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마음에게 속고 있다 - 정신과 전문의 최병건의 마음 탐구 22장면
최병건 지음 / 푸른숲 / 2011년 5월
장바구니담기


놀랍게도, 그런 출처 없는 감정을 경험하는 순간, 우리에겐 그 감정의 이유가 같이 떠오른다. 최면에서 깨어난 사람이 방이 더워 창을 열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가 나를 화나게 했다고, 그가 나를 버렸다고, 그를 너무 사랑해서 그러는 거라고...... 무의식이 만들어낸 가짜 이유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른다. 그것을 진짜라 믿고 울고 원망하고 분노할 뿐이다. 감정의 정체를 숨기고 바깥세상에 이유를 만드는 것. 그것이 무의식이 우리를 지배하는 방식이다. 은밀하게, 소리없이.-30쪽

변화는 앎에서 시작된다. 총체적 원인을 바꾸면 미래는 바뀐다. 과거를 앎으로써 미래를 바꿀 수 있다. 반복되고 있는 주제를 찾아내서 바꾸는 것이 정신분석이 미래를 바꾸는 방법이다. 정신결정론의 메시지는 체념과 순응이 아니라 변화와 도전이다.-48쪽

지금과 다른 상황이 되면 마치 해탈이라도 할 것처럼 이야기한다. 정말 그런가? 천만에, 알면서. 지금 못 놓는 건 평생 못 놓는다.
일상이 늘 똑같은 건 세상이 아니라 마음 때문이다. -55쪽

하나의 정신적 현실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정신적 현실에서는 증오의 대상일 수 있다. 그중 어느 것도 유일한 진실이 아니며, 어느 것도 거짓이 아니다. 모두가 마음의 일부고 모두가 진짜다. 마음은 다중의 정신적 현실로 구성된다. 항상 그렇다. 예외는 없다. 모순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성의 관점에서 학습된 것일 뿐, 마음속에는 모순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84쪽

남의 정신적 현실에 관한 진실을 우리는 종종 서로를 할퀴는 데 쓴다.(..) 싸움이 시작되면 둘은 서로의 진실을 잔인하게 폭로한다.(...) 둘 다 알고 있다. 상대의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그 비난이 진실을 내포하고 있음을. 하지만 그걸 인정하는 건 너무 아프고 괴롭기 때문에 역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상대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서.-85쪽

프로이트의 인간은 욕망하는 기계이고, 인간에게 세상은 욕망이 투사된 스크린이다. 그 세상에서 대상은, 욕망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독립적 주체로서의 타인, 독립적인 마음과 욕망과 취향을 갖는 타인 같은 건 없다. 대상은 마땅히 내 욕망을 충족시켜야 할 의무를 가진 존재다. 그것만이 대상이 존재하는 이유다. 나에게는 원하는 대로 대상을 사용할 권리가 잇다. 미안해하지도, 배려하지도 않을 권리가 있다. 그게 쾌락 원칙이고, 그 원칙이 지배하는 것이 인간의 정신적 현실, 마음속 세상이다.-90쪽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있을 뿐 이유는 필요 없다. 엄마가 있기로 약속했으면 어떻게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게 마음의 계산법이다.-91쪽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그런 것이 있다. 늘 나를 못마땅해하는 것, 경멸에 찬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내가 뭘 해도 곱게 봐주지 않는 것, 이유 없이 나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 마음속 어둠 속에서 호시탐탐 습격의 기회만을 엿보고 있는 것.
세상에서 가장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늘 당신 자신이다.-107쪽

사랑을 못 받은 이드와, 사랑을 못 배운 초자아의 야합. 정의를 빙자한 화풀이는 그렇게 탄생한다.-115쪽

투사적 동일시는, 자신의 믿음을 대상에게 투사해서 그 사람이 어떨 거라고 가정한 다음, 그런 면이 나타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제 믿음을 확인한다. 윌은 사라들이 자신을 쓰레기 취급할 거라 생각한다. 그러고는 쓰레기짓을 해서 쓰레기 취급을 당한 다음 자신이 옳았다고 생각한다.-130쪽

나쁜 나는 나쁜 대상을 소환하고 나쁜 대상은 나쁜 나를 강화한다. 상대의 실체를 폭로하는 쾌감은 반드시 자신에 대한 혐오를 동반한다. 악순환은 끝없이 반복되는 것이다.-130쪽

완벽해야 하는 건, 세상이 흑백이기 때문이다. 흑백의 세상에선 가장 소중한 사람 같은 건 무의미하다. 전부여야 한다. 전부가 아니면 전무다. 전부가 아니면 가짜다. 그 전부를, 완벽을 남에게 바란다. 그렇게 타인을 질식시켜서 떠나게 한다. 그러고는 말하낟. 그것 보라고, 너도 가짜였다고. 세상에 진짜는 없다고. 너도, 나도 쓰레기라고.-133쪽

사람의 마음은 그런 식으로 바뀌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에게 남기는 건 아픔이 아니라 상처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람에게 기억으로 남지 않는다. 마음의 일부로 남는다.-150쪽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 중 그 자체로 병적인 것은 없다. 마음의 모든 일은 정도의 문제다. 정상적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의 어떤 현상이 과도하게 일어나서 현실에서 문제를 일으킬 때, 정신의학과 정신분석은 진단을 내린다. 바꾸어 말하면 '병'에서 볼 수 있는 현상들은 보통 사람들의 마음에서도 늘 일어난다.-156쪽

편집적인 사람들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나쁜 대상이 아니다. 싸울 수 있으면 덜 두려다. 가장 두려운 건 눈에 보이는 나쁜 대상이 아니라 싸울 수 없는 것들이다. (...) 그들에게 최악의 공포는 싸울 수 없을 때 찾아온다. 그래서 그들은 기를 쓰고 싸울 대상을 만들어낸다.
그들에겐 반드시 적이 있어야 한다. 이 겁쟁이들에게 적 없는 세상은 너무 무섭다. 그들에겐 아옹다옹 다투며 살아갈 적이 꼭 있어야 한다. 그들과 적은 공생관계다.-166쪽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천박함은 복잡한 정신분석 이론이 아니라 그냥 자본주의의 농간으로 설명된다. 사라들의 부러움을 유발해 돈을 쓰게 만드는 수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21세기 자본주의의 수법은 더욱 악랄해졌다. 현대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비결은 부러움을 유발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수치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노골적인 협박을 통해서.(...)
난민 수준의 몸매가 미인의 기준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영양공급원 과잉인 현대사회에서는 그런 몸매를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기는 희소성 때문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근육도 마찬가지다. 몸만들기가 미덕이고 책읽기가 미덕이 아닌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돈이다.-186쪽

거대 담론은 없다는 거대 담론, 모두가 똑같이 다양성을 찬양하는 획일성. 이 변화는 자본주의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상업 자본은 포스트모던의 '보급판'을 대중에 전파했다. 개성, 감성, 섹시함이 시대의 지상 과제가 되었다.-189쪽

강박적인 사람들이 추구하는 완벽은 '틀리지 않는 것', 즉 정확함이다. 자기애적인 사람들이 추구하는 완벽은 최고를 지향한다.-19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