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사람들은 글을 발명합니다. 글은 손의 연장으로 간주될 수 있고, 이런 의미에서 글은 거의 생물학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것은 신체와 직접 연관된 소통 기술입니다. 일단 한번 발명되고 나면 우리로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지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것은 바퀴를 발명한 것과 같아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바퀴는 선사 시대의 그것이에요. 반면 영화, 라디오, 인터넷 같은 현대의 발명품들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지요.-12-13쪽
우리는 지금부터 5세기 전에 인쇄된 텍스트를 아직도 읽을 수 있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만들어진 지 채 몇 년도 안 되는 카세트테이프나 시디롬은 더 이상 읽을 수도, 볼 수도 없어요. 지하실에 낡은 컴퓨터를 보존하고 있지 않는 한.-19쪽
우리가 앞에서 얘기했듯이, 현대의 매체들은 빠른 속도로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버리죠. 이런 물건들은 금방 읽을 수 없는 것, 짐만 되는 잡동사니가 될 수 있는데,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해야 하죠? 현대의 문화 산업이 지난 몇 년 동안 시장에 쏟아낸 모든 물건들보다 책이 우월하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었습니다. 따라서 만일 내가 쉽게 운반할 수 있고, 시간의 파괴 작용에 대한 저항력을 증명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난 책을 선택하겠습니다.-36쪽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미래는 직업이 될 수 없는 법입니다. 진짜 예언자이든 가짜 예언자이든 간에, 예언자의 본질은 바로 틀리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어요. <진정한 미래는 항상 예상을 빗나가는 법이다.> 항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미래의 위대한 특질입니다.-53쪽
예전에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인생의 단 몇 달만 투자하면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배우고 나면 그건 영원히 유효했죠.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두 달을 들여서 어떤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지만, 그것을 거의 완벽하게 다룰 즈음이면 다시 새로운 프로그램이 나옵니다.-65쪽
과거에 우리는 긴 수련 기간을 마감하는 최종 시험을 준비하며 살았습니다. 이탈리아의 <학력 성숙도 고사>, 독일의 아비투어, 프랑스 바칼로레아 등이 그것이죠. 이 단계 후에는 대학에 갈 사람들 외에는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었어요.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당신이 죽을 때까지, 아니 당신의 자녀가 죽을 때까지 유효했으니까요. 열여덟, 혹은 스무 살의 나이에 사람들은 인식론적으로는 은퇴할 수 있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요즘의 회사 직원들은 끊임없이 지식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직장을 잃을 수 있지요. 학업을 마감하는 이런 큰 시험들이 상징하던 통과 의식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어요. (...) 우리가 <원시적>이라고 부르는 세계에서는 노인네들이 권력을 지녔습니다. 그들이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수했으니까요. 하지만 격변을 계속하는 세계에서는 아이들이 부모들에게 전자학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아이들은 또 무엇을 가르쳐주게 될까요?-66-67쪽
어쩌면 사라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지도 모릅니다. 바로 우리가 생의 다양한 순간들 가운데서 느낀 것들의 기억이죠. 감정과 감동의 소중한-때로는 거짓된-기억, 즉 정서적 기억 말입니다. 누가 우리에게서 그 기억을 덜어내려 하겠습니까? 무슨 목적으로요?-81쪽
우리는 프랑스어에서 savoir(지식)와 connaissance(앎)의 의미가 서로 구별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부아르, 즉 지식은 우리 곁에 거추장스럽게 쌓이는 것, 항상 유용하게 쓰이는 것만은 아닌 그런 것을 말하죠. 반면 코네상스, 즉 앎은 어떤 지식이 삶의 체험으로 변형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새로워지는 이 <지식>이라는 무거운 짐은 기계들에게 맡겨버리고, 우리 자신은 <앎>에 집중할 수 있어요. (...)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얼마나 홀가분합니까!-지성뿐인 거죠. -85쪽
우리는 세계화 덕분에 모든 사람이 동일한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리라고 확신했었죠. 하지만 실제의 결과는 모든 점에서 정반대입니다. 세계화는 공통의 경험의 파편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90쪽
가짜는 어떤 진리 이론을 수립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가짜를 그것을 탄생시킨 진품과 비교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이 가짜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진품만을 가지고 그것이 진품인지를 입증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입니다.-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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