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현대지성 클래식 33
토머스 모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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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하건대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려면 저자가 16세기 초반 전제군주제 하에 살던 귀족 신분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귀족주의와 제국주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서 그가 말하는 평등에는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고 21세기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에 살고 있는 나로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기에 넓은 마음으로 모어의 이상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음을 고백한다.

이상향, 이상적인 국가를 뜻하는 유토피아에 대해 엄청난 기대감을 가진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아마도 저자가 생각하는 것과 내가 생각하는 이상에 많은 차이가 있었으리라.

모어는 본인이 상상한 유토피아가 독재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이 책에 나오는 유토피아는 충분히 독재적이다.

유토피아에는 왕이 없고 하루 이내에 오갈 수 있는 비슷한 크기의 도시로 이루어진 섬나라이다. 단순히 사회적인 내용만 담겨있을거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아주 세세하게 지형이나 나라의 크기에 대해서도 설명이 되어있어 놀라웠다.

시장직은 투표로 선출하지만 한번 시장직을 맡으면 독재를 저지르지 않는 한은 평생!! 시장직을 맡게 된다. (이게 왕이랑 뭐가 다르죠, 모어 선생?) 유토피아 전체의 일을 해결하려면 각 시장이 모여 회의를 해서 일을 처리한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는 "왕"의 자리가 없다는 것이 유토피아를 이상적인 국가로 포장하기에 좋았는지는 모르겠다. 유토피아에서의 평등은 공유경제,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평등을 뜻한다. 필요한 물픔은 가주가 시장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만큼 어떤 화폐로도 지불하지 않고 가져오면 된다. 한마디로 필요한 그 이상은 갖지 말라는 소리다. 6시간 만 일해도 충분하다는 의미는 딱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게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유토피아에 살려면 욕심내선 안된다. 생산되는 원단 내에서 옷을 집에서 지어 입어야 한다. 나처럼 자본주의에 물들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옷을 깔별로 갖는다거나 좋아하는 화장품을 색상별로 구비해놓는 행위는 있을 수가 없다. 옷 한두벌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정해버리니 말 다했지 뭐.

유토피아에서는 노예가 있기에 분명히 계급사회이다. 평등..이라는 단어가 과연 어울리는 사회일지 모르겠다. 노예는 전쟁 포로나 범죄를 저질러서 노예로 신분강등된 사람들이다. 가장 힘들고 위험한 일은 노예가 도맡아한다. 무엇이 평등인가..? 이미 신분이 다름으로 인해 하는 일이 다르고 노동 강도마저 다른 것부터가 평등하지 않다. 범죄자를 노예처럼 부리며 노동시킬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 사람에겐 노예의 체벌권도 함께 주어진다. 죄 지었으면 평민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맞으면서 해야한다는 소리다. 이상적인 국가 유토피아에서는. 범죄를 지은 것에 대한 징벌을 목적으로 강도 높은 노동을 해야한다는 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사람이 사람을 때려도 된다는 생각은 저자가 귀족이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발상인 것인지 21세기의 나란 사람은 거부감이 든다.

모든 사람이 6시간 노동을 해야한다면서 노동에서 열외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여기에서 저자의 흑심을 보았다. 나같은 학자들은 일 안해도 돼~ 라는.

유토피아에서는 나태한 것을 싫어한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만큼만 노동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강좌를 듣고 독서하며 평생 자기계발을 하며 살아간다. 피곤해서 이불 속에서 뒹구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 여행을 갈 때는 허가증을 얻어야 가능하고 여행을 하더라도 타도시에서 하루 이상을 체류하게 되면 그 도시에서 일을 해야한다. 이게 무슨 여행인가요, 모어 선생...? 요즘 세상에서는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 가 대세에요.

허가증 없이 거주지에서 이탈하면 도망노예 취급을 받는다. 웁스...;;

가장 이해가 안갔던 부분은, 인구가 늘어나면 늘어난 만큼 다른 나라로 개척하도록 보낸다. 원주민이 있건 말건 개척 나가서 원주민이 호의적이면 같이 살고 거부하면 원주민을 쫓아낸다. 이 무슨 제국주의적인 망발인가...!! 부들부들.... 거기 니네 땅 아니잖아악!!!

모어가 생각한 유토피아의 전제는 자유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니다. 내가 보기엔 사회주의에 가깝다. 볼수록 북한이 생각난 것은 나 뿐인가? 그곳에서 살려는 사람은 욕심이 없어야 하고 취향도 없어야 한다. 어딘가에 종속되어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한 것인가? 행복은 개개인마다 다른데 행복의 정도와 크기를 한 사람의 개인이 재단하여 맞추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캐시미어와 모직코트가 뭐가 다른지 모르는 사람이 말하는 공정함은 그냥 빈껍데기일 뿐이다. 당신이 안 짜보고 안 만들어봐서 그 차이를 모르는거다.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란 뜻은 절대 아니다. 다만 정의와 공정을 외치면서 속을 들여다보면 권한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이런 세상은 왕만 없을 뿐, 권한을 누리는 기득권자는 그대로 있는 세상인데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런 세상이 유토피아(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세상)여서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진정 평화롭고 평등하면서 공정한 사회가 과연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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