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림 : 초 단위의 동물 ㅣ 림LIM 젊은 작가 소설집 2
김병운 외 지음, 민가경 해설 / 열림원 / 2023년 10월
평점 :
서평단으로 신청했지만 진짜 넘 좋은 읽기 경험이었다.
일단 네 작품을 꼽아 봤다. 첫 번째로 김병운의 「오프닝 나이트」. 읽는 내내... 이렇게 지금 여기의 작가의 윤리를 세련되고 또 전복적으로 다룰 수 있구나 감탄했다. 소설은 그간 거의 읽지 않아 유일하게 떠오르는 비교할 만한 작품은 이미상의 「이중 작가 초롱」. “(타자의) 삶을 선취해보려는 글쓰기”에 대해 이중 작가 초롱에서는 문단 시스템과 SNS 시대의 대 조리돌림 시스템을 근간으로 풀어나간다면, 오프닝 나이트에서는 퀴어니스 그 중에서도 성적 대상화의 문제로 답변을 시도한다. 근데 취향적으로도 그렇고 보다 전복적인 것은 나이트였다. 스포라서 이것만 얘기하자면 아니... “바텀이세요?”가 그토록 대상화적이면서 탈대상화일수 있다니. ㅋㅋㅋㅋ 여기서 확장될 이야기가 너무 많다... 어떤 장르든 간에 쓰는 사람이라면 강추드립니다.⠀
⠀
두 번째로는 서이제의 「초 단위의 동물」. 작가는 독자를 번아웃에 시달리는 스타트업 직장인의 시간에서 별안간 흐물흐물, 연체동물적인 시간으로 훌쩍 데려놓는데 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절전모드로 삶을 이어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선사하는, 꾸물댐의 시공간. 전혀 권태롭지 않은. 다만 나는 이 시공간이 좀 더 징그럽고 점액질로 뒹굴게 만들었다면 더 좋았겠다.⠀
⠀
세 번째로는 안윤의 「핀 홀」. “내 앞에 나타난 이 구멍들은 무엇으로 이어야 해?”라는, 지금 이 세계에서 우리가 잘 외면하고 있다고 믿는 일들의 봉제선을 튿겨 보인다. 말아 두고 구석에 던져버린 양말뭉치들이 살아 움직이게 하는... 읽기 전으로 되돌아가기 힘든 이야기.⠀
⠀
마지막으로는 최추영의 「무심과 영원」. 사람과 유사 사람(인형) 사이, 대여와 소유 사이, 교제와 비(比)교제 사이... 이런 존재 방식으로밖에/이런 방식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삶들에게 제시하는 이야기. 단단하게 합의된 약속으로 내놓은 기성품같은 개념을 떼어낸 자리에, 오직 묶어주는 것은 기나긴 문장을 쓰는 것이라는 위안을 준다. 행간마다 도복 사이에서 물씬 풍기는 여름 냄새 때문에라도... 이건 겨울에 읽어야 합니다.⠀
⠀
이외에도 언급하지 못한 단편이 많지만... 넘 잘 읽었습니다(밑둥 얼룩은 귤 까 먹으면서 읽다가 ㅜ 물들었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