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콥의 방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4
버지니아 울프 지음, 김정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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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 남편을 잃은 플랜더스 부인에게는 어린 세 아들이 있다. 40대 중반의 한창 나이에 과부가 된 플랜더스 부인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바풋대령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플로이드 씨 에게 사랑 고백도 받지만 자신에게 결혼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말썽꾸러기에다 손이 많이 가던 꼬마 제이콥은 자라서 캠브리지에 간다. 영민하고 준수한 제이콥은 모두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다. 클라라, 패니, 플로린다 그리고 그리스 여행에서 만난 산드라는 제이콥을 욕망하는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거리의 여인이었던 플로린다는 과감히 제이콥과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연애편지 하나 제대로 읽을 수 없었지만, 본능과 감정에 충실한 플로린다는 제이콥에 대한 욕망을 성취한다. 하지만 곧 다른 남자의 팔에 매달려 다른 욕망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아 플로린다가 제이콥에게 원했던 것은 사랑은 아니었다.

  모델 패니는 연인과 제이콥 사이에서 갈등하며 클라라를 질투하지만 이렇다할 행동은 하지 않는다.

  클라라는 제이콥에 사랑을 느끼지만 학습된 여성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을 접어둔다.

  산드라는 권태로운 일상에 등장한 제이콥으로 인해 눈이 번쩍 뜨이지만 자신이 누리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지는 못한다.

  플로린다, 패니, 클라라, 산드라 모두 제이콥을 대상으로 끊임 없이 자신의 욕망을 투사한다. 하지만 플로린다를 제외하면, 이들은 유의미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내면에서 부치지 못할 편지만 잔뜩 써내려가는 꼴이다. 어째서 이 여인들의 마음은 제이콥에게 닿지 않는가? 이 소설에서 제이콥의 '사랑'은 의미가 없는 모양이다. 울프가 창조한 주인공 제이콥은 여타 소설의 주인공과는 다르다. 제이콥은 서사를 이끌어가지 않고 배경처럼 버티고 있다. 제이콥을 중심으로 관계를 맺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내면을 보여주기 위한 통로가 제이콥의 방이다. 제이콥의 방을 지나치거나 거쳐가는 사람들, 도착한 편지들, 답장들 등. 제이콥이 구심점이 되어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인물들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 울프의 목적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래서 제이콥은 어떻게 되었는가?

  제이콥은 마치 돌아올 것 처럼 주변 정리도 하지 않고 떠났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보나미는 제이콥의 방에서 그리움에 사무치게 제이콥을 부른다.

베티 플랜더스는 보나미에게 제이콥의 낡은 구두를 보여주며 묻는다 "구두는 어떻게 할까요?"

 플랜더스 부인에게는 그저 구두 한 켤레가 남았을 뿐이다.

  낯선 작법이라 이해하는데 한계를 느낀 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아름다운 문장들은 오랫동안 머리를 맴돈다.

깃털 같은 하얀 달이 하늘을 어두워지게 버려두지 않았다. 밤새도록 녹색 천지에 밤꽃들이 하얗게 피어 있었다. 53쪽

젊은이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다. 두려워하기는커녕 뭐 대단한 말을 하지 않는다 해도 자신만의 것을 거머쥐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158쪽

"우리는 왜 그런지도 모르고 날마다 어리석고 필요치도 않은 일을 하며 지내지." 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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