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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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화려한 수식어로 소개된다. 2021년 뉴욕 타임스, 타임, 아마존, 굿리즈 선정 올해의 책, 버락 오바마 추천 도서, 뉴욕 타임스 45주 이상 베스트셀러 등. 만약 내게 이 책의 소개 문구를 쓰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책의 첫 문장을 쓰겠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이 첫 문장은 책의 모든 내용을 함축했다 해도 될 만큼 강렬하다. 첫 문장을 읽자마자 작가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H마트는 아시아 식재료를 파는 미국의 슈퍼마켓 체인으로, H는 한아름의 줄임말이다. 작가 미셸 자우너는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한국계 미국인이다. 10대 시절, 작가는 다정한 '미국' 엄마들과 달리 엄하고 잔소리 심한 자신의 '한국'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여느 엄마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정체성 혼란을 겪는 청소년기에 그 이성적 사고가 예민한 마음까지 설득하기란 어려웠다.


애증의 모녀 사이지만 둘의 유대를 돈독하게 한 매개체는 한국 음식이었다. 엄마의 사랑이 가득 담긴 음식. 알맞게 익어서 새콤한 김치, 입 안을 델 정도로 뜨거운 찌개, 날씨 좋으면 테라스에서 함께 먹는 삼겹살, 생일이면 꼭 끓여주시는 미역국, 달콤 짭짜름한 갈비, 엄마가 좋아하는 해물짬뽕, 서울 이모 집에 놀러 가면 다 같이 거실에 둘러앉아 후루룩거리는 짜장면까지.


대학에 진학해 부모님 곁을 떠나 살게 되면서 작가는 조금씩 엄마의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얄궂게도 그제야 전해진 엄마의 암 진단 소식. 작가는 엄마 곁에서 병간호하며 어릴 적 엄마가 자신에게 해준 그 음식으로 엄마를 지키려고 애쓴다. 엄마가 떠난 뒤, 작가는 유튜브를 찾아보며 H마트에서 사 온 재료로 엄마가 해주던 된장찌개, 잣죽, 김치를 직접 만들어 먹는다. 그렇게 엄마의 음식을 통해 슬픔을 달래고 스스로를 보듬는다.


이 글은 한 인간의 성장담이자 작가 개인의 엄마를 향한 반성문이고 러브레터이다. 이 책에 많은 미국인이 공감한 이유는 뭘까.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 2세대 이민자를 향한 유대감? 아마도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딸이자 아들이고, 엄마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좋은 추억이든 안 좋은 추억이든. 엄마와 신경전을 벌이고 청소년기에는 갈등도 겪고 그래서 엄마가 밉기도 하고. 어떤 날은 별거 아닌 일에 까르르 웃기도 하고 엉엉 울기도 하면서.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 늘 엄마의 음식이 있다. 한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던 기억. 가족이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가족의 정서를 영양분으로 한 추억을 마음에 차곡차곡 쌓는 행위이다.


작가는 엄마와의 추억이 슬픔 속에 곪아 터지게 놔두지 않고 음식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했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추억을 잘 익은 김치처럼 발효시킨 것이다. 이제 전화를 걸어 매일 먹던 김이 어디 거였는지 물어볼 사람은 없지만, 작가는 오늘도 H마트에 간다.


내가 한 음식은 모두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각각의 향과 맛이 잠깐이나마 나를 멀쩡했던 우리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 우리가 공유한 문화는 내 심장 속에, 내 유전자 속에 펄떡펄떡 살아 숨쉬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유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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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7-17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엄마와의 추억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것이지요.

후추 2023-07-20 16:42   좋아요 0 | URL
더불어 그 추억이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