 됐다. 언젠가는 전집을 읽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요즘에는 바쁜 일이 많아 책을 거의 읽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도련님>을 읽게 되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처럼 유쾌한 작품이라는 말이 있어서 평소에도 굉장히 읽어보고 싶었는데 때마침 어문학사에서 이 작품을 출간한 것이다.


영국의 셰익스피어라고도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에는 비극도 있고 희극도 있다. 데뷔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익살스럽고 해학적인 작품이지만, 말년에 쓴 <마음>은 어둡고 무게가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뚜렷한 대비는 나쓰메 소세키 문학이 지닌 또다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도련님>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처럼 밝고 재밌는 작품이라고 들었는데, 어떤 내용일지 기대가 많이 됐다.


읽어보니 역시 듣던대로 상당히 유쾌하고 재밌는 작품이었다. 책 표지 뒷면에 적힌 문구처럼 이 작품은 '성장소설'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쓰여진 지는 무려 100년이 넘었지만 내용이 흥미롭기도 하고 공감이 많이 됐다. 분량도 280페이지 정도로 적은 편이라 지루함 없이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다.


줄거리


*스포일러 있음


'도련님'은 10년 동안 식모살이를 하고 있는 '기요'가 주인공을 부르는 호칭이다.


주인공은 평소 장난을 좋아하지만 강직하고 올곧은 품성을 지녔다. 기요의 표현대로 하자면 '대나무를 쪼갠' 것 같은 성격을 지닌 주인공은 앞날에 대한 계획 없이 무턱대고 학교에 들어간다. 졸업하고 난 뒤엔 시골에 있는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세상이 어떤 곳인지 체험하고, 고향인 도쿄로 돌아오게 된다.


성장 소설을 보면 시골에서 자란 주인공이 도시로 올라가서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고 차츰 성장해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도련님>은 반대로 도시에서 살던 주인공이 시골로 가서 이런저런 체험을 하게 된다. 교사로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스토리가 주인공의 강직한 성격과 우스꽝스러운 행동과 맞물려 웃음을 자아내는데, 100년 전에 쓰여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재미가 있다.


그렇다고 마냥 코믹한 것만은 아니다. 데뷔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 마찬가지지만 이 작품에는 풍자가 있다. 교장 선생님인 '너구리', 교감 선생님인 '빨간 셔츠', 그리고 동료 교사인 '멧돼지', '알랑쇠', '끝물 호박' 등을 비롯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를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풍자하고 있다. 주인공은 선생님, 학생들과 갈등을 빚다가 화해하기도 하면서 복잡한 인간 관계를 맺고 성장해나간다.


후반부에 주인공이 동료 교사와 함께 교감 선생님과 알랑쇠를 혼내주는 장면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다. 주인공은 부조리한 인간들을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해결하며 사이다를 마시는 듯한 통쾌함을 선물해준다. 마치 히어로가 악당을 물리치는 장면을 보는 기분이다.


목차


향 ━ 005

부임 ━ 029

타향 ━ 049

숙직 ━ 069

낚시 ━ 091

징계회의 ━ 115

마돈나 ━ 145

빨강셔츠 ━ 175

송별회 ━ 199

패싸움 ━ 227

귀향 ━ 251

작가 연보 ━ 282


'부임'부터 '패싸움'까지는 전부 주인공이 시골 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는 부분이다. 목차를 보면 소설이 마치 여러 에피소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마 출판사에서 독자가 읽기 쉽도록 소제목을 만들어 나눈 것 같다. 덕분에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을 쉽게 찾아 읽을 수 있다.


'작가 연보'에는 나쓰메 소세키의 생애가 적혀 있다. 작품을 한층 더 깊게 이해하려면 작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이런 작가 연보는 꽤나 도움이 된다. 연보를 읽어보니 나쓰메 소세키는 38세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쓰고 49세에 <명암>을 연재하다가 위궤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약 50년의 인생에서 작품 활동을 한 시간은 약 10년이라는 건데, 생각보다 길지 않아서 놀랐다.



페이지 곳곳에 이런 식으로 각주가 달려 있다. 번역가는 우리가 작품을 이해하기 쉽도록 쉬운 낱말로 풀이해 썼는데,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 원문의 단어를 각주에 실어놓았다. 작품을 읽는 데에 약간 거슬릴 수 있지만, 이를 통해 일본 근대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고, 우리말로 번역된 문장을 원문의 내용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으니 좋다.


셰익스피어의 문학이 높게 평가 받는 또다른 이유는 16~17세기 영국의 시대상이 잘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에는 격변하는 근대 일본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전통이 유지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근대화로 인한 서양적 가치관과 생활 방식이 공존하는 일본 사회의 모습이 작품 속에 잘 반영되어 있다. 이것만으로도 나쓰메 소세키 문학이 지닌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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