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이 그랬어 트리플 1
박서련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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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작가들의 글을 읽기란 쉽지 않다. 마치 옷을 사러 가서 항상 비슷한 스타일의 옷만 사듯 책도 비슷한 장르의 책만 사게 된다. 우연한 기회로 자음과 모음 서평단을 하면서 다양한 책들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은 자음과 모음에서 기획한 <트리플> 시리즈 중 하나인 <<호르몬이 그랬어>>이다. 


일반적인 소설은 책으로 나오기까지 많은 노력이 들고, 그렇기 때문에 작품으로 만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다양한 관점에서 검토하고 다듬는 동안 완성도는 높아지겠지만 다양한 시도를 하기는 제약이 있다. <트리플> 시리즈는 한 작가의 세편의 소설을 하나로 묶어서 내는 형식이다. 작가는 일반적인 소설에서 시도할 수 없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으며 독자 또한 작가들의 이러한 시도를 바로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호르몬이 그랬어>>는 박서련 작가의 <트리플>이다. 박서련 작가는 <<체공녀 강주룡>>으로 23회 한겨레 문화상을 받았다. 이  책은 "1931년 평양 평원 고무 공장 파업을 주도하며 을밀대 지붕에 올라 우리나라 최초로 '고공 농성'을 벌였던 여성 노동자 강주룡의 일생을 그린 전기 소설"이라고 한다. 박서련 작가의 기존 작을 읽지 못한 채 이 책을 읽게 되어서 작가가 어떤 면에서 현재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했는지 정확히 포착하지는 못했지만, 수록된 세 권에 책에 대한 작가의 에세이가 뒤편에 수록되어 있어서,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이 글을 쓰고 현재 바라보는지 엿볼 수 있었다.


수록된 세 글은 2008년, 작가가 20대 때 쓴 소설이다. 20대스러운 혼돈과 방황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기억 저편에 있던 나의 20대의 혼돈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소설은 주인공들의 정체성과 혼돈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겪는 세상의 모습을 차갑고 무겁게 그려낸다. 그들은 그저 반항하고 이유 없이 방황하는 20대가 아니다. 주인공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주어진 책임을 다하려 한다. 그들을 힘들게 하는 건 그들이 말하는 "호르몬"이 아니라 세상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최선을 다해 돈을 벌어도 무덤 같은 방에 누워 살다 연탄가스에 중독되어서 죽기도 하고, 아르바이트하다 갑자기 잘려서 집에 있을 수밖에 없다가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받은 연인에게 불려 가 결혼 소식을 듣게 되기도 한다. 


여러 단편 중 이 책의 제목과 같은 <<호르몬이 그랬어>>는 그런 20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백수에 남자 친구에게까지 차인 상태다. 어느 날 자신을 찬 남자 친구가 갑자기 자신을 불러내어 호텔 레스토랑에서 밥을 사주면서 결혼한다고 말한다. 그 짜증 나고 치욕적인 사건을 겪고 나서 엄마의 열 살 이상 연하의 남자 친구에게 만나자고 하고 술을 마신다. 술이 만취해서 잠을 깼는데, 엄마의 남자 친구의 아들의 침대에서 자신이 자고 있었고, 하필 생리가 터져서 침대에 얼룩을 남기고 말았다. 그 자리에 주인공은 "호르몬이 그랬어."라는 메모를 남긴다.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생기는 그 미묘하고 불편함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무엇인가 어긋나 있고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낮아지고, 불만이 가득 찬 그 불안 불안한 감정들. 어쩌면 20대의 그 불안함이 생리 전 호르몬이 가져다주는 불안감과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생리가 시작하면, 혹은 끝나면 안정된 상태로 돌아오고, 그때서야 지난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가 조금 예민했었음을 깨닫게 되는... 자연스럽고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누구는 예민하게 겪고 누구는 오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는 그 사이클을 호르몬에 빗댄 작가의 센스에 감탄한다. 


자신을 둘러싼, 그리고 인상 깊었던 내용들이 글에 투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작가의 글을 보면 작가는 가난한 줄 모르다 20대가 되어서 자신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주인공들의 삶은 팍팍하다. 이런 경험들과 인식이 <<체공녀 강주룡>>이란 소설을 쓰게 하는 바탕이 된 걸지도 모르겠다. 


학부 때 계절학기로 대본 쓰기 수업을 들었었다. 유명한 영화감독이 수업을 했었던 것 같다. 시나리오를 써서 제출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나는 당시 내가 직면했던 죽음에 대한 글을 썼다. 20대에 들어서자마자 나에게 가장 소중한 외할머니를 잃었고,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몇 년 후 가깝지 않은 친척의 사고로 인한 뇌사 판정 소식과 장기이식 소식을 들었다. 키우려고 데려온 강아지가 하루아침에 장염으로 죽었고, 키우던 개도 장염이 옮아서 죽었다. 한 순간에 생명이 그렇게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자 온통 세상은 죽음으로 가득 차 보였었다. 내 시나리오를 보고 감독님은 20대가 소화하기에 죽음은 너무 무겁다고 했다. 아마 교수님은 20대만이 가질 수 있는 생기발랄함과 도발적인 글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세상은 어둡고 어두웠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나이가 따로 있을까? 하지만 당시 나는 무거운, 20대의 생기가 하나도 없는 어두 칙칙한 내 글을 부끄러워했다. 


그런 기억 때문일까? 자신의 기억과 인상들을 기록을 넘어서서 현실과 상상을 포개어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모든 작가들의 능력에 항상 부러움과 감탄을 동시에 느낀다. 또 다른 부러움을 느낄 다음 작가의 트리플 시리즈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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