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제도와 연극읽기
안치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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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극의 지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내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며, 한국의 관객 중에 하나인 나에게 많은 부끄러움과 반성의 기회를 주었다. 한국 연극의 위기에 대하여 저자는 연출과 배우의 부제 같은 연극 안의 문제 뿐만 아니라 자본의 유입이라는 연극 밖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연극 동네에서 연극 시장으로의 변화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으며 자본의 논리가 활개 칠수록 전문성과 자존심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정적 예로 지금 한국에서의 ‘미국식’ 뮤직컬의 확대로 인해 이어지는 관객을 보다 빠른 속도로 즐겁게 해주는 자본주의 논리의 실현으로써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한 장르로의 뮤직컬의 성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자본의 유혹에 넘어간 연극은 결국 오토그라피의 예술로써 진전한 연극의 부제를 걱정하는 따끔한 충고를 하고 있다. 과연 뮤직컬은 연극을 위해 없어져야 하는 것일까?

이 책 안에서 ‘진지한 연극’ 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나오고 있지는 않으나 진지한 ‘순간의 제국’ 이며 떠돌이 예술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결국 이것은 피터 브룩이 ‘열린 문’을 쓰기까지 여러 실험을 거쳐 탐구하여 얻은 ‘빈공간’에서 벌어지는 압축된 삶의 진한 강도를 발견할 수 있는 그 무엇과 같은 의미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연극과 함께도, 연극 없이도” 는 사람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했거나 가보려 하지 않았던 ; 관객에게 문화적 수준의 작품을 무리하게 이해 시키려 하지 않고 삶이 출현 할 수 있는 빈공간에서 완성된 연극을 할 수 있도록하는 한국 연극은 앞으로 스폰서십 또는 상업성조차 계몽하는 힘을 가진전문성을 바탕에 둔 자존심을 가져야 할 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말했던 자본주의 논리의 결과로 만들어진 미국식 뮤직컬은 전체 뮤직컬을 뜻한 다기 보다는 진지함,전문성,자존심을 잃어 버린 연극으로써의 뮤직컬을 뜻하며 ‘미국식’ 이라는 단어가 가진 고민 없이 ‘복제한’ 것을 뜻함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모두 살아있는 연극을 하기 위한 진지한 성찰을 관객,배우,연출자,비평가 등에게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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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의 몰락 - 기업의 문화 지배와 교양 문화의 종말
모리스 버만 지음, 심현식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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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THE TWILIGHT OF AMERICAN CULTURE”인 이 책은 번역된 제목의 “몰락” 이란 단어 때문에 미국의 강력한 영향권에 살고 있거나, 미국에 대해 반감을 가진 사람들 또는 21세기로 넘어오면서 미국의 패권주의등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 또는 미국을 생각 없이 흉내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조차 매력적으로 들리는 번역제목을 택했다는 점은 저자인 모리스 버만 이 경계심을 가지고 적대적으로 비판한 기업의 상업주의에서 결코 이 책도 자유롭지 않다.라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저자가 말한 시장 상업주의 안에서 인간은 맹목적인 소비자로써 전락하고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을 경험 하도록 하였다.

책의 부제를 보면 “기업의 문화 지배와 교양 문화의 종말” 이라는 섬뜩한 예언은 이념이 지배하던 세상이 90년대에 끝난 후 지속적으로 학자들이 미래에 대해 경고를 하고 있는 주제와 같다고 볼 수 있지만 저자는 비참한 '몰락'의 징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인용된 예문과 조사한 결과들은 대부분 미국에 맞춰져 있으며, 저자는 미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으로 굳혀지고 결국 지구상의 어떤 사회도 이 징후는 나타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여러 부분에서 나오고 있어 다소 불쾌하기도 했지만 또 부정할 수도 없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21세기를 ‘미국화 된 세기’ 로 묘사한 점과 로마제국의 멸망과 비교한 부분 그리고 문명의 죽음과 관련시켜 “미국화”는 “21세기의 문명”이며 모든 다른 문명과 마찬가지로 언제가 는 죽음에 이른다. 로 까지 확대하는 저자의 거슬리는 자부심 등이 그러한 부분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미국 문화가 몰락하고 있으며 이 현상은 ‘미국화 된 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문명 몰락의 4대 요인

- 사회경제적 인 불평등의 가속화
- 사회경제적 문제를 사회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한 비용투자에 따른 한계이익의 감소
- 비판적 사고,전체적인 지적 의식 수준 등의 급격한 저하와 문맹률의 확산
- 정신적인 죽음,다시 말하면 슈펭글러의 고전주의를 말한다. 문화의 실질적인 내용이 사라지는 대신 이것이 저급한 수준으로 떨어뜨리거나 재가공 하여 내놓는 것을 의미

위의 항목은 저자가 밝힌 몰락의 요소들이이며 어떤 것은 한국사회에서도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도 있다. 즉,불평등의 가속화는 일어나고 있지만 두 번째 항목의 실례인 “사회보장제도”는 이제 첫 걸음(비슷한 위험을 가지고 불안한 출발을 하고 있으나)을 하고 있다.

세 번째는 전반적으로 고학력 실업이 문제되고 있는 시점 한국사회에서는 현재는 큰 걱정이 필요 없다고 볼 수 있다. (비판적 사고,전체적인 지적 의식 수준 저하의 문제에서 ‘지성적인 시민들은 아무런 진지한 생각 없이 살아가는 소비자들로 대체되고 말았고 사회 전반의 지적 수준은 낮아 졌다’ 라는 대목은 한국 사회에서도 점점 증가되는 우려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네 번째인 소비문화와 정신적인 죽음에서 다룬 대학,미디어,기업,문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한국이 지금 모든 노력을 기울여 지향하고 있는 정점에 도달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미리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흥미를 주었다.

