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물질의 속성은 상상력을 압도한다. 나무로 만든 책은 마음대로 접거나 펼칠 수 없다. 나무로 만든 사람은 뛰거나 날 수 없다. 나무라는 물질의 속성은 무한히 펼쳐지는 상상의 가능성 중에 극히 일부를 선택할 수밖어 없게 한다. 매우 간단한 이야기조차 물질에 사로잡히면 더 이상 진전이 불가능하다.-64쪽
각기 모양이 다르고 모양에 따라 쓰임새도 다르지만 나무를 자르는 간단한 기능을 위해 그렇게 많은 연장이 필요한 것이다. 오직 한 가지뿐인 벌레의 이빨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결국 수백 가지의 이빨들로 할 수 있는 것은 벌레의 이빨이 하는 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썰어대는 것.-69쪽
목수의 손에 쥐어진 연장은 말 그대로 야만스럽기 그지없다. 원시상태에 가깝다. 사실 목수의 연장은 실제로 나무를 부러뜨리는 두 손과 김치를 씹는 치아의 기능에서 약간 더 나아간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69쪽
공구상점에서 마음이 설레지 않는 사람은 목수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전동공구들 역시 하나같이 멍청하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오로지 회전만 할 줄 아는 공구들이 자랑할 것이라곤 요란한 소리를 낸다는 것뿐이다.-71쪽
이야기는 노동을 유희로 바꾸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땡볕에서 김을 매는 아낙이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고달픈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것처럼 말이다.-126쪽
경험으로만 가득한 일상은 삶을 단순화시킨다. 경험에 의해 얻어진 모든 걸 진리라고 착각하는 데서 개똥철학은 시작된다.-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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