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신부 2 민음사 모던 클래식 45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로즈는 자신은 다를 거라 생각했다. 친구들은 무방비 상태로 지니아를 만나 속수무책 당할 수 밖에 없었지만 자신은 지니아가 공격하더라도 맞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적을 잘 안다는 착각, 내 것을 잘 지켜낼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이 로즈의 패착이었다.

  밀수를 하던 아버지가 돈을 벌기 시작하고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로즈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시간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 아빠가 그냥 밀수꾼일리 없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회사에서 밑바닥부터 일을 배우던 로즈는 어느 날 신입 변호사 미치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로즈를 사랑했다기보다는 로즈의 배경을 더 사랑했던 미치는 결혼 생활 내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운다. 아슬아슬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던 로즈와 미치는 어느 날 우연히 레스토랑에 갔다가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지니아를 만난다. 지니아는 사실 자기는 기자라면서 자신이 로즈의 아버지에 의해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를 하며 로즈에게 접근한다. 지니아는 기자 출신 이력을 앞세워 로즈의 회사에 들어와 승승장구 하더니만 결국 미치와 함께 떠난다. 하지만 얼마 후에 미치 또한 지니아에 의해 철저히 이용당하고 버려졌다. 로즈는 미치를 잃고 처참하게 남겨졌다.

  토니, 캐리스, 로즈에게 지니아는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하는 존재다. (실제로 살의를 느낀 토니는 권총을 챙겨 지니아를 찾아가기도 한다.) 지니아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세 친구는 용기를 내어 지니아를 찾아간다. 여전히 아름답고 너무도 뻔뻔하고 당당한 지니아는 또 다시 친구들을 이용하기 위해 나타났다. 세 친구에게 모두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회유하는 지니아.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혼란스러워하지만 이전 처럼 쉽게 올가미에 걸려들지 않는 친구들에게 지니아가 독기를 뿜어낸다.

  지니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혼자 잘난 척 분개해 보시지, 이 재수 없는 꼬맹아. 토니, 너는 예전부터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제일 구역질 나는 위선자였어. 얼굴도 심술만 덕지덕지 묻어서 빈티나는 개똥처럼 생긴 주제에 뭐나 되는 줄 알고 잘난 척하는. 너는 네가 모험가라도 되는 줄 아는데 천만의 말씀이야! 그 부르주아적인 놀이터 속에 틀어박혀서 변태 같은 전쟁의 흔적들이나 만지작거리며 방금 전에 낳은 알이라도 되는 것처럼 불쌍한 웨스트를 깔고 앉아 있는 겁쟁이잖아. 웨스트도 그 지긋지긋한 거시기를 쑤셔 넣을 상대가 너밖에 없으니 지겨워서 돌아 버리기 직전일 거다. 무슨 생쥐하고 하는 기분 아니겠니?" 222쪽 토니에게 하는 말

 지니아의 잔인한 공격은 계속된다.

"너랑 섹스를 하면 순무를 쑤시는 기분이라던데? 내 말 잘 들어. 캐리스,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 나는 너를 알고, 네가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내는지 안 봐도 알것 같아. 고의를 입고 은둔자 행세를 하고 있겠지. 멍하니 빌리 생각이나 하면서. 그 사람은 핑계일 뿐이야. 현실을 외면하게 하는 핑계. 그 사람은 포기해. 잊어버려." 245쪽 캐리스에게 하는 말

 지니아는 성난 목소리로 쏘아붙인다.

"나는 너 같은 여자들을 보면 구역질이 나. 온 세상이 다 자기 것인 줄 알지. 하지만 미치는 네 것이 아니었어. 하느님이 너한테 주신 소유물이 아니었다고! 네가 그 사람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을 것 같아? 누구도 자기가 가진 것 말고는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거야!" 267쪽 로즈에게 하는 말

  지독한 거짓말쟁이긴 하지만, 지니아 입에서 쏘아져나온 독침은 토니, 캐리스, 로즈가 애써 외면했던 그녀들 자신의 일부를 깊숙이 찔렀다. 미숙해서 인지하지 못했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나라는 존재 안에 도사린 어떤 이미지나 에너지 혹은 또 다른 자아를.

  이 책은 세 친구의 다양한 직업군( 교수, 성공한 사업가, 히피를 연상시키는 요가 강사)과 무관하게 여성에 가해지는 모든 폭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이한 것은 표면적으로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이 같은 여성인 지니아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주범으로 여겨지는 남성들을 무자비하게 약탈하고 목숨까지 빼앗는지니아의 출현은 소설에 재미와 긴장을 부여한다. 그렇다면 지니아는 여자의 편인가? 그렇지 않다. 지니아는 남자들을 약탈함과 동시에 그 남자와 함께 한 여자들의 삶까지 약탈해 버린다.

 도둑 신부라는 제목이 궁금했는데, 2권 앞 부분에 토니가 로즈의 쌍둥이들에게 『도둑 신랑』 책을 읽어준다. 돈 많고 잘생긴 남자가 순진한 아가씨들을 꾀어 숲속의 성으로 데려가 몸을 토막 내 먹어치운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때 모든 성을 여성으로 바꾸기를 좋아했던 로즈의 쌍둥이는 책에 나오는 남자를 '그녀'라고 바꾸기를 원했다. 토니는 책 제목을 『도둑 신부』라고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그 도둑 신부는 바로 지니아였다.

 소설에 인용된 『도둑 신랑』 혹은 『도둑 신부』의 결말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도둑 신부>에서 지니아는 죽는다. 발코니에서 떨어져 분수에 빠지기 전 마약과다 복용으로 죽었다고 하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캐리스는 자신의 또다른 자아 캐런이 자신이 떠난 뒤에 남아 지니아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지니아가 죽고 친구들은 지니아의 장례를 치뤄준다. 지니아의 죽음으로 세 친구들이 모두 홀가분한 기분으로 새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토니는 지니아를 기억하기로 한다.

 토니에게 지도가 필요한 이유는 그녀가 항상 지도를 보는 이유와 일치한다. 지도를 보면 지형을 보고 상상하고 기억할 수 있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은 지니아다. 그녀는 지니아를 기억할 책임이 있다. 끝을 맺어 줄 책임이 있다. 309쪽

  토니가 지니아를 기억할 책임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년시절의 아픔과 상처를 지닌 세 친구들이 지니아를 만난 것은 끔찍한 사고나 다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친구는 지니아를 통해 자신을 직시하게 되어 본래 자아로의 통합과 성장이 가능해진 것이 아닐까? (세 친구 모두 현재의 자신과는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학자인 토니는 자신들이 지니아와 치른 전투를 곱씹는다. 세 친구 모두를 참패시킨, 잔인하고 지략이 뛰어났던 명장 지니아를 기억해주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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