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변경론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사게 된 건 우치다 다츠루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백수시절에 하류지향이라는 책을 읽으며 크게 와닿은 점이 있었기 때문에 하류지향 외에 구조주의와 마르크스에 관련된 책 2권을 읽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살림출판사에서 나온 <일본의 이중권력 쇼군과 천황>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책 내용 중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전범(戰犯)들에 대해 조사를 했더니 각자 자신이 전쟁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 책에도 그와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그럼 책임이 없다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냐고 전범들에게 묻자 자신은 비록 전쟁에 대해 반대했으나 주위의 ‘흐름’이 그렇게 결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반드시 중론(衆論)이 정론(正論)은 아니다. 역사에서 나타나는 파시즘도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같은 지도자의 만행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여기에는 대중의 자발적 지지도 만만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옳지 않은 주위의 ‘흐름’을 그나마 나은 자신의 기준보다 앞선 판단의 우선원칙으로 삼았다.


 이것은 책임회피인가. 아니라고 할 수 없지만 전범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전범들이 도덕이 결여되었다고 볼 수 없다. 이들에게는 주위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당연하게 인식되어 있는 것이다. 안좋은 것도 말이다.


 저자는 이런 일본인의 특성을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주로 부정적인 시각에서 서술한다. 일본인은 ‘세계 표준’을 설정하고 그것을 ‘변경(邊境)’에 서 있는 자로서 세계 표준을 향해 달려가지만 막상 그 ‘세계 표준’에 도달하여 고유의 것을 만들어 선도할 입장에 서게 되면 그 이상은 나아가지 못한다고 말이다. 저자는 이를 변경성이라고 하는데 일본인은 중심에는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고 믿으나 자신이 서 있는 곳에는 진리가 있지 않기에 중심에서 모든 일이 결정되고 변경에 있는 일본인은 그 중심을 향해 접근하는 것에 매진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이토고토리라고 하면서 베끼는 일본인의 특성은 역시 진리였어라고 더욱 생각을 굳히게 하는 책일수도 있겠지만 우리 한국인에게도 이 ‘변경성’은 없는걸까? 한국에서도 학문과 문화만 하더라도 외부문물은 선진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말하며 영•미의 사례를 들먹인다. 고유의 것을 주장하나 각종 명칭에서 영어가 한글보다 ‘세련’된 것으로 인식되고 각종 사회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현상도 한국•동양철학보다는 프랑스철학과 같은 서양철학이 주로 응용된다. 우리도 어쩌면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서양을 절대적인 중심으로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이 소개될 때 주제 때문인지 주로 변경성을 설명하는 1, 2장이 언급되는데 일본인의 자신과 타자의 구분이 없는 기(機)라는 시간을 설명하는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3장과 표음문자 표의문자의 특성을 담고 있는 일본어의 특성과 일본어가 문화상품에 부여하는 장점의 내용을 담은 4장도 생각을 많이하게 한다.


 좋은 책이긴 하지만 일본에 대한 관심이 차츰 줄어들고 다소 생소한 일본사와 어려운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에 이 책이 대중에게 많이 읽힐 것 같진 않다. 그래도 일본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도록 하자. 나는 소소한 역사 이야기를 읽는 것만 해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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