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
아사다 지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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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소설 하면 왠지 아저씨들이 보는 거란 이미지가 앞서지만 아사다 지로라면 충분히 대중적으로 어필할 만한 내용을 써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약간의 최루성 감동 코드, 뻔한 줄 알면서도 결국 감탄하고 마는 전개, 짠하기 이를 데 없지만 누구보다 씩씩한 주인공들.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도 그런 장점을 고스란히 발휘하며, 우리가 몰랐던 일본 메이지 시대 초기의 생활상을 전해준다.

 

서양화와 근대화, 그리고 대폭적인 구조조정. 가정이나 회사의 변혁에도 수많은 문제가 따를진대 사회 전체의 시스템이 바뀌는 건 그야말로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일이 아니었을까. 필연적으로 낙오자가 발생하고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쨌거나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의 투쟁이 시작된다. 그 안에서 자신의 존엄과 가치관을 지켜나가기란 얼마나 깔끄러운 일이었을까. 지금 사회가 갑자기 쇼군-사무라이 체제의 무가사회로 탈바꿈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행스러운 건, 이 책에서도 아사다 지로의 유머와 낙관적인 성격이 여전히 빛을 발한다는 점이다. 서양 시간에 적응하지 못해 대형 사고를 칠 뻔한 군대 지휘관의 모습도, 목숨을 담보로 잡은 빚 증서가 갑자기 나타나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 관리도, 서양력 채택으로 하루아침에 실직자 신세가 된 과학자도, 상황의 심각성과 별도로 그들 나름의 해결방식과 대처법이 읽는 이의 얼굴에 미소를 가져온다. 억지로 만들어낸 우스꽝스러움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최대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드는 그 무모한 시도가 지금 시대의 가치관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덕에 그들은 새 시대에 느리게나마 적응해나가고, 각자의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여섯 편의 이야기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역시 [먼 포성]이다. 이미 상하관계가 의미 없어진 주군 가에 고지식하게 의리를 지키려 드는 부하의 모습과, 시분초로 이루어진 서양 시간이 유유자적한 중세인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가 과장 없이 담백하게 그려져 있다. 드라마틱한 울림은 물론 표제작인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가 더 강하지만, 이상하게 다 읽고 난 후에는 어설픈 육군 장교 쓰치에의 고군분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더불어 그를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의 미래에 행운을 빌어주고픈 마음이 든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는 데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건 아마 마찬가지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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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블랙
수전 힐 지음, 김시현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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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서 연극 상연할 때 봤었는데 제대로 오금 저렸던 기억이.. 원작과 영화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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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된 장소에서 언더그라운드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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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사린사건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이고 도망쳤다가 잡힌 사형수 하야시 야스오는, 별것 아닌 이유로 옴진리교에 들어가 세뇌를 당하고 살인을 저질렀다. 극히 보통사람인 그가 흐름에 뒤엉켜 무거운 죄를 저지르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언제 목숨을 잃을지 알 수 없는 사형수가 된 것이다. 달의 뒷면에 혼자 남겨진 듯한 그런 공포를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상상하면서, 그 상황의 의미를 몇 년이나 계속 생각했다. 그것이 『1Q84』의 출발점이 됐다. 

 
   

하루키의 이 인터뷰를 읽고 '달의 이면에 남겨진 듯한 공포'라는 표현이 내내 귓가를 맴돌았다. 1Q84에서도 중요한 소재가 되었던 달의 의미를 이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엘리트 의사, 신흥종교 신자, 그리고 살인 테러범. 몇 번의 검색을 통해 찾아본 하야시 야스오의 나름 드라마틱한 반생을 떠올리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약속된 장소에서]는 [언더그라운드]와 골격을 같이하는 책으로, 마찬가지로 인터뷰 형식을 띠고 있다. 후편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각각 피해자와 가해자를 다루고 있다는 간단한 도식도 성립하지만, 두 책은 좀더 넓은 의미에서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주고 있는 듯하다. 하루키가 결코 쉽지 않았을 터인 작업을 거쳐 굳이 이 내용을 연재하고 책으로 엮어 내려 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으리라. 

첩보영화를 연상시키는 테러범의 고백이나 수기를 기대한다면 미스터리 소설이나 옴진리교 관련 블로그들을 찾아보는 게 더 좋을 것이다. [언더그라운드]에서와 마찬가지로 옴진리교 옛 신자(혹은 현재 신자)들의 인터뷰 역시 그들 개인의 성장배경과 신변잡기적인 이야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류된 인물도 없고, 심지어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매스컴을 통해서 그 내용을 알게 된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렇다면 이 인터뷰들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그들 모두에게 “당신은 옴진리교에 입신한 것을 후회합니까?”라고 질문해봤다. 그들 거의 대부분은 입을 모아, “아니, 후회하진 않는다. 그것이 허송세월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것은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현세에서는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순수한 가치가 분명히 거기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악몽으로 전환해버렸다고 해도 그 빛이 내뿜는 눈부시고 따뜻한 초창기의 기억은 지금도 그들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으며, 그것은 다른 뭔가로 쉽게 대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악의 기준이란 지극히 사회적인 잣대로 정해진다. 그리고 악자를 심판하는 데 있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느 정도의 선민의식을 발휘한다. 하지만 대상만 달랐을 뿐, 그들이 발했던 순수한 열정이야말로 우리가 또다른 측면에선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그것이 아니었을까. 학창시절 심취했던 각종 서브컬처의 부산물을 떠올리면서, 나도 모르게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가와이 하야오와 하루키의 대담은 까다롭고 심각한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수월하게 읽힌다. 인터뷰들에서 느껴지는 어딘가 탁한 분위기에 비해 겨우 이성적이며 정상적인 세계로 돌아온 느낌을 주기도 하고. 몇 번이고 생각하며 정독하고 싶은 텍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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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에 안녕을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7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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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 은근히 터프하다. 각오하고 읽어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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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랜드 서울 - ... 서울, 어디까지 가봤니? 생각나무 Travel 3
정재인.이진 지음 / 생각의나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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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구의 190배가 산다는 서울. 그중 지방에서 유입된 인구는 모르긴 몰라도 아마 세계 여느 나라 수도와 비교했을 때 최대일 것 같다. 학업이나 생계를 위해 대도시에 모여든 사람들이 어쩌면 서울의 문화라는 것을 이루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을 위한 서울 안내책이다. 서울 토박이는 물론 지방에서 유입된 사람들에게 서울이 단지 생계의 장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가이드이기도 하다. 서울은 여느 나라의 수도가 그렇듯 전통과 첨단이 공존하고 도시 자체의 특색이 매우 복합적이다. 시선을 조금만 달리 하면 새로운 도시의 모습이 보인다. 어떤 때는 징그럽고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는 서울이라는 공간의 구석구석에 보석처럼 빛나는 자신만의 장소를 찾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가이드를 접해볼 가치가 충분할 것 같다. 

전체 레이아웃이 여행책 본연의 스타일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끌림> <러브 앤 프리> 등이 대박을 터뜨린 이후 여행책 트렌드가 사진과 에세이 중심으로 치우져지면서 알맹이 없는 책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나오는 인상인데(물론 저 두 책은 매우 잘 만든 좋은 여행 에세이이자 이 계열의 걸작이라고 생각함), 오랜만에 실용적인 정보와 잡지 피쳐 기사 못지 않은 센스가 가득한 문장을 보노라니 당장이라도 책을 들고 지하철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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