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의 이사 문지아이들
보탄 야스요시 지음, 김영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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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은 SNS에서 누군가 좋아하는 책이라고 올린 게시물을 보고 궁금해져서 읽어보게 되었다. 출판사는 믿을 만한 문학과지성사였지만, 작가는 일본 작가였다. 사실 일본 영화나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일본 그림책도 즐겨 읽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이 책은 일본의 느낌보다는 아름다운 전래동화를 한 편 읽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임금님이라는 인물 때문이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이야기와 그림 모두가 굉장히 아름답다.

겉표지를 벗기면 짙은 연두빛 바탕에 신비롭고 패턴이 있는 무늬가 새겨져 있다. 대체 임금님의 이사가 뭘 어떻게 됐다는 건지 궁금증이 들었다. 면지는 하늘색 물감을 푼 듯한 자유롭고 부드러운 그림이 그려져 있고, 한지 종이 같은 부드러운 재질이다.

첫 장면은 귀여운 당나귀 두 마리가 장막을 열며 작은 성을 보여준다. 무대 위의 이야기 시작처럼 느껴진다. “머나 먼 나라, 깊고 깊은 산 속 작은 성에 부끄럼 많은 임금님과 덤벙대는 친구들이 살았습니다.” 배경과 캐릭터를 안내하는 시작이 전래동화를 연상케 하였다.

익히 알고 있는 임금님 캐릭터는 욕심 많고 어리석은 벌거숭이 임금님이거나 당나귀 귀처럼 무언가 숨길 것이 있는 인물인데, 이 그림책의 임금님은 부끄럼 많은 임금님이었다. 그 다음 장면과 전체 이야기가 어떨지 한 번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부끄럼 많은 임금님은 마음씨가 따뜻하여 누가 힘든 처지에 있으면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 하는 임금님이었다. 그렇지만 부끄럼이 많아 명령일 제대로 내리지 못하였다. 덤벙대는 친구들은 여섯 명의 성격 좋은 친구들이었는데 이들은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해 임금님이 내린 명령을 엉뚱하게 수행하였다.

임금님은 여섯 친구들이 비좁게 자는 것을 보고는 큰 침대를 만들라고 명령하였는데 여섯 친구들이 너무나도 커다란 침대를 만들게 되어 성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임금님은 이사를 가자고 하였고 여섯 친구는 당황했지만 이사 갈 준비를 하였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말 할 때, 내 의도대로 전달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큰 오해가 생겨 서로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 이 그림책에서는 말하는 바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그때마다 다른 상황들이 연출되었음에도 임금님과 여섯 친구는 서로를 오해하거나 미워하거나 꾸중하지 않는다.

짐수레에 짐을 가득가득 싣고 이사를 가면서 만나게 되는 많은 일들 속에서 임금님은 A를 의도하여 말하였지만, 여섯 친구들은 엉뚱한 방법으로 그것을 해결하기는 한다. 임금님은 해결된 상황이 항상 누군가의 행복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덩달아 행복해한다. 그 사이 임금님의 이삿짐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마침내 성에 도착했을 때에는 임금님의 작은 침대뿐이 남지 않았다.

여섯 친구들을 넓은 침대에 재우고 싶었던 임금님은 침대조차 없어진 여섯 친구들에게 임금님의 침대에서 함께 자자고 청한다. 7명이 작은 침대에서 오순도순 붙어서 잠든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행복한 삶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 그림책은 성숙한 어른의 모습, 나눔과 베풂, 따뜻함, 물질에의 초월, 연민하는 마음, 다른 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등을 아름답고 섬세한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다. 글의 위치 역시 그림을 고려하여 가장 잘 읽히면서도 그림과 조화를 이루는 위치에 배치되어 있다.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에 등장한 당나귀 두 마리가 장막을 닫으며 꿈나라로 가자고 인사한다. 섬세한 마음씨를 가진 등장인물들과 그것을 표현한 섬세한 글과 그림이 임금님의 이사를 따뜻함 가득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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