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불통 송강평전
박영주 지음 / 고요아침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인간은 누구나 출생과 죽음이라는 유한적 괄호 안에서 존재의 의미를 갖는 까닭에, 한 인간의 일생은 하나의 완결된 텍스트로 재구성될 개연성을 갖는다. 그렇게 재구성된 텍스트는 시간율에 강하게 견인되는 특성을 보이면서 흔히 전기(傳記)라는 서술물로 제시된다.

여기 송강 정철이라는 한 인물의 평전이 있다. <고집불통 송강평전>(고요아침), 도도히 흐르는 깊고 푸른 강물에 송강의 삶을 투영하면서, 세련된 필치로 격정적 사대부 문인의 초상을 담담하게, 아니 막힘 없이 그려나간 한 권의 책이다.

인생 가운데 어디 하나 쉬운 인생이 있겠는가 마는 송강(1536∼1593), 그는 결코 쉽지 않은 인물이다. 지은이는 그 쉽지 않은 인물의 형상을 명료하게 짚어 낸다. 야심만만한 정치가이자 우리 문학사 최고의 시인이자 유한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시대의 풍류인 등,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질적 형상들로 비추어지는 송강이지만, 그 복합적인 형상들이 강렬한 개성과 넘쳐나는 감성과 더불어 통합된 형상으로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그 모습은 특히 격변의 시대에 불굴의 의지와 강인한 주체성을 지닌 고집불통의 강직한 사대부 지식인의 표상으로 비추어진다고. 그리하여 송강은 불같은 개성으로 불꽃같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가 역사의 대지 위에 남긴 행적들은 깊고 푸른 강물을 이루어, 오늘도 우리 곁으로 도도히 흐른다고.

우리 문학사에 그리도 화려하게 오르내리며 최고 문사의 칭호를 받는 성가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송강에 대한 총체적인 조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그렇기에 송강의 삶과 행적을 그의 생애에서 전환점이 된 사건들과 당대 나라 안에서 전개되던 역사적 동향들을 연관지어 가며 서술한 이 책은, 그만큼 반갑고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대부분이 그렇듯이 그를 안다고도 그렇다고 전혀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처지에서, 송강이라는 인물의 개성과 매력 그리고 그의 평생의 자취와 작품세계를 온전하고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그의 진면목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고 할까?

특히 일대기 사이사이에 소개되는 그의 주옥같은 문학작품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이해 놓은 점과, 조선시대 당쟁사를 한눈에 그러면서도 새롭게 보는 안목을 열어준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송강의 한 평생을 강의 일생에 비유하여 서술한 지은이의 치밀한 구성과 감칠맛 나는 문체가 돋보여, 평전으로서는 드물게 한 장 한 장 읽는 재미를 느끼게 했다. 이제 우리는 비로소 송강에 대한 제대로 된 평전 하나를 갖게 되었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 나아가 그의 인생을 조망하고 평한다는 것, 그것은 어렵고도 두려운 일이다. 더욱이 역사의 저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쉽사리 드러내 보여주지 않는 또 하나의 어려움을 안겨 준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그들은 우리가 부단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말을 건넬 때, 그리하여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진실을 향해 다가갈 때에야 비로소 마음을 열어 보인다.'라고 기술했다. 그리고 '역사의 숲에 난 길들을 걸으며 그들과 이야기하는 일은 참으로 벅차고 흥미롭다.'라고 술회했다.

한 사람의 역사적 인물을 탐색하고 그 결과를 글로 옮기면서 책머리에 남긴 지은이의 언급은 곰곰이 그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 말에는 삶에 대한 진지함이, 또 저술과 학문에 대한 치열함이 배어 있다. 지은이의 고통은 일반적으로 이렇듯 행간에 숨어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역사라 불리는 숲에는 사람들이 걸어다녀 생긴, 평생의 흔적이 완연한 길들이 나 있다.……길은 그 사람의 인생역정이다.'라는 지은이의 말, 경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