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 리영희 산문선
리영희 지음, 임헌영 엮음 / 한길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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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번호 <녹색평론> 발간사에서 김종철 선생은 리영희와 하워드 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각자 주어진 사회적 개인적 현실에 대응하며 살았으나 그들의 생애가 보여주는 궤적은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매우 흡사하다고. 아마 그 이유는 그들이 지식인의 본분에 극히 충실한 삶을 살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리영희 선생이 타계한 뒤로 진보매체에 기사가 크게 실리고 이런저런 조명을 받았지만 그의 사상이 제대로 알려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부터도 잘 모르니까. 하워드 진과 비견될 정도의 우리시대 지성인이라면 적어도 그의 사상의 대강이라도 훑어두고 싶었다. 

 <대화>는 예전에 읽었던 적이 있지만 어린 시절이나 군대에 있던 시절의 일화만 간간히 기억난다. 그 책을 읽으면서는 선생의 사상보다 오히려 ‘한 인간은 어떻게 이렇게 크고 막힘없는 인격으로 형성되는 것일까’에 더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반면 <희망>은 선생의 인간적인 면모보다는 베트남전쟁, 종교, 교육, 일본의 교과서문제, 과거청산문제 등 특정 사안에 대한 선생의 견해를 접할 수 있다. 그리고 한권의 책을 다 읽으면 이 다양한 사안들에 대한 선생의 견해가 합해져 선생의 사상이 어떠한 모습인가를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그 사상은 압도적일 만큼 엄청난 무엇은 아니다. 한 시절에는 사람을 끌려가게 했던 생각이 이제 상식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진보했다는 뜻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일상적으로 문제의식을 갖기 어려운, 우리 사회에 이런 문제들이 있다는 것도 망각하기 쉬운 주제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풍부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끝으로 인상 깊었던 구절을 인용한다.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면 형무소라는 철로 된 방이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관 속 같은 그 철방에 있는 것은 나 혼자였지만, 그런 관 속에 들어 있는 학생․노동자․지식인은 전국에 수백 명, 수천 명이었다. 해마다 그 수는 늘어났다. 철로 된 방에는 구멍이 뚫렸다. 그 구멍은 아직 사람이 빠져나갈 크기는 아니지만 숨을 쉬고, 빛을 보고, 주먹이 나갈 만한 크기는 되었다. 노신처럼 역사를 밀고 갈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한 ‘시대’와 함께 살아왔다는 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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