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배반 - 뒤집어보고, 의심하고, 결별하라
던컨 와츠 지음, 정지인 옮김, 황상민 해제 / 생각연구소 / 2011년 7월
절판


우리는 X가 성공한 것은 성공에 가장 적합한 속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어 하지만,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속성은 이미 X가 갖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속성이 X의 성공을 만들어낸 것이 분명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처럼 우리는 어떤 사태의 발생 이유를 이해하고자 할 때 순환논리에 의존하지만, 그것이 꼭 성공을 설명할 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
"X라는 일이 일어난 까닭은 사람들이 원한 것이 X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람들이 원하던 것이 X임을 아는 것은 X라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90-91쪽

각 뉴런의 행동을 낱낱이 알아도 인간의 뇌에서 어떻게 의식이 생겨나는지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어진 인구집단에 속한 개인의 기호와 경험, 태도, 신념, 희망, 꿈은 알아도 그들이 집단적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는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사회적 과정의 결과를 허구의 대표적 개인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은 우리가 실제보다 훨씬더 원인과 결과를 잘 구분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셈이다.-110-111쪽

현재 페이스북에 가입한 5억 명에게 2004년 당시 온라인에 자신의 프로필을 올리고 수백 명에 달하는 친구나 지인과 함께 매일 자신의 신상에 일어나는 일을 공유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면 어땠을까? 그중 다수는 싫다고 햇을 것이고 대부분 그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페이스북이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리고 있고, 따라서 사람들이 그런 것을 원했던 게 분명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원하지 않났다면 왜 이용하고 있겠느냐는 거다.-111쪽

대부분의 작업은 촉발자 역할을 한 소수가 아니라 그보다 규모가 훨씬 큰, 즉 쉽게 영향을 주고받은 임계치 이상의 사람들이 해낸 것이었다. 이에 따라 우리는 베스트셀러나 히트상품을 만드는 에너지, 연줄, 영향력 있는 사람은 타이밍과 환경의 조합이 만든 우연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얻었다. 말하자면 '우연히 영향력을 발휘한 사람'인 것이다. -132쪽

이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몇몇 '특별한' 개인을 표적으로 삼는 마케팅 전략은 별로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임감 있는 재무관리자가 하는 것처럼 마케팅 담당자도 '포트폴리오' 식 접근법을 채택해 다수의 잠재적 영향력 행사자를 표적으로 삼고, 그들이 평균적으로 창출한 효과를 이용함으로써 개인적 수준에서 나타나는 무작위성을 효과적으로 낮춰야 한다.-138쪽

상식은 특별한 사람이든 특별한 속성이든 아니면 특별한 상황이든 그럴듯한 원인을 만들어내는 데 능하고, 역사는 대부분의 증거를 어쩔 수 없이 폐기하게 만들어 사건의 한 가닥만으로 전체 사건을 설명하게 한다. 따라서 상식적 설명은 어떤 일이 일어난 이유를 설명하는 듯하지만 삿리은 일어난 일을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159쪽

어떤 행위가 낳는 의미를 단번에 평가할 수 있는 시점을 '결과'라고 할 때, 대부분의 인생사에서 명확하게 정의된 '결과'라는 것 자체가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허구의 개념일 뿐이다. 현실에서 우리가 결과라고 칭하는 사건은 사실 종결점이 아니다. 인위적으로 세워놓은 이정표에 불과하다. 영화 한 편의 끝도 현실적으로는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에 인위적으로 만든 끝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한 과정 중 어느 지점을 선택해 '끝'을 맺는가에 따라 그 결과로부터 도출되는 교훈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168쪽

이렇게 이야기와 이론을 혼동하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상식을 사용하는 문제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보통 이미 일어난 어떤 일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에는 우리가 배웠다고 여기는 '교훈'을 미래에 시행하고자 하는 모든 계획이나 정책에 이용하려 한다. 우리는 이야기 들려주기에서 이론 만들기로 아주 쉽게, 거의 본능적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대개는 우리가 그러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다.-174쪽

예측의 진짜 문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예측에 능하거나 서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뢰성을 갖고 할 수 있는 예측과 그렇지 못한 예측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179쪽

실제로 실현되기 전까지 우리가 미래의 주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특정 범위 내에 해당할 특정 확률이 있다는 것뿐이다.
실제로 주가는 그 범위 안에 속하며 이는 우리가 정확히 어디인지 확신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보다 확실한 의미에서 그 주가는 '오직' 어떤 확률의 범위로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미래를 확실히 모르는 것과 미래 자체가 불확실하다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전자는 정보를 갖지 못한 것뿐이지만(우리가 모르는 그 무엇) 후자는 그 정보가 원칙적으로 알 수 없는 것임을 암시한다. 전자는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고 또한 충분히 똑똑하다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즉 라플라스의 악마의 질서정연한 우주다. 후자는 본질적으로 무작위적인 세상이고 거기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은 다양한 결과에 대한 예상을 확률로 표현하는 것뿐이다.
-188-189쪽

