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 1 대산세계문학총서 21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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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도교를 사상적 배경으로 깔고 권선징악적 요소를 가미한 본격적인 신마(神魔)소설이다. 신마소설이란 신화적인 요소를 기본으로 온갖 마귀들을 등장시키면서 그들을 하나하나 퇴치해나가는 형식의 소설, 오늘날 판타지 소설의 원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서유기(西遊記)라는 책은 저자가 명나라 시대의 오승은(1500 ~ 1582)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그의 시대에 와서 집대성한 것이라고 하여야 맞다. 서유기의 내용은 크게 삼장법사의 역사적인 사실에 기초를 두고 거기에 중국과 인도의 설화와 민담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가미된 것이다.

이 책은 총 100개의 이야기를 한 권당 10편씩 넣어 10권짜리로 만든 대하소설이다. 무려 4000쪽에 달하는 원체 방대한 이야기인지라 어떻게 짧게 요약해서 책을 소개할 방법이 없어 서울대 중문과 성민엽 교수님께서 아주 간략하게 평한 내용을 소개하여 본다.

“<서유기>는 동양적 판타지와 동양적 상상력의 집대성이자 새로운 원천이다. ..3교와 그 이전 고대의 신화와 전설이 모두 이 소설에 녹아들었고, 훗날의 수많은 문학적 상상력이 이 소설로부터 흘러나왔다. 이 소설의 놀라운 환상과 상상은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조소와 맞물려 있고, 인간의 마음과 욕망에 대한 깊은 성찰과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이 책에는 한 명의 주인공과 세 명의 조연이 나온다. 주인공은 손오공이라는 원숭이인데 그는 하늘나라에서 옥황상제의 신임을 받던 중 지나친 장난질로 인하여 지상세계로 쫓겨 온 인물이다. 1권의 제4필마온의 벼슬이 어찌 그 욕심에 흡족하랴, 이름은 제천대성에 올랐어도 마음은 편치 못하다라는 제목의 이야기에서 손오공은 옥황상제가 자신에게 부여한 필마온이라는 말을 돌보는 직책이 영 성에 차지 않아 하늘나라에서 난장판을 벌이고 그 벌로 지상 세계로 쫓겨 내려온다. 9진광예는 부임 도중에 횡액을 당하고, 그 아들 강류승은 아비의 원수를 갚고 근본을 되찾다라는 제목의 이야기에서는 삼장법사의 탄생설화가 아주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실존 인물인 삼장법사의 이야기는 이렇다. 세상에는 사악한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석가여래는 사람들에게 착한 성품을 되찾아 주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깨달음의 책인 불경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관음보살에게 명하여 천축국으로 불경을 구하러 올 사람을 찾아보라고 명한다. 관음보살이 점찍어 두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승려 진현장이었다. 이 책은 결국 삼장법사라는 진현장이 당태종의 명을 받들어 그를 수행하는 세 명의 종자,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를 데리고 17년 간 27개국을 통과하여 마침내 불경 657부를 구해 온다는 이야기이다. 그들이 주유한 나라들을 현대의 지명으로 살펴보자면 둔황 - 키르키르스탄 - 우즈베키스탄 - 투르크메니스탄 - 아프가니스탄 - 인도로 이어진다. 그들이 넘어야 했던 험지들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비롯하여 힌두쿠시 산맥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무려 100회에 걸쳐 이런 저런 요괴들을 만나고 수난을 당하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중 6권의 제54회에 서쪽으로 들어선 삼장 법사는 여인국에 봉착하고, 손오공은 계략을 세워 여난(女難)에서 벗어나다라는 제목의 이야기는 마치 그리스신화에서 여인국인 아마조네스 이야기를 읽는 것만 같다. 온 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여자들뿐이니 오랜 기간 여행에 지친 일행에게는 얼마나 기쁜 일인가. 기어이 저팔계가 스승에게 청혼하러 온 여인국 여왕을 자신이 차지하겠다고 나서다 퇴짜 맞는 장면이다. 그러자 저팔계는 그럴듯한 속담을 내세워 자신이 적임자임을 주장한다.

당신 아주 벽창호로군. 굵다란 버들가지로는 키를 만들고, 가느다란 버들가지로는 됫박을 만든어 쓰니, 도구의 쓰임새는 저마다 달라도 똑같은 버드나무요, 이 세상에 제아무리 추접하게 생겼어도 사내는 사내가 아닌가.”

