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키다리 아저씨 ㅣ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3
진 웹스터 지음, 김지혁 그림, 김양미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5월
평점 :
저 오랜만에 20대 소녀 감성을 느껴봤어요. ㅎㅎ
얼마전에 읽은 고전 소설 덕분이지요.
봄이잖아요.
비록 벚꽃은 졌지만 말랑말랑한 감성에 젖고 싶어서 소설 한 편 읽어야지 마음먹었어요.
한 때 박웅현 작가님의 <책은 도끼다>를 읽고, 고전 소설에 대한 환상이 생겼어요.
고전을 읽으면 박웅현 작가님처럼 될 수 있으려나? 라는 생각.
그래서 <안나 카레리나>를 구입했지요. 한 권도 두꺼운데 무려 3권 완결...
1권 겨우 읽었고, 2권의 어느 부분을 읽다 지쳐버렸어요.
너무 부담스러운 분량과 등장인물의 이름조차 너무 길어서 자꾸 앞페이지를 다시 보게 됐어요.
이런 제 성향을 고려해 이번엔 고전 소설이지만 컴팩트한 분량인 <키다리 아저씨>를 선택했어요.
글밥만 가득한 게 아니라 소녀소녀한 일러스트가 곁드려진 아주 예쁜 리커버북이에요.
삭막한 표지의 책만 보다가 이런 샤방샤방한 책을 읽으니 그냥 기분이 좋아져요.
너무 유명한 작품이라 저도 줄거리는 익히 알고 있었어요.
키다리 아저씨가 고아원 출신 주디의 대학 교육을 후원해주지요. 주디는 그 댓가로 키다리 아저씨에게 매일 편지를 쓰게 되고요. 편지에 답장은 없어요. 하지만 수다쟁이 아가씨의 편지를 읽다보면 여러 세계를 경험하게 되요.
남의 편지 훔쳐본적 있으세요?
전 남동생이 있는데, 은근히 인기가 많았어요. 동생 방에 있는 러브레터를 몰래 읽은 적이 몇 번 있어요.
손발이 오그라드는 내용도 있지만 말캉말캉한게 참 재밌었어요. 일기장 훔쳐보는 것만큼이라 편지 훔쳐보는 것도 짜릿하잖아요. 읽는 내내 이렇게 남의 편지를 대놓고 읽어도 되나하며 아주 재밌게 읽었어요.
“혼자 있는 고요함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처음으로 제루샤 애벗이라는 여자아이를 제대로 알 기회를 얻은 것 같아요. 왠지 그 아이가 좋아질 것 같네요.”
주인공 주디는 고아원에서 여러 사람과 공동 생활을 했어요. 처음으로 대학 기숙사에서 혼자 방을 쓰게 되어 기뻐하는 장면이에요. 전 20대 초 중반에는 혼자있으면 외로웠거든요. 제가 주디라면 외롭기도 했을 것 같은데, 그 나이부터 혼자 있는 고요함에 행복해 할 줄 아는 모습이 부러웠어요. 혼자있는 시간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이제야 알았거든요. 자신을 알 수 있는 기회. 제가 이제 깨달은걸 주디는 저보다 훨씬 어릴때 시작했네요.
“아저씨, 제 생각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상상력이 아닐까 싶어요.
상상력이 있어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거든요.
그래야 친절한 마음과 연민과 이해심을 가지게 되니까요.
상상력은 어린 시절부터 길러 줘야 해요.
하지만 존 그리어 고아원에서는 상상력의 싹이 조금만 보여도 당장 짓밟아 버려요.
오로지 의무감만을 강요하지요.
전 아이들이 그런 단어의 뜻은 몰라도 된다고 생각해요.
의무감이란 불쾌하고 혐오스런 단어예요.
아이들은 무슨 일이든 스스로가 좋아서 해야 한다고요.”
이거 육아서 아니죠? ㅎㅎ 제가 엄마라서 이런 구절이 더 다가 오는 걸까요? 요즘 4차시대혁명으로 여기저기서 창의력, 상상력 하잖아요. 주디 말이 옳네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위해 상상력이 필요하다니요. 이 아이 너무 앞서가네요. 누가 이 소녀를 고아원 출신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요? 너무 잘자라 주었어요. 고아인 아이들이나, 학대를 받았던 아이들 중에 성공한 아이들을 조사한 사례를 본 적 있어요. 그들이 성공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아세요? 비록 부모가 제대로 되지 않더라도, 자신을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아이들은 성공할 수 있데요. 물론 부모가 그렇게 해주는 게 베스트지만. 그래서 주디도 키다리아저씨를 통해 더 바르게 성장해 나갈 수 있는거겠죠?
——————
어땠어요? 긴 편지에서 제가 마음에 드는 편지들로 한 번 구성해 봤어요. 20대 아가씨의 감정 변화들도 재밌고, 너무 예쁘게 성장해 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감동적이기까지 해요. 가끔 세상이 너무 빡빡하고, 딱딱할 때 꺼내 읽어요. 소녀의 순수함에 미소짓게 될거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