가능한 결과를 예측하는 것과 가능한 결과의 확률을 예측하는 것의 구분은 예측의 종류에 관한 우리의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다. 과거로부터 배우는 방식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그것 말고도 또 있다. 심지어 이것은 직관에 더욱더 반대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애초에 우리가 어떤 결과를 예측해봐야 하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189쪽

복잡계에 관한 예측은 수확체감의 법칙에 심하게 지배를 받는다. 처음 한 가지 정보는 큰 도움이 되지만 그 후로는 예측 결과를 향상시킬 만한 잠재력이 급속도로 고갈된다는 말이다. -217쪽

이것이 바로 전략의 역설이다. 레이너는 전략적 실패의 주요 원인이 잘못된 전략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잘못 풀린 훌륭한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잘못된 전략의 특징은 비전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리더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탓에 전략을 실행에 옮기는 솜씨가 형편없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성공과 거리가 먼 특징이지만 엄청난 실패를 겪기보다 평범함을 꾸준히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와 대조적으로 훌륭한 전략의 특징은 선명한 비전과 대범한 리더 그리고 치밀한 실행력이다. 여기에다 이에 걸맞은 집중과 헌신이 더해지면 애플이 아이팟으로 그랬듯 어마어마한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동시에 엄청난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훌륭한 전략의 성패는 순전히 최초의 비전이 잘 맞아 떨어지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이 될지 미리 아는 것은 그냥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하다. -226쪽

우리는 전통적 전략 기획이 한결같이 기획자에게 미래를 예측하도록 요구하고, 이로써 그들은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오류에 취약해진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민츠버그 역시 이런 문제를 고심하다가 기획자는 장기적인 전략 동향 예측에 크게 의존하지 말고, 현장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일에 더 중점을 두라고 제안했다. 즉, 미래에 어떤 것이 좋은 반응을 얻을지 정확하게 예측하려 애쓰기보다 지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들로부터 배우는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반응이 시원치 않은 것은 그 전에 아무리 유망하게 보였더라도 자라가 한 것처럼 가능한 재빠르고 단호하게 포기해야 한다.-234쪽

계획이 실패하는 것은 계획자가 상식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상식에 의지해 다른 사람의 행동을 추론하기 때문이다.-261쪽

은행은 시절이 좋을 때는 자신들이 독립저긍로 모든 위험부담을 떠안으며 힘겹게 일한 대가로 번 결실을 모두 차지할 권리가 있는 집단으로 인식되길 원한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자신들의 실패가 더 큰 체계의 실존을 위협할 만큼 중요한 요소로 다루어지길 바란다. 규모가 너무 커서든 서로 깊이가 연결되어서든,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이든 정말로 그만큼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성공뿐 아니라 실패의 부담까지도 온전히 짊어져야 하는 자유주의자들인가, 아니면 자신을 돌봐준 시스템에 대해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를 지불하는 롤스주의자들인가 하는 점이다.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철학을 아무렇게나 바꿀 수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294쪽

샌델은 정의로운 사회란 도덕적 중립의 관점에서 개인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려는 사회가 아니라, 타당한 도덕적 관점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를 용의하게 만드는 사회라고 결론 내린다. -297쪽

우리는 여전히 과학 연구에 어마어마한 자원을 쏟아 붓고 있다.
그런데 도시빈곤이나 경제개발, 공교육 같은 사회 문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과학에 대해서는 왜 그만큼 주목하지 않는 것일까? 그래서는 안 된다. 이제는 그런 이해에 필요한 도구가 없다는 주장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망원경의 발명이 천체 연구에 혁명을 일으켰던 것처럼 이동통신과 웹,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에서 일어난 기술 혁명은 측정할 수 없던 것을 측정 가능하게 만듦으로써 우리 자신과 우리의 상호작용 방식에 대한 이해에 혁명을 일으킬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다. 머튼이 옳았다. 사회과학은 아직 사회과학의 케플러를 발견하지 못했다. 알렉산더 포프가 인류가 해야 할 합당한 연구는 천체가 아니라 우리 자신 속에 있다고 주장한 지 300년이 지난 지금에야 우리는 마침내 우리의 망원경을 발견한 것이다. 자, 이제 혁명을 시작해보자.-32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