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차가운 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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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다 읽은 후 느껴졌던 공허함과 우울함은 쉬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이 책에서는 자신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고 세상을 살아가며, 남을 대하는 나와 진짜 나 사이의 괴리감이 메울 수 없을 만큼 커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 -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처럼 이 책에서 묘사된 그녀들의 불행은 제각기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처(또는 진실)를 감추기 위해 다른 모습으로 껍데기를 두껍게 키워갔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왜 에 집중 하였을까. 작가가 말했듯 손을 관찰하면 그 사람이 감춰버린 일부를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쉽게 노출되면서도 쉽게 지나치는 것이 사람의 손이다. 마주잡은 손에서 그 사람의 온기를 느끼기도 하고, 그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기도 한다. 잡은 손에서 온기가 느껴질 때 그 사람은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듯 손은 누군가의 마음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생각되어져 왔다. 이러한 손은 작중의 인물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고 철저하게 감춰야만 했던 고통스런 치부이기도 했다. 자신의 내면이 고통의 심연에 빠질수록, 자신을 감출수록 그들의 손은 차갑게 변했다.


 장운형이 다른 사람들의 껍데기를 보고, 본뜨고, 벗겨내면서 느꼈던 수많은 감정과, 감춰졌던 내면을 끄집어 내야했던 그녀들의 모습들은 처절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를 깨부숨으로써 그들은 감정의 자유를 느꼈다. 이 장면을 통해 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내 모습도 되돌아봐야 한다고 느꼈다. 어쩌면 내가 마주해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민낯이 아니라 내가 감춰버린 나의 참모습이 아닐까. 다른 사람의 시선이 주는 잔인함을 피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사는지 생각했다. 내 삶의 주체적인 역할보다 남들에게 보여 지는 나를 더 신경 쓰느라 진정한 자아를 감추고 사는 건 아닌지 돌아보았다.


사람들은 때론 누군가의 내면을 보기 보다는 외면에서 그 사람을 찾곤 한다. 그것은 아마 한국 특유의 사회적인 분위기도 한 몫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민감하고 겉모습만으로 쉽게 누군가를 판단하려 든다. 그래서 내면보다 외면을 더 갖추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며 산다. 내면이 텅 비고 황폐해져 갈수록 껍데기는 더 단단해진다. 보편적으로 껍데기가 둘러싸고 있는 내용물은 깨지기 쉬운 연약함을 지녔다. 하지만 내면의 단단함을 키우지 않으면 언젠가 부서지고 산산조각 난다. 장운형의 아버지가 어린 그에게 해준 말처럼 남들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신은 속일 수 없다. 사람들은 껍데기 속에 자신을 감추지만 자기 자신마저 속일 수는 없기에 마음 속 곯은 염증은 커져간다.

 

 라이프 캐스팅을 통해 그들이 느꼈던 고통은 석고가 굳으면서 느껴지는 뜨거움 보다 점차 사라져갔던 자신을 마주하는 슬픔이 더 컸으리라. 어떤 모양으로든 자신을 감춘 채 살아가야 했던 그녀들의 삶을 보여주는 손. 그리고 이를 본 뜬 석고들을 보며 느꼈을 그녀들의 아픔. 그 고통은 타인들이 줬던 해악에서부터 시작된 악몽 같은 나날이었다. 이러한 그녀들의 심리상태와 자신들의 껍데기를 통해서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은 한강 작가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문체로 묘사 되었다. 섬세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체가 오히려 그들의 아픔을 극대화 시켰다. 그래서 읽는 내내 빠르게 읽히면서도 가슴 한편이 아리고 무거웠다.


 그는 왜 라이프 캐스팅을 통해서 사람들의 외형을 떴을까 생각했다. 겉모습을 통해 보이는 모습이 다 진실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일까. 맨 처음에는 그의 부모님처럼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서 그들을 들여다보길 원한다고 생각했다. 본디 특정 고통을 경험한 자는 비슷한 고통을 가진 자를 쉽게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껍데기를 뜯어냄으로써 그들의 감춰진 모습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감응한 공허함이 그에게 투영된 것이다. 그는 그들의 상처를 통해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껍데기 속 텅 빈 허허로운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불규칙한 모습을 깨부숨으로써 참된 자아를 찾고자 했던, 진실과 거짓의 모호한 경계 속에 살았던 그들처럼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감정을 도려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남들은 지나친 아니면 무관심한 껍데기 속 그녀들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온기 없는 손길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사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는 사라지고 그들에게 가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나를 들어낼 수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글을 읽는 내내 마치 내가 그녀의 손을 잡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살아온 삶의 무게가, 그 차디찬 냉기가 손을 타고 내 마음에 전달되었다. 그녀들의 삶과는 다른 형태였지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써왔던 나의 삶에 조금의 변화를 준 소설이다. 이 책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서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했던 지난날과 달리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나로써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마주잡은 내 손이 따뜻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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