이처럼 이 책에는 이런 저런 속담이나 고상성어가 수백 개도 더 나온다. 마치 <돈키호테>에서 산초 빤사의 유식함을 보는 것만 같다.

저팔계도 손오공과 마찬가지로 동물, 인간, 신령의 세 가지 형상이 교묘하게 융합된 인물이다. 비곗살이 찐 장대한 모습, 커다란 두 뒤에 비죽 나온 주둥이, 굼뜨고 우둔한 동작은 돼지를 형상화하였지만, 그 역시도 찬상에서 은하수를 다스리는 수군 제독인 천봉원수였다. 또 다른 등장인물인 사오정은 손오공이나 저팔계처럼 그렇게 뚜렷한 형상은 없지만 두 사형 사이에서 적절하게 의견조율을 해주고 충돌을 막아주는 해결사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손오공이다. 제천대성, 미후왕 또는 필마온이라고도 불리고 스스로를 손선생이라고 칭하는 손오공은 고비 고비마다 그 위기를 둔갑술과 온갖 도술을 부리고 여의봉을 자유자재로 휘둘러가며 온갖 마귀들을 물리친다. 손오공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까닭은 천국과 지옥의 모든 우두머리들이 다 자기의 친구들이거나 부하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용궁의 대장들도 손오공에게는 다 머리를 조아린다. 그렇기에 그 수많은 마왕들과 잡귀들이 삼장법사 일행을 잡아먹으려고 하나 번번이 실패하는 것이다.

이 책에 수없이 많은 마귀와 귀신들이 등장하는 것은 당시의 시대상과도 맞물려 있다는 해석이다. 온갖 종류의 마귀들이 유린과 수탈을 하며 잔혹하게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은 당시 관에서 백성들을 못살게 굴던 시대상을 반영하였다는 평가이다. 책에서 통천하의 영감대왕이 동남동녀들을 제물로 받아들이는 이야기, 청룡산의 코뿔소 요정들이 지방 관민을 핍박하고 막대한 재물을 수탈하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또한 원시인들은 만물에는 영혼이 있다라는 사상을 가졌는데, 그 결과 천둥과 벼락에서는 뇌신을, 밤과 낮, 여름과 겨울의 교체에서는 촉룡(燭龍)이라는 괴물을, 그리고 모래바람에서는 황풍괴라는 마귀를, 살구나무 선녀는 나무숲의 화신으로, 불이나 물로 인한 재난은 화덕장군과 수덕장군이라는 요괴로 둔갑시켜 일반 백성들의 환상을 충족시켜 준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주인공의 성격 설정이 재미있다. 삼장법사는 전체를 이끄는 리더이지만 성격이 우유부단하고 나약하다. 그래서 손오공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핀잔을 듣는다. 그의 인생철학은 착한 일은 아무리 해도 부족하고, 악한 일은 한 번만 저질로도 차고 넘친다라는 유교적 관념으로 설명된다. 그런 사부님을 손오공은 흑백을 가리지 못하는 아둔한 사람정도로 평가하며 시시때때로 그를 조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장법사는 조직의 우두머리로서 온갖 난관에도 물러서지 않는 굳센 의지, 불경을 얻지 못하면 죽더라도 귀국하지 않겠다는 집념, 불교의 계율을 엄격히 지키려고 하는 승려로서의 자세로 손오공을 비롯한 세 명의 부하들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무능하고 우유부단할 것만 같은 삼장법사에게도 말썽꾸러기 손오공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긴고주라는 주문이다. 삼장법사가 그 주문만 외우면 손오공의 머리통 위에 씌어져 있는 금테가 바짝 조여져서 손오공은 그 고통으로 땅바닥에 데굴데굴 굴러야만 하는 것이다.

이 책의 묘미는 단연 주인공 손오공의 통쾌한 활약상에 있다고 하겠다. 단순에 108천리를 날아가는 근두운, 말 한마디에 귀 쑤시개 정도 크기에서 천하장사라도 들기 힘들 정도의 육중한 철봉으로 바뀌는 여의봉, 꿀벌로도 바뀌고 파리로도 변신할 수 있는 만능변신의 재주, 이런 것들을 무기 삼아 그 머나먼 서역 길의 온갖 마귀들을 물리치는 손오공의 활약상은 천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이 책이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는 근본 요소이다.

번역도 최고다. 무려 4천 쪽이나 되는 대하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군데도 오자를 찾을 수가 없다. 2백만부가 팔렸다는 이문열 삼국지에서도 틀린 곳이 서너 군데 있는데, 이 책은 아주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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