제1장 만을 놓고 본다면 몰락이 운명이라고 생각될지 모르나 책을 읽어 보면 저자처럼 거침없는 비판의 내용을 담은 글이 출판되며, 기업문화의 보호를 받으며 실제로는 어리석으나 상품으로 조작된 대중 영웅의 반감을 사더라도 집요하게 영웅의 진실을 들추어 내려는 의도를 담은 책들이 출판되고, 논의 되는 미국은 아직도 건강한것으로 생각된다.
책의 말미의 수도사적인 해법;개인의 실천으로 얻어지는 문화재건,회복 운동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에는 찬성 할 수 없으나(강력한 기업문화에 맞서는 것은 개인만으로는 힘들 것이다. 사회적,제도적인 캠페인과 병행되지 않는다면) 작은 것부터 실천하면 조금씩 변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미래를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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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무 6 - 완결
김혜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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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이 작품은 벌써 전설이 되어있었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전 저녁밥 시간을 쪼개서 학교 뒷문을 빠져나와, 조용히 '혼자' 지하 만화방 을 가게 되었다. 1권을 보고 '쿵쿵쿵' 뛰던 가슴을 쓰러내리면서,이런 재미는 오래 끄는 것이 단조로운 학교 생활에서 그나마 활력제가 되리라는 생각을 했던것이 였는지, 아니면 너무 재미있어 두고두고 아껴보자라는 단순한 계산 때문에 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하루에 한권씩만 읽고 나가는 나를 쳐다보던 만방 아저씨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후에 대학에 입학 하자마자 전권을 사서 집에다 모셔놓은 이 작품은 나이가 들수록 재미가 늘어가는 만화중에 하나이다. 아마도 김혜린님의 작품의 주인공들을 보며 내안에 쌓여만 가는 세속의 찌든 때를 한순간 일지라도 벗겨 낼수 있기 때문일까? ...곧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 김혜린님의 만화는 모두가 주인공이며 또 동시에 주인공이 아니다. 조연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해질 정도로 모든 인물의,그리고평범한 이들이 가진 작은힘과 소박한 아름다움을 전작품에 걸쳐 가장 비중있게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비천무에서도 물론 그렇고 그분 작품의 인물들은 함께하는 시간이 길지 않다. 그러나 아쉬움이 큰 만큼 서로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그리움 그리고 깊은 이해가 이야기의 주요한 테마이다. ...그리고 곧은 마음을 가져 늘 외로운... 비록 비천무의 배경이 현재와는 거리가 먼 옛날이지만 당시 사람들도 말못할 마음의 속내를 가졌던 것과 같이 오늘을사는 우리도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멘트를 들으며 자조적 웃음 짓고 있기에,지구의 한편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작품의 생명력은 아직 유효하다.

하지만 이런 씁쓸한 절망만이 있는것일까? 대부분의 주요 등장인물이 죽기 때문에 비극이라고 쉽게 생각 할 수도 있지만 항상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희망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것은 어쩌면 모든 은원과 번뇌를 벗어던지고 많은 아픔 속에서도 살아남아 참 사람의 길을 걷게 된'살아 남아 있는 자'의 다짐속에서 망각하지 않고 용서하는 길, 그리고 체념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길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진하와 설리..그리고 비천무에 나오는 사람들 모두 내게는 소중한 마음의 벗님들이다.

[비천무:飛天舞-하늘을 오르는 춤]이 제목은 무협의 세계를 배경으로 해서인지 무술이름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 여주인공이 춤을 추는 장면이 나와서 춤이름으로 생각 되어 지기도 하지만 이 제목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은것은 john bunyan의 [천로역정:天路歷程]이 담고 있는 순례자의 멀고도 험한 길과 그 끝이 닿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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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속에 10 - 완결
강경옥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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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별빛속에를 생각하면 가슴에 무엇인가 차오르는 것같고 별을 보고싶은 기분이 든다. 인간과 신의 의지는 과연 양립될수 있는가? 신에게 의지가 있다면 인간은 의지를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는게 아닐까? 자신은 힘으로 정해지는게 운명이아니라면 우리는 고민하며 선택할필요가 없지 않을까?.....그러하더라도 난 내가 이 삶을 선택했다고 믿는다...그리고 도망치지지 않는다. 신이 정해줘서가 아니라 나의 의지로..

시이라젠느, 그녀의 성역에서의 모든 말은 내가 그당시 가지고 있던 삶에대한 의문을 나대신 신에게 물었고 나와 똑같은 해답을 얻었다. 그리고 인간에대한 믿음을 다시 불러일으켜줬다.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이며 우리의 의지야말로 신의 뜻! 이 만화는 어쩌면 말초적인 곳에 호소할수 밖에 없는 만화의 한계를 뛰어넘어 생각을 그리고 표현하는 곳으로 영역을 넓힌 작품으로 나에게는 기억된다. 물론 최초의 SF러브로망이라 불리워도 사랑을 빼면 아무것도 갖지 못해던 다른 만화의 여자 주인공의 불운한 길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시이라젠느.. 그리고 카피온의 사람들...지구의 사람들..

별빛속에.. 이 제목을 기억하는 모든들에게.. 언제나 행복이 함께하